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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 : '아시아간 무역의 형성과 구조','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상인 매판&
깊이 읽기 : '아시아간 무역의 형성과 구조','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상인 매판&
  • 교수신문
  • 승인 200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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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9 13:02:23
정안기 / 고려대 강사·경제학

최근 급속한 아시아 경제발전을 배경으로 근대아시아 경제사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모색되고 있다. 종래 구미제국주의에 굴복하는 피동적이고 정체론적인 아시아 史像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립하고 발전하는 다이나믹한 아시아 사상으로의 전환이다. 일본학계에서는 아시아교역권(아시아간 무역론)논의가 그 돌파구를 열었으며, ‘아시아간 무역의 형성과 구조’는 그 대표적인 연구 성과의 하나다. 저자 스기하라 카오루는 런던대를 거쳐 현재 오사카대 경제학부에 재직하며, 일본학계의 근대아시아 경제사, 세계경제사를 주도하는 중진연구자다. 이 책은 1996년 저자가 장기간에 걸쳐 발표한 주요 논문과 최근 집필한 새로운 논문을 추가한, 전체 제12장에 보론 4편을 추가한 최근에 보기 드문 대작이다. 이 책은 논쟁적인 문제제기와 더불어 광범위하고 치밀한 실증으로 독자적인 논리에 입각한 아시아 장기근대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아시아간 근대무역 통계치로 재구성

이 책은 19세기 후반 서구의 충격이 가져온 시장기회에 어떻게 아시아 여러 지역이 반응했으며, 공업화를 내재한 독자적인 국제 분업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는가를 종래의 일국사적 관점과 서구중심사관과 상대화하는 것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특히 뛰어난 점은 1880년대로부터 1930년대에 걸쳐 일정한 경제적 바운더리를 갖고 있었던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등 주요 4지역을 대상으로 한 아시아간 무역(intra-Asia trade)의 구체적인 실태를 친밀한 통계분석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저자의 주장은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시작된 19세기 자본주의의 세계화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혹은 아프리카가 구미제국의 주변부로 전락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시아에서는 구미와의 무역성장률보다도 훨씬 빠르게 아시아 역내무역(아시아간 무역)이 성장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아시아 전체로써는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시스템으로부터 상대적인 자립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립성’은 아시아간 무역이 생산과정의 혁명을 동반하지 않는 ‘수요견인형 무역’으로부터 공산품과 원료?식료 등 제1차 産品간의 무역패턴, 즉, ‘공업화형 무역’으로 변화했음을 가리킨다. 또한, ‘상대적’이라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간 무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이었던 유럽과 미국에 제1차 산품을 수출하고 구미로부터 고기술의 공산품을 수입하는 종속적인 관계가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구조였음을 의미한다.

즉, 이 책이 제출한 아시아간 무역론은 아시아 경제발전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출발해 그 기원을 역사적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즉, 19세기 서구열강이 진출하기 이전 아시아에는 ‘광역 무역권’이 존재했고 이는 아시아에서의 서구 행동을 규정했다. 그 후 전개된 아시아의 공업화도 결국은 아시아간 무역을 전제로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종래 강조돼 온 서구의 충격을 상대화하고 유럽중심의 근대세계경제에서 아시아지역의 상대적인 자립성을 摘出함으로써 종래 뿌리 깊은 ‘아시아정체론’의 근본적인 수정과 함께 비유럽사회에서의 ‘자생적인 공업화모델’을 제시하고자 한 획기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학문적인 성과는 1984년 사회경제사학회 전국대회(당시 공통논제는 아시아 교역권의 형성과 구조)에서 촉발한 이른바 ‘아시아 교역권’ 논쟁을 통해서 확연해지기 시작했다. 논쟁의 궤적과 구체적인 쟁점은 본서의 보론에도 잘 정리돼있다. 그것은 서구의 진출과 아시아 교역권의 존재여부와 관련한 전근대와 근대의 ‘연속 vs 단절’, 서구의 충격에 의한 아시아간 무역의 평가여부와 관련된 ‘아시아 교역권 중시 vs 유럽의 프레젠스 중시’라고 하는 양대 축으로 모아졌다. 실제로 아시아 교역권론이 제출되기 이전 일본경제사의 전통적인 시각은 ‘단절 그리고 유럽 중시’였다.

그러나 당시 아시아 교역권론을 주도했던 하마시다 다게시(浜下武志)와 가와까츠 히라후토(川勝平太)가 서구의 충격을 경시하고 아시아간 무역의 자생론에 근거한 ‘연속 그리고 아시아권 중시’의 파격적인 논점을 제시함으로써 종래의 패러다임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그러나 이시이 간지(石井寬治), 다가무라 라오스께(高村直助)로 대표되는 종래 일본경제사의 중진 연구자들로부터 열강의 외압에 의한 ‘아시아 교역권의 재편’이라고 하는 반격에 직면해, 논쟁은 일시 ‘전환 그리고 유럽중시’의 패러다임과의 대치국면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스기하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균형 있는 시각과 종래의 서구경시의 위화감을 해소하는 ‘전환 그러나 아시아 중시’의 이론 틀을 제시함으로써 광범위한 학계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정치와 권력 차원 배제한 점은 비판 대상

더욱이 이 책은 최근 후르타 가즈코(古田和子)의 ‘상해네트워크와 근대동아시아’(동경대학출판회, 2000년)를 비롯해 일본의 개항을 아시아로부터의 충격으로 파악하는 카고따니 나오토(籠谷直人)의 ‘아시아 국제통상질서와 근대아시아’(나고야대학출판회, 2000년) 등 새로운 시각과 구체적인 실증에 입각한 신예 연구자들의 연구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최근 아시아 교역권 논쟁에는 구미의 연구자들도 일제히 가세함으로써 마치 반세기 전 일본경제사에 획기적인 선을 그었던 ‘일본자본주의 논쟁’을 연상케 하는 치열함이 있어 일반경제사에 빛나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방불케 하는 국제적인 논쟁의 소용돌이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획기적인 문제제기와 학문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교토(京都)대학 호리 가즈오(堀 和生)가 주도하는 ‘식민지공업화론’이 제기하는 전면적인 비판에 노출돼 있다. 문제의 소재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형성된 아시아간 무역 메커니즘이 1930년대에도 그대로 작동했다고 하는 이 책의 주장이다. 비판의 주요 논지는, 이 책의 분석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정치?권력적인 요소를 전면 배제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 이전과는 달리 아시아 지역이 제국주의와 식민지로 분화되는 국제관계 혹은 국제분업의 급격한 재편을 충분히 반영할 수 없다는 이론적인 한계의 지적이다. 즉, 1930년대 일본제국주의의 급격한 팽창과 식민지(조선, 대만, 만주)와의 제국내 분업에 기초한 비약적인 무역량의 증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이어지는 중국과의 정치적 대립의 격화과정에서 일본과 중국과의 무역이 과연 경제적인 상호보완 혹은 상호이익을 전제로 하는 무역의 기러기형(雁行型) 발전으로 파악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결국은 이 책을 돋보이게 했던 정치와 권력 차원을 捨象한 연구시각이 반대로 본서의 치명적인 비판의 표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스기하라의 적극적인 대응과 논쟁의 쟁점변화 및 새로운 양상의 전개는 점입가경으로 그 귀추가 크게 주목된다.

매판을 통한 중국경제의 장기혁명 고찰

경제사 분야에서 이 책과 병행해 읽어볼만한 흥미로운 책으로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잇는 상인 매판-중국 최초의 근대식 상인을 찾아서’이 출간됐다. 저자 하오옌핑(Hao Yen-p´ing)은 현재 미국 녹스빌 테네시대학에서 중국사를 담당하며, 이 책은 그의 1966년 하버드대학 박사학위논문을 옮긴 것이다.

이 책은 종래 서양제국주의 첨병으로 서구 열강의 침략과 수탈을 돕고 국내경제의 산업화를 저해하는 매국노 혹은 주구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진 買辦(Comprador)을 새로운 무대설정으로 중국근대사의 전면에 재등장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실증적 고찰에 입각한 정당한 평가를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요한다. 즉, 서세동점 기 중국과 서양을 연계하는 상업중개자, 최초로 전통 중국시장에 ‘근대화’의 개념을 이식시킨 장본인, 자금의 투자자, 강력한 경영관리자, 리스크를 과감하게 감수하고 기업가 정신을 갖춘 혁신가, 중국 최초의 근대식 기업가로써 매판의 적극적인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는 이 매판이 중국의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중국식 비즈니스모델을 창출한 최초의 상인이었음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매판은 중국 상인들 가운데서도 그들만이 지닌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16세기 이후부터 최근의 자본주의 무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경제가 준비해온 장기혁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본서는 참신한 발상과 더불어 당시 중국에 진출한 서구기업의 서신과 보고서 및 당시의 신문기사 등을 이용해 종래 부정적인 매판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오늘의 중국과 이어지는 긍정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즉, 매판을 통해 어제의 중국(전통)과 오늘의 중국(현재), 그리고 중국과 서양이라는 시공을 넘어선 역동적인 중국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담아낸다.

세계 경제사를 비롯한 아시아 경제사 연구의 고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두 책이 번역된 것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일이다. 비교사적 연구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들은 앞으로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길라잡이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제사 전공자들 뿐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사회 전반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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