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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허위와 문학적 과장, 그 진실의 얼굴을 찾아서
역사적 허위와 문학적 과장, 그 진실의 얼굴을 찾아서
  • 교수신문
  • 승인 2015.02.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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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 박태일 지음|소명출판|372쪽|28,000원

흔히 ‘대가’급이라 일컬어지기도 한 유치환은 문제 시인이다. 이름에 견줘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더 많다. 이 글은 유치환의 문학 생애에서 가장 무거운 마디라고 할 수 있을 만주국 거주 여섯 해에 걸친 체험을 담은 체류 시편의 밑자리를 따져 보기 위한 목표로 쓰였다. 이 일을 위해 통영 출향 동기와 만주 거주 환경, 그리고 부왜시문 다섯 편의 됨됨이에 초점을 맞춰 잘못은 바로잡고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은 기웠다. 논의를 줄여 마무리로 삼는다.


첫째, 유치환의 1940년 봄 통영 출향 동기에 대해 널리 알려진 생각은 지사형 도피설이다. 왜로 관헌의 지식인 탄압으로 말미암은 신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감행한 지사적 결단이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느 모로 보나 그런 일을 겪을 만한 됨됨이를 갖춘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조선총독부’ 기관지로부터 체제 내 집단 구성원임을 뚜렷하게 확인받고 있었던 이다. 그의 급작스런 출향은 지역사회에 일찍부터 알려져 온 바, 내놓고 밝히기 힘든 참담한 집안 일을 저질러 통영을 쫓겨나듯 벗어났다는 개인형 도주설이 참이다. 그리고 그의 入滿은 이른바 조선총독부의 만주 집단이민 획책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었을 형 유치진의 처가, 빈강성에서 ‘개척 영농’으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던 동향 선배 김욱주, 유치환이 짐을 푼 연수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던 벗 최두춘과 같은 통영 지역 연고망의 도움을 받았음 직하다. 따라서 지사적 도피를 감행할 정도였던 유치환이 어찌 만주로 들어가 附倭 작품 활동을 했을까 보냐라는 믿음은 뿌리에서부터 터무니없음을 알겠다.


둘째, 만주 체류 환경이다. (……) 유치환은 조선총독부 ‘분산개척민’의 한 사람으로서 빈강성 연수현 ‘분산개척민’ ‘집단부락’ ‘가신흥농회’의 총무에다 만주제국협화회 연수현 직원으로 일했다. 그러다 1942년 후반기나 1943년 전반기 성 소재지인 하얼빈의 하얼빈협화회로 승진해 올라가 근무했다. 전시 수탈 체제 아래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한인 농민과 달리 체제 동원·수탈의 중심기구 직원으로서 반만·항왜 의열 항쟁과 맞서 그들을 향한 ‘개척 협화’ 선무공작의 앞자리에 있었다. 그의 만주국 체류시 가운데서도 장소시 몇 편은 각별히 하얼빈협화회 근무 경험의 결과를 담았다.


셋째, 유치환은 立滿해 귀국하기까지 모두 열입곱 차례 나라 안밖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이들 가운데서 만주 체류 때 체험을 그 기간 안에 담아 발표한 것은 모두 일곱에 머문다. 그 속에서 네 편이 부왜시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찾아볼 수 있는 그의 부왜 작품은 만주 거주 때 줄글 한 편과 시 세 편, 그리고 만주 회고시 한 편까지 모두 다섯이다.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1942), 「수」(1942), 「전야」(1943), 「북두성」(1944)에다 광복 뒤 시집 『생명의 서』(1947)에 올린 「들녘」이 그것이다. 이 글로 말미암아 발굴 꼴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는 그가 만주 체류 때 지녔을 이념의 자장을 실증해 주는 짧은 줄글이다. 이른바 ‘대동아전’ 시국에 발맞춰 개인이든 문필가든 국가의 고마움을 깨닫고 ‘황국신민’으로서 ‘성전’ 승리를 위해 애쓸 것을 권고하는 뜻이 곡진하게 옹글었다. 이 글이야말로 그 뒤 차례로 쓰인 부왜시 「수」·「전야」·「북두성」을 끌어 잡고 있는 유치환의 마음자리를 잘 보여 준다.
(……)


다섯째, 「전야」·「북두성」은 유치환이 자신의 시집에 끝내 올리지 않았던 시다. 둘이 지닌 부왜적 됨됨이를 두려워했던 까닭이다. 이들은 직설적이고 평면적인 「들녘」이나 「수」와 달리 상징적 자장이 마련하는 울림 큰 부왜시다. 「전야」는 한 시대의 마지막이자 새롭게 ‘대동아공영’이 비롯하려는 ‘전야’에 보내는 유치환의 설렘과 믿음, 힘찬 바람을 담았다. 「북두성」은 수직 위 우주적 순행의 절대 질서가 현실의 수평 멀리 “아세아의 산맥’ 너머까지 “동방의 새벽”을 일으킬 것이라는 ‘대동아공영권’의 이상을 잘 녹여 담은 시다.

■ 박태일 경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쓴 『유치환과 이원수의 부왜문학』에 실린 「유치환의 만주국 체류 시 연구」는 유치환의 부왜문학(친일문학)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논쟁적인 논문이다. 박 교수는 해묵은 ‘친일문학 논쟁’을 재연하는 게 아니라, 중국 연변 동포사회를 뒤지면서 문학사적 진실을 복원하는 데 전력했다. 『한국 지역문학의 논리』, 『경남·부산 지역문학 연구1』, 『마산 근대문학의 탄생』 등 2014년에 그가 상재한 책들의 면면은 그의 문학사적 작업이 어떤 의미를 온축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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