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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하다
바이러스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포착하다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5.03.1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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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93. 에이즈

▲ 에이즈를 시각화하는 새로운 이미징 기법으로 병원균(노란색)이 어떻게 감소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사진 왼쪽의 감염된 원숭이가 항레트로바이러스제 투여 후 어떻게 변하는지 오른쪽에서 확인된다. 사진 출처=<사이언스>
보는 게 믿는 것이다. 새로운 이미지 기법 연구로 살아 있는 동물 몸 전체에서 에이즈(AIDS) 바이러스가 복제하는 것이 실시간 지도로 밝혀졌다. 지난 9일 <사이언스>는 「에이즈 바이러스 생생하게 보기(A live look at the AIDS virus)」라는 재미난 이름의 연구를 소개했다.

연구는 히말라야원숭이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인간 AIDS를 연구하고 있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의과대학의 면역학자 토마스 호프(Thomas Hope)는 이번 연구 결과에 놀랐다. 결과는 예기치 않았던 유인원 에이즈 바이러스(simian AIDS virus, SIV)의 은신처를 가리켰다. 또한 숙주 몸 여러 곳에서 잠복감염 중인 바이러스들이 언제 항레트로바이러스제(antiretroviral, ARV) 약물을 수여받게 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 혁신적인 기계는 바이러스의 불명확했던 초기 감염 과정을 통해 약물과 백신, 그리고 치료 연구를 촉진 시킬 것으로 보인다.


1981년 미국에서 원인 불명의 면역결핍증을 호소하는 성인 남성들이 나타났다. 『바이러스학 제3판』(류왕식, 라이프사이언스, 2013)에 의하면,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는 젊은 동성연애자 남성들의 CD4+T림프구(면역 세포 수 조절)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후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의 뤼크 몽타니에(Luc Montagnier) 박사와 미국 NIH의 로버트 갤로(Robert Gallo) 박사가 각각 환자의 샘플에서 레트로바이러스를 분리했고, 이 질병을 AIDS로 명명했다. AIDS 원인 바이러스는 인체 면역결핍 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다.


『분자바이러스학 2판』(장경립, 월드사이언스, 2014)에 따르면, HIV는 질병의 느린 진행을 의미하는 라틴어 ‘lentis’에서 유래한 Lentivirus에 속한다. 급성감염 후 오랜 잠복기를 거쳐 AIDS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리온의 지름은 100㎚이며, 정20면체 대칭이다. 구형의 외막을 갖고 있고, 선형 단일가닥 RNA를 지닌다. 사람의 HIV에는 HIV-1, HIV-2가 있으며 HIV-1이 더 치명적이다.

몸에서 HIV가 위치한 곳을 발견하다
HIV의 외피 분자는 CD4+T림프구 표면분자를 수용체로 인지해 결합 후 진입한다. CD4+T림프구와 조혈모세포가 HIV의 저장고(reservoir)로 규명된 바 있다. 특히 조혈모세포는 다양한 혈액세포로 분화되기 때문에 HIV가 계속 증식하는 저장고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HIV 유전체는 저장고의 염색체에 삽입돼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특성이 있다. 이후 HIV RNA가 만들어지지 않는 잠복 감염을 하거나, 자손 바이러스를 생성하는 활성감염이 일어난다. 문제는 HIV가 복제되면서 CD4+T림프구를 감소시킨다는 점이다. HIV는 숙주세포의 유전체에 통합돼 숙주세포가 DNA를 전사할 때 새로운 바이러스를 복제하게 한다. 이로써 숙주는 CD4+T림프구 수치가 서서히 감소하면서 면역이 결핍된다. 그리고 다른 병원체에 기회감염의 기회를 준다. 환자는 정상적인 사람에게선 심각하지 않은 폐렴 따위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맞는다.


그렇다면 HIV가 있는 저장고가 분열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HIV에 감염된 사람이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면 HIV가 활동하지 않을 것으로 간주했다. 하지만 연구를 통해 HIV는 저장고가 휴지기를 유지하는 중에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혈액이나 임파조직, 그리고 임파절 속에서 자기 복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활동하는 에이즈 바이러스를 보는 것은 전례 없었던 일이다. 애틀랜타의 에모리大 프랑수아 빌링어(Francois Villinger)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기구를 빌려 암이 있는 환자들에게 사용해 봤다. 연구원들은 항체에 방사성 분자를 부착해 SIV 표면 단백질을 타깃으로 삼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SIV에 감염돼 있던 원숭이 12마리에 주입했다. 조작된 항체는 원숭이 몸에 있는 SIV를 찾은 뒤 달라붙었다. 연구원들은 양전자방출단층촬영술(Positron Emission Tomography, PET) 스캔으로 항체들을 찾았다. 항체는 바이러스가 원숭이들 몸 어디에 달라붙어 있는지 정확히 보여줬다. 이전 생체 검사 연구와 동일하게, ‘면역PET’ 스캔으로도 장과 림프절에 많은 수준의 SIV가 잠복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추가로 몇 가지 놀라운 점도 발견됐다. 연구원들은 비강에서 놀랄만한 수준의 SIV 항체가 밝게 빛나고 있음을 봤다. 이는 온라인 학술지 <네이처 메서드(Nature Methods)>에 개재됐다. 빌링어는 남성 생식기에 특히 많은 수준의 SIV가 나타나는 것을 봤다. 또한 이 바이러스는 폐에도 예상치 못한 경향을 보였다. 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가졌던 기관이었다. 호프는 이 기계가 원숭이, 그리고 사람에게 에이즈 바이러스가 감염된 후, 첫 주에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명확히 밝히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빌링어와 그의 동료들은 감염된 원숭이 3마리에게 ARV 약물을 줬고, 같은 유형의 PET 스캔을 5주 후에 수행했다. 비록 스캔으로는 어떤 원숭이의 혈액에서도 SIV가 감지되지 않았지만, 그들의 복합 조직들에서는 SIV가 복제되고 있었다. 이는 미네소타대 트윈시티 캠퍼스의 티모시 샤커(Timothy Schacker)가 연구한 것과 같았다. 샤커는 HIV에 감염된 사람들 혈액의 바이러스 수준이 바이러스가 감지되지 않은 ‘완전 억눌린(fully suppressed)’ 경우와 같다고 했다. 이 사람들의 조직을 검사하자 바이러스 복제의 증거가 발견됐다. ARV 약물은 이들 조직을 침투하기 어렵지만, 면역PET 스캔은 보다 비침투적이기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장고에 작용하는 약물을 평가할 수 있었다. 면역PET는 ‘완전 억눌린’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낮은 수준의 바이러스를 계속 생산하는가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잠들어 있는 바이러스를 깨우다
다른 연구 그룹은 ‘완전 억눌린’ 바이러스의 치료가 오래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유는 수명이 긴 세포의 저장고 때문이다. 약물과 면역계는 모두 이러한 잠재 DNA에 도달할 수 없다. HIV가 잠복감염 중인 세포들은 바이러스 단백질들을 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연구원들이 ‘충격과 죽음’이라는 시도를 한다. 이는 새로운 HIV가 복제되고 있는 저장고를 재촉해 감염된 세포를 굳어지게 해 파괴시키는 방법이다.
데이비드 마골리스(David Margolis)는 인간 연구에서 ‘충격과 죽음’ 저장고를 시도한 선구자다. 지난 2012년 6명의 환자에 SAHA(suberoylanilide hydroxamic acid)라는 약물을 투여해 환자의 체내에 잠복해 있는 HIV를 깨워, 면역계로 하여금 이를 쉽게 탐지해 공격하게 했다. 그 결과 환자에서 투여받기 전에 비해 5배나 많은 HIV 전사체가 검출됐다. 마골리스는 이번 면역PET는 훌륭한 새 기술이지만 신호가 정확히 몸에 있는 바이러스 수준을 탐지하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느낌을 받는다고 밝혔다.


AIDS는 발견 초기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주로 문제가 됐다. 현재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그리고 남미와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 WHO는 2009년까지 AIDS로 2천500만 명이 사망했고 3천300만 명 이상이 HIV에 감염돼 있다고 했다. 약 25종에 이르는 치료제가 사용되고 있지만 HIV의 증식을 억제해 AIDS로의 진행을 억제할 뿐 바이러스를 완전 제거하지는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백신도 없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HIV가 어디로 가고, 어떻게 가고, 왜 그것이 바이러스에게 이익이 되는지 알고 싶어 했다. 이제 AIDS 치료의 중요한 퍼즐 조각 하나가 맞춰졌다. 호프는 여전히 에이즈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면역PET를 정제할 필요가 있고, 기술적 장애도 남아 있다고 한다. 바이러스와의 오랜 대립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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