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0:35 (토)
젊은 소장학자와 노년의 대학자 간의 형이상학 서신 논쟁
젊은 소장학자와 노년의 대학자 간의 형이상학 서신 논쟁
  • 이상명 한양대·철학
  • 승인 2015.02.03 14: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말하다_ 『라이프니츠와 아르노의 서신』 G. W. 라이프니츠·A. 아르노 지음|이상명 옮김|아카넷|380쪽|24,000원

이 책을 논쟁의 관점에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철학의 본연은 논쟁이기 때문이다. 오랜 서양철학의 역사는 논쟁의 역사였고 우리에게 남겨진 서양철학은 논쟁의 산물이다.

▲ 라이프니츠. 그가 자신을 철학자로 드러낸 것은 바로 앙투완 아르노와의 서신논쟁이 있고난 뒤다.
1686년, 39세의 열정적인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 논고(Discours de m´etaphysique)』를 쓴 후 자신의 견해를 검토하고 평가해줄 사람을 찾았다. 그는 파리에서 만난 적이 있는 아르노가 신학, 철학, 수학 분야에 정통한 대학자였기 때문에 평가자로 더없이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의 학문적 명성과 권위를 이용한다면 자신의 형이상학을 알리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파리체류기간(1672~1676) 동안 미적분 계산법을 발견하는 등 수학에서 큰 성과를 이룬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형이상학적 성찰도 알리기 위해 『형이상학 논고』의 요약문을 에른스트 영주를 경유해 79세 노년의 대학자 아르노에게 보내 평가를 부탁한다. 라이프니츠가 아르노에게 바로 서신을 보낼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아르노가 스페인령 네덜란드에 망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와 아르노의 서신』은 1686년부터 1690년까지 에른스트 영주를 경유하는 서신을 포함해 라이프니츠와 아르노 간에 오고간 서신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썼지만 보내지 않은 서신까지 전편을 번역한 것이다.


한때 데카르트 철학을 비판했지만 나중엔 데카르트주의자가 된 아르노의 시각에 라이프니츠의 새로운 주장이 생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아르노는 처음엔 거칠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지만 두 번째 서신부터는 진지하게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검토한 후 날카롭게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서신 교환은 바로 논쟁으로 이어졌고 논쟁에서 다뤄진 주제는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라이프니츠가 주장하는 개체의 완전개념과 신과 인간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고, 둘째는 데카르트의 연장 개념을 비판하면서 라이프니츠가 주장하는 물체 혹은 물체적 실체 개념에 관한 것이다.


아르노의 눈에 먼저 포착된 것은 라이프니츠가 보낸 요약문 13절 “모든 개인의 개체적 개념은 언젠가 그에게 일어날 일을 한 번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아르노는 이 주장을 인정하면 인간사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면 신의 자유로운 창조가 부정된다고 반박한다. 이에 대한 해명에서 라이프니츠 철학의 주요 개념인 가설적 필연성, 개체의 완전개념, 가능세계 개념 등이 자세히 언급되고 러셀의 분석적 진리 이론으로 알려져 있는 ‘술어는 주어에 내재한다’는 원리와 ‘이유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충족이유율이 설명된다.


아르노의 비판은 17세기 유럽 학자들의 논쟁점 중에 하나인 전지전능한 신의 창조와 인간의 자유가 양립가능한가라는 문제와 관련된 것인데, 이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입장은 이것이 양립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라이프니츠의 무기는 가능세계 개념이다. 즉 신은 무한하게 많은 가능한 아담 중에서 현실에 창조된 아담을 최선으로 선택하고 창조한다. 이때 무한하게 많은 가능한 아담은 신의 선택지이기 때문에 신의 창조는 필연적 창조가 아니라 자유로운 창조이며 우연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신의 자유로운 창조와 인간의 자유가 모순 없이 이해되기 위해서는 아담 같은 개체의 개념은 개체의 시공간적 정황과 관련된 우연적 사건들이 포함돼 있는 완전개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인간사 모든 일이 신의 자유의지에 의존하지만 신의 의지는 인간사의 가설적 원인, 즉 우연적 원인이지 필연적 원인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첫 번째 논쟁 끝에 아르노는 개체의 완전개념과 술어는 주어에 내재한다는 원리를 인정했다.


논제는 아르노의 다른 문제 제기로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간다. 아르노는 데카르트의 심신문제를 설명하는 라이프니츠의 공존의 가설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존의 가설은 잘 알려져 있는 예정조화설의 전신으로 신체와 영혼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법칙에 따르며 신체에서 일어난 일과 영혼에서 일어난 일이 서로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아르노의 또 다른 문제 제기는 라이프니츠의 물체적 실체 개념에 대한 것이다. 데카르트주의자인 아르노의 관점에서 연장을 본질로 하는 물체가 어떻게 영혼과 같은 실체적 형상을 가질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라이프니츠는 연장은 물체의 실체가 될 수 없다는 논거에 기초해 물체적 실체 개념을 해명하는데, 제시한 논거인 연속합성의 미로와 물질의 무한분할, 참된 일체성 개념은 라이프니츠 철학의 핵심 이론으로 그 어떤 텍스트에서보다 이 서신에서 풍부한 설명을 읽을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물체가 실체이기 위해서는 자신 안에 자기 상태의 직접적 원인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운동의 경우 물체는 운동의 원인을 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물체적 실체는 운동의 원인으로 능동력(vis activa)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물체적 실체는 살아있는 물체, 영혼이 있는 유기체다. 하지만 데카르트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르노는 라이프니츠의 물체적 실체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라이프니츠는 이 물체적 실체 개념을 적용해 ‘아무리 작은 물체라도 물체 속에 무한하게 많은 피조물’이 있고, ‘유기체 속에 무한하게 많은 유기체’가 있으며, ‘세계 속에 무한하게 많은 세계’가 있다는 범유기체 철학을 피력한다. 이것이 후기 철학에 나타난 모나드 형이상학의 기본 모델이다. 말하자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은 물체적 실체 개념을 기초로 정립됐고, 그 스스로 개선된 실체 개념이라고 했던 그의 물체 개념 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체계인 것이다.


라이프니츠는 인류 최고의 다중학자다. 미적분 계산법의 발견이나 컴퓨터의 연산법인 이진법 같은 것을 보면 라이프니츠는 철학보다는 수학에서 더 큰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이 천재적인 다중학자는 유독 서신을 많이 썼다. 대중 독자들에게 읽히거나 후대에 남기기 위해 책을 쓰는 일보다는 당대의 학자들과 서신을 통해 논쟁하는 일에 더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가 남긴 서신은 약 1만5천여 통에 달하고 그 양은 거의 20만장에 이른다. 유네스코는 2007년 라이프니츠의 서신 전체를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고 하노버 라이프니츠 대학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와 아르노의 서신』은 그의 철학 서신 중 가장 중요한 유산일 것이다.


『라이프니츠와 아르노의 서신』을 논쟁의 관점에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철학의 본연은 논쟁이기 때문이다. 오랜 서양철학의 역사는 논쟁의 역사였고 우리에게 남겨진 서양철학은 논쟁의 산물이다. 논쟁이 반드시 진리로 이끌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논쟁 없는 일방적 주장은 진리일 가능성이 더 적다. 인류 최고의 다중학자가 남긴 서신을 통해 철학 논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이상명 한양대·철학
필자는 독일 뮌스터대, 베를린자유대에서 수학하고 베를린공대(TU-Berlin)에서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양대, 숭실대, 한림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