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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방향 모색하는 사회철학적 논의 점화시켰다
대안적 방향 모색하는 사회철학적 논의 점화시켰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12.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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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인정의 시대: 현대 사회 변동과 5대 인정』 문성훈 지음|사월의책|483쪽|22,000원

 
인정이론을 현대사회 분석과 비판을 위한 개념적 틀로 확장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사회비판의 규범적 토대 확보에 집중해 온 기존의 인정이론에서 전혀 수행된 바 없는 새로운 도전이다.

최근 사회철학의 핵심 문제에 대답하려는, 그리고 이런 점에서 반드시 주목할 만한 혁신적이고 모험적인 저작이 출간됐다. 『인정의 시대』가 그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현존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적 사회상을 제시한다는 사회철학 본연의 과제에 집중한다. 이 책은 현대사회변동을 인정관계 구조변화로 해석하면서 ‘5대 인정’을 새로운 진보이념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처럼 사회철학 본연의 과제를 자신의 과제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무모하기조차 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이는 그간 사회철학 분야에서 이런 식의 작업이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입증해 준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정의 시대』에 새삼 주목하게 된다.

사회철학 본연의 과제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비판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와 입장이 필요하며, 동시에 이를 기초로 정치,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현대사회 전반의 변동 과정을 폭넓게 추적하는 지난한 작업이 불가피하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인정 개념을 통해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이를 기초로 5대 인정이라는 틀 속에서 현대사회의 변동 과정에 대한 포괄적 분석을 시도한다.
이러한 작업이 출발하는 지점은 바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확고한 시대인식이다. 신자유주의의 근본적 문제점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1% 대 99% 사회’로 상징되는 사회적 양극화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토대를 사회적 ‘인정 관계’에서 찾는다.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사회적 통합을 강화한다는 것은 결국 상호인정을 통한 공동체적 연대에 기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을 전거로 삼아
이런 생각은 악셀 호네트의 인정이론을 전거로 삼고 있다. 그간 저자의 작업들을 통해 잘 소개됐듯이, 인정이론은 모든 사회적 불의의 핵심을 사회적 무시로 규정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의 행복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개성의 확대와 동시에 그러한 개성에 대한 폭넓은 사회적 인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물론 여기에는 모든 사회적 불의의 핵심이 사회적 무시 혹은 인정관계의 훼손에 있으며, 사회적 인정은 개인의 긍정적 자기관계와 행복 실현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고, 모든 사회관계는 특정한 방식의 인정질서를 전제하고 있다는 인정이론 고유의 이론적 통찰들이 전제돼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인정이론의 일반적 통찰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며, 이러한 통찰이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과 대안 모색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정이론은 마르크스주의, 합리성 중심의 사회비판,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그간 제시해 온 현대사회 비판과는 구별되면서도 오히려 그러한 비판들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비판의 이론적 지평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정 개념은 마르크스의 생산관계 비판을 한 요소로 포용할 수 있고,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 조건을 해명하는 동시에 상호주관성을 통해 근대 비판과 계승을 동시에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제 저자는 이러한 이론적 입장을 기초로 현대사회의 변동과정 전반을 본격적으로 추적하고 여기에 담긴 새로운 인정 요구를 도출해냄으로써 오늘날 대안적 사회의 토대가 되는 ‘인정관계’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5대 인정이며, 이 부분은 온전히 저자의 독창적 시도로 평가돼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호네트는 현대사회의 등장을 사랑, 권리, 연대라는 세 가지 ‘인정유형’의 제도화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인정유형은 타인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떤 행위유형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인지를 보여줄 뿐, 사회구성원들이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고 있고, 또 인정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정관계’와는 다른 것이다. 더구나 이런 인정관계에 주목한다면 사랑, 권리, 연대가 시대적으로 어떻게 그 대상과 내용을 달리하는지 구체적 변동과정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 틀에 기초해 저자는 현대사회의 다양한 영역들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정체성과 자기의식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추적하고, 이를 통해 각각의 사회영역에서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새로운 인정관계의 내용을 해명한다. 이와 같이 인정이론을 현대사회 분석과 비판을 위한 개념적 틀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사회비판의 규범적 토대 확보에 집중해 온 기존의 인정이론에서 전혀 수행된 바 없는 새로운 도전이다.
지면의 제약으로 인해, 현대사회의 변동과정을 인정관계 구조변화로 해석하면서 대안적 인정관계를 제시하려는 이 저작의 방대한 작업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표제어들만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즉 친밀성 영역에서는 ‘역할분담자에서 대체불가능한 존재’로, 정치 영역에서는 ‘유권자에서 주권자’로, 경제 영역에서는 ‘생산주체에서 사회적 활동주체’로, 문화 영역에서는 ‘동질적 존재에서 차이의 주체’로, 세계질서 영역에서는 ‘국적적 존재에서 세계시민’으로 인정관계의 구조변화가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 비판이론 수용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한국에서 비판이론의 수용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저작은 서구 비판이론의 소개나 단편적 논평의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대안적 발전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는 한국사회를 비롯해 현대사회의 구조변화에 대한 비판적 진단과 대안제시를 위해 오랫 동안 지속된 저자의 고민이 가져온 성과일 것이다.
또한 이 저작은 다층적 사회갈등의 분출 속에서 파편화 되고 있는 기존의 사회비판 유형들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진보가 지향해야 할 포괄적 이념과 구체적인 내용들을 동시에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저작은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가족과 세계 질서 영역에서 제기되는 핵심적 요구들을 5대 인정으로 개념화함으로써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요구들을 집약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무시가 모든 사회적 불의를 포괄할 수 있을까? 인정이 정의에 앞서는 으뜸패가 될 수 있을까?’, ‘모든 사회관계의 토대로 규정되고 있는 인정질서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정말로 제반 사회관계의 ‘토대’가 될 수 있을까?’, ‘상충하는 정체성 정치의 요구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과연 인정이론 내부에서 확보될 수 있을까?’ 등 수 많은 질문들을 지울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모쪼록 이 저작의 출간을 계기로 오늘날 한국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대안적 방향을 모색하는 사회 철학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점화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김원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필자는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 『현대정치철학의 테제들』등이 있고, 『하버마스와 현대사회』, 『분배냐 인정이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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