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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INCD 제3차 총회 풍경들
[이슈]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INCD 제3차 총회 풍경들
  • 교수신문
  • 승인 200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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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9 13:23:36
양기환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INCD 제3차 총회가 열렸다. 문화운동을 통해 백인들의 식민지배와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저항하고 마침내 해방된 역사를 간직한 남아프카공화국에서 인류 문화사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할 문화NGO 총회인 INCD(International Network for Cultural Diversity) 회의가 열린 것이다. INCD는 세계문화장관회의라 불려지는 47개국 문화부 장관들의 회의체 INCP(International Network on Cultural Policy)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진행되는 회의로, 총회를 통해 도출된 합의문은 INCP에 넘겨지고 INCP 회의에서는 최대한 이를 반영하도록 노력하는데, 한국적 경험에 비춰볼 때, 이런 익숙하지 않은 상호관계는 문화 다양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문화 대표들과 문화장관들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GO와 NGO가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케이프타운 INCD 3차 총회는, 개도국과 선진국, 남반구와 북반구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자유의 세계화로 인해 문화정체성이 위협받고, 문화다양성이 파괴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획일화의 재앙을 막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노래와 화술은 한 국가의 혼이자 생명

1998년 OECD 국가들이 추진했던 다자간투자협정(MAI)이 문화 다양성을 이유로 결렬된 바 있다. 이것은 국제사회가 문화 다양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용했고 INCP는 이런 국제적 분위기 속에서 창설됐다. 이후 INCP에 대칭되는 한 축으로 문화NGO 대표들의 INCD가 만들어졌다. 현재 캐나다 오타와에 본부를 두고 52개국 3백개 단체가 가입한 INCD는 이번 총회에 앞서 이미 2000년 그리스 산토리니와 2001년 스위스 루체른 총회를 통해 개별 국가들이 문화다양성을 증진하고 촉진할 수 있는 국제법적인 강제력을 갖는 ‘문화다양성에 관한 새로운 협정(NIICD)’을 창설하자는 각국의 지지 의사를 모은 바 있었다. 이런 배경 위에서 한국을 포함한 37개국, 1백86명의 문화 NGO 대표들은 ‘문화 협정’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INCD는 총회 참석 전에 각국 대표들의 철저한 사전 준비를 당부했다. 일반상품을 다루는 무역협정들이 시장경제 잣대로 문화의 영역을 재단하고, 개별국가의 역할을 제한함으로써 다양성 증진이 위협받고 있으며, 양자간, 다자간 무역협정이 확대됨으로써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현실을 충분히 공유하고 회의에 참석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역 및 관세에 관한 협정(GATT)이나 서비스에 대한 일반 협정(GATS)으로는 문화 다양성을 증진시킬 수 없기 때문에 상업적 목적을 우선하는 기존의 무역협정을 대체하는 문화적 관점의 ‘문화협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과 상황에서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케이프타운 서적 센터에서 INCD총회가 진행됐는데, 먼저 캐나다의 배우 톰슨이 발제자로 나서 분위기를 달궜다.

“우리는 무역과 통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문화협정, 언어, 새로운 사상, 문화 개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이 곳에 왔다. 문화는 그 국민의 ‘생명’이고, 한나라의 문화를 무시하고 그들의 노래와 화술(narrative)을 빼앗는 것은 곧 삶을 강탈하는 것이다. 유럽의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역사 속에서, 유대인을 학살할 때에는 먼저 그들의 ‘혼’을 제거하려 했는데, 혼이 없으면 육체를 말살하는 것은 쉽기 때문이다. 항로를 나타내는 비행기의 지도상 위치는 유럽, 지중해, 사하라를 지나서 남아공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기내의 모니터에서는 변함없이 헐리우드 폭력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내가 타고 온 비행기는 다른 문화의 이야기와 화술이 강탈된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우리는 이것을 다루기 위해 여기에 모였다”라고 토로한 것이다.

WTO, ‘문화잠식’의 야욕을 드러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각 나라들이 제기한 ‘문화협정’ 필요성의 입장은 크게 3가지 흐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세네갈과 잠비아 등 아프리카의 경우 “문화 다양성은 환경과 같이 인간의 생존을 위해 보존돼야 하고, 이런 토대 위에서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문화정체성은 개인, 지역, 국가적인 차원에서 핵심적인 요소이며, 문화는 다원적인 것이기에 흥정이 돼서는 안 되며, 개별적인 소수의 정체성이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다른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므로 고유의 문화가치를 전달하는 언어는 절대 보호돼야 한다. 언어의 다양성과 미디어를 통한 문화적 표현이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라며 이를 위한 대안으로 ‘문화협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두 번째는 개도국들로서 “개도국은 선진국의 문화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지로 전락했다. 개도국의 문화상품과 서비스는 선진국으로 수출되기는커녕 오히려 자국 내에서조차 유통이 힘들고 생산이 어렵다. 개도국의 문화 생산물이 자국 내에서 활발하게 유통돼야 하고, 선진국으로 수출돼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문화다양성의 가치는 의미를 잃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문화협정’을 역설했다.

세 번째의 유형은 유럽과 캐나다 등 산업적으로 발달한 선진국들로서 “방송과 영화, 음반 같은 시청각서비스 분야의 유통시장은 그 거래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대다수의 나라들은 소비시장으로 전락되고, 소수 국가 일부 생산자에게만 생산이 집중됨으로써 시청각 분야의 독점이 심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다자간 양자간 무역협정에서 ‘문화적 예외’를 주장했지만 문화정체성을 지키는 데 효과적이지 못했다. 특히, 현재 WTO는 시청각서비스 분야의 전면적 시장개방을 논의하고 있다. 문화영역을 무역에 종속시키는 WTO 협상을 중지시켜야 한다”며 ‘문화협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2002년, INCD의 ‘문화협정’ 논의는 국제사회의 뼈아픈 경험에서 시작됐다. 1946년 프랑스, 1968년 브라질, 1993년 멕시코 그리고 1998년 이후 지금도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 수많은 나라들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얻어낸 것이다. 왜 우리가 국제협약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는 무엇이 포함돼야 하는지.

분명, GATT 제4조는 스크린쿼터제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제도의 폐지를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NGO와 GO가 함께 논의한 ‘세계문화협정’은 그만큼 우리에게 절박한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를 전 세계가 공유하고 있고, 또 정부가 참여하는 이 ‘문화 협정’은 문화사적으로 대 사건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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