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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10대, 위험하지만 창조적인 판타지
무서운 10대, 위험하지만 창조적인 판타지
  • 교수신문
  • 승인 2014.12.3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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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이창남 서평위원/한양대·비교문학

▲ 이창남 서평위원
연말이 되니 새삼 아이들에게 미안한 한 해가 됐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게임과 인터넷 동호회 활동으로 바쁜 아이에게 경고사인을 날리느라 좋은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것도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도 혹독한 입시경쟁에서 잠시 머리를 식히던 학생들을 진도 앞바다에 수장시킨 사고를 막을 시스템을 미리 갖추지 못한 도의적 책임에 몹시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 기성세대 어른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강남 아줌마들의 교육입법에 좌지우지되는 공교육 현실은 변함이 없고, 그런 교육을 바꾸어 보려는 노력들은 늘 거센 반격에 시달린다.

기성세대의 사고 문법은 활력이 없고, 생활방식은 이기적이고, 상상력은 빈곤하다. 현실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현실 안에서 경쟁에 이기고, 거기서 얻은 특권을 향유하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영어, 수학 공부다. 높은 학습능력을 자랑하는 괜찮은 대학의 신입생들이 의외로 보수적이고 고답적이며 현실순응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을 확인하고 놀라곤 했는데, 중고교 교육을 보면 우연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차라리 학교가 중2의 일탈적이고 창의적인 상상력과 패기를 제대로 키워내는 장소가 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이들에게는 지금도 여전히 학교는“담탱이의 지배 아래 짱에서부터 좁밥에 이르는 서열이 지배하며 야리거나 생까면 다구리 당할 정도로 깨질 수도 있는 전장”(『18세상』, 김성윤 지음, 북인더캡, 2014.1)이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 집에서 잠시 게임하고 놀라치면“아 ㅅ ㅂ 엄마크리 강림, 존나 컴질도 못하게 해 ㅋㅋㄷ 뭐— 파덜어택 걸린 것보다야 낫지만”(『18세상』).

이런 대화를 보면 애들 용어로 ㅎㄷㄷ 하다. 우선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 다음에는 뭔가 10대 만의 독특한 종족적 특징을 견지하는 은어와 컴퓨터 게임에서 차용한 언어조합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현란함과 발랄함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보고 저질욕과 게임이 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10대들에게 투사된 세계는 곧 어른들의 세계이고, 이를 아이들은 그들의 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반추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 욕은 이들에게 분출구 역할을 하고, 친근한 게임의 세계는 난감한 상황을 재미있게 해석하는 틀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일진이 빵셔틀(빵심부름) 시키는 2010년대 판 교실의 분위기도 서열과 위계로 가득 찬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일그러진 모방이다. 그런 집과 교실과 세상에 대한 10대들의 탄식은 이렇다.

“마더크리나 파덜어택 때문에 대문 밖을 나서면 ‘초글링’러시가 한창이고, 친구라도 불러낼라치면 녀석은 수능‘포텐’터뜨려보겠다며‘쉴드’치면서‘버로우’타고 있으며, 나도‘열렙’해서 이놈의 세상에서‘만렙’이라도 찍어볼까 하지만, ‘현질’도 못하는 신세, ‘레어템’‘득템’도 어려운 내 인생은 속절없이 렉만 걸려있을 뿐이다.”(『18세상』)

대충 해석은‘엄마아빠 잔소리 때문에 밖으로 나오면 초딩들만 넘치고, 친구랑 어울리고 싶은데 정작 친구는 수능 잘 보겠다고 두문불출이고,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집안사정은 넉넉지 못하고, 그렇다고 운이 좋은 것도 아니기에 자기 인생은 뒤처짐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용어만으로도 이 아이가 게임에 몰두하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내용을 보면 그럴 만한 이유도 드러난다. 그렇게 10대는 어른들이 부여한 틀 주위에서 배회하면서, 이방인 종족처럼 지낸다. 이들에게‘무서운’, ‘위험한’등의 수식어가 붙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도발적인 언어 속에 언뜻언뜻 내비치는 기성세대의 그늘이 걷혀질 수 있다면, 그 위험하고도 창조적인 판타지는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창남 서평위원/한양대·비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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