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사학보> 편집위원회는 고려시대를 다룬 연구성과에서 종전에는 미처 살피지 못한 새로운 내용들이 도출됐다고 평가하면서, 조선시대 중앙과 지방에서 펼쳐진 새로운 역사편찬활동, 근대사학사와 관련된 새로운 연구성과를 눈여겨 볼 것을 주문했다. 특히 이 가운데 ‘식민지근대화론’의 출발점이 되는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의 ‘식민지조선 근대화론’을 비판한 박찬승 한양대 교수(사진)의 논문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의 식민지조선근대화론」이 시의적으로 읽힌다.
1946년 일본이 자신들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인의 해외활동에 관한 역사적 조사’(이하 프로젝트)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 스즈키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조선통치의 성격과 실적」을 썼다. 이 글을 통해 스즈키는 일본의 한국 통치에 문제가 많았지만, 한국의 근대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의 경제적·문화적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됐다는 것. 박 교수는 이러한 스즈키의 주장에는 스즈키가 1942년에 집필한 『朝鮮の經濟』(日本評論社 刊) 내용이 많이 요약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戰前과 戰後의 스즈키의 글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확인해 나갔다. 그 결과 박 교수는 “그의 글을 살펴보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나온 ‘식민지근대화론’과 상당한 유사성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라고 말한다.
스즈키는 1935년부터 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로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총독부의 경제정책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종전 후 일본에 돌아가 1946년 일본 대장성에서 비밀리에 수행한 프로젝트의 조선, 만주, 대만편 가운데 조선편 집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스즈키는 이 프로젝트에서 「조선통치의 성격과 실적」이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일본의 식민지 한국 지배정책을 미화하고, 일본의 지배에 의해 한국은 비로소 근대화 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글은 1945년 이후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의 출발점이 된 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스즈키는 “일본의 한국 영유는 본질적으로는 제국주의적, 그 가운데에서도 군국주의적 지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서양 여러 나라의 소위 식민지정책과는 달리 이상주의적인 통치 행태를 보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로 간주하지 않았으며, 조선인을 식민지인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정부나 총독부의 ‘동화주의’나 ‘內地延長主義’, 더 나아가 ‘內鮮一體’ 정책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스즈키의 주장을 가리켜 ‘역사적 사실을 은폐, 왜곡, 호도하는 내용’으로 진단한 박 교수는 스즈키의 과거 행적 속에서 동화주의 지배정책 옹호론, 한국병합 군사적 동기론과 조선경제 정체론, 스즈키가 내린 ‘총독부의 조선경제정책’ 평가,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스즈키가 문화적 향상이라고 말했던 ‘조선의 民度’ 등을 분석했다. 나아가 박 교수는 조선인 취학율, 중등교육 기관 증설 문제, 공중위생 문제, 민족별 의사 수 등의 데이터를 동원해 결론을 향해 나아갔다.
그가 내린 결론은 “일제의 한국 지배정책은 한국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하고, 한국인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는 것이었다”로 요약된다. 박 교수가 보기에 스즈키 다케오의 ‘식민지조선 근대화론’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정책을 미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