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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100주년 세계 순회 전시회 유감
노벨상 100주년 세계 순회 전시회 유감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1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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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9 13:07:06

세계적인 것, 밖에서 알아주는 것, 나 아닌 다른 이들이 인정해주는 것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가운데서도 가장 염원하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코 노벨상일 것이다.

기초과학의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물리학의 개본 개념도 모르는 초등학생들은 서슴없이 노벨상을 타겠노라는 장래희망을 이야기하고, 해마다 노벨상 수상 즈음만 되면 언론은 여지없이 냄비근성을 드러내곤 한다. 거기에다 얼마 전 한 주간지에서 터뜨린, 어처구니없는 노벨상 로비설까지 한 몫 더해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염원을 넘어 거의 강박증 수준으로 보인다. 때마침 ‘노벨상 100주년’을 기념하는 세계 순회 전시회까지 열리고 있다.

8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서울 로댕 갤러리에서 두 달 넘게 열리고 있는 순회 전시회의 제목은 ‘창조성의 문화: 개인과 환경’으로, 제목에서부터 전시 의도가 엿보인다. 이 전시회는 2001년 4월 스웨덴 스톡홀롬에 세워진 노벨박물관의 세계순회 전시 가운데 하나이다. 말 그대로, 알프레드 노벨이라는 ‘개인’의 탄생과 업적을 기리는 ‘사사로운’ 인물 박물관이지만, 일단 노벨상이라는 강박에 힘입으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입장료를 받으면서까지 강조하고 있는 ‘창조성’과 ‘문화’의 흔적은 사실 전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3부분으로 나뉜 전시장에 다양한 영상과 자료들을 화려하게 배치해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의 약력과 사진, 알프레드 노벨의 생애와 노벨상 탄생 배경, 수상자 선정과정 및 절차 등 ‘노벨상 운영 전반’에 관해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넓은 전시장에서 노벨상에 대한 배경과 정보를 굳이 보여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행히도 전시의 목적인 창조성이란 무엇이며,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어떠한 상황에서 발휘되며, 창조적인 결과가 개인과 환경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의 주제들을 체험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창의성 역시 교육적 강박과목의 하나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에게 꼭 보여야 할 중요한 전시’라는 이름 또한 창조성에 대한 하나의 강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전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창조성이란 다름 아닌 노벨상 수상자 32명의 창조성이고, 그들의 창조성은 세상을 놀라게 했노라는 상투적인 감동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생활 습관과 연구 방식을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갖가지 강박을 떨어버릴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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