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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반 취약한 불교학이 존립할 수 있으려면…
기반 취약한 불교학이 존립할 수 있으려면…
  • 교수신문
  • 승인 2015.01.2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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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_ 조명제 신라대 교수의 ‘불교 학회 성찰’

조명제 신라대 교수(사학과)가 인문학 계간지 <문학|사학|철학> 제39호(대발해동양학한국학연구원·한국불교사연구소)에 기고한  「불교 학회에 대한 성찰과 전망」은, 불교학을 인문학의 지평에서 고민하기 위한 성찰을 담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조 교수의 글을 발췌해 그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한다.

 

근래 인문학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지만, 갈수록 학계가 그러한 상황에 대응하기가 어려운 여건만 늘어나고 있다.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국내 대학평가, 나아가 세계대학평가가 보이지 않는 식민주의적 폭력의 양상으로 인문학에 행사되고 있다. 외국 정보서비스업체와 미디어 자본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잣대에 따른 평가가 합리적이고 엄밀한 것인지를 따지지 않고, 계량화된 결과로 우리의 인문학을 진단하고, 무시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흐름에 예속돼 자발적 식민화에 앞장서는 우리 사회의 풍토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풍토에서 그렇지 않아도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불교학이 과연 존립할 수 있을까? 라는 우려가 갈수록 현실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 관련 연구자들은 열악한 상황만을 탓하며, 파편화된 개인으로서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개인적인 무력감에 빠져 있을 뿐이지 학계 전체 차원에서 대응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거의 없다.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학계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외부의 문제보다 내부에서 보고자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점차 들리기 시작한 것과 대조적이다.

근래 대학 안팎에서 시민교육을 표방하면서 인문학의 새로운 길이 모색되고 있다.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가 우리 사회에도 소개됐고,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다. 수유+너머, 철학 아카데미와 같이 새로운 학문 공동체를 추구하거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중심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에 비해 불교(학)계에서는 이러한 모색이 그렇게 잘 드러나지도 않지만, 과연 시민인문학을 지향할 만한 지식 담론을 갖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먼저 든다.

그렇다면 왜 불교학이 인문학이나 사회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지식 담론을 제기하지 못할까.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근대 불교학이 문헌학을 토대로 구성된 학문이라는 성격과 깊이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문헌학은 학문 방법론의 기초이자 기본이므로 당연히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불교학 연구는 문헌학 연구에 머무르는 인상이 짙다. 거칠게 말해 불교 문헌을 고증하고 분석하는 것에 자족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불교학은 고증을 위한 고증, 지식을 위한 지식과 같은 정신 유희로 그치고 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다. 좀 심하게 말해 불교학자들은 불교 고전문헌의 가치가 최고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불교적 세계관으로 자기 실존의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현재의 문제도 해결되는 듯 자족하며 지내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불교학자들은 문헌을 깊게 읽는 훈련을 통해 비판적 안목을 키우고, 그러한 연구 성과를 깊고 넓게 시민사회에 제시하고 있는가. 오히려 불교의 종학이라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인문학이 인간다운 삶을 고양하는 학문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하는 데에 동의한다면, 불교학은 과연 그러한 가치에 부응할 만한 지식 담론을 제시하고 있는가. 학문의 분화가 심각한 현실에서 파편적인 지식을 종합하고 삶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감각을 길러주며, 현재의 삶에 대한 비평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

솔직히 필자는 이러한 지적에 답을 줄 수 없는 학문적인 한계가 답답한 것이 아니라 문제의식을 공유하거나 공감할 수 없는 풍토에서 더 큰 절망감을 느낀다. 거대 담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불교를 통해 인문학적인 가치와 의미를 추구할 수 없는 풍토와 한계는 결국 연구자 개인의 학문을 왜소화하거나 존재 의미를 힘들게 몰아가기도 한다.

물론, 1980년대에 봇물 터지듯이 유행한 학술운동의 흐름이 사라지고 있는 즈음에 제도적 기반이 약한 불교학계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21세기 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모순과 맞서서 제대로 된 성찰과 대응을 제시할 수 없는 학문이라면 불교학이 발전하기는커녕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이 글에서 거론한 바와 같이 지금 불교 학회의 풍경이 단적으로 그러한 현상을 보여준다.

그런데 필자가 굳이 비판만 하기 위해 학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제도적 기반이 취약한 불교 분야 학문이 새롭게 대응하는 기반이 학회라고 생각한다. 학문의 제도적 기반이 약한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학회라는 틀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그러한 모색은 불교철학이라는 좁은 틀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이 글에서 누누이 강조하듯이 범학제적인 연대와 협력의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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