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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남명’ … 그가 던진 질문은?
길 위에서 만난 ‘남명’ … 그가 던진 질문은?
  • 교수신문
  • 승인 2014.12.1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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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남명학의 생성공간: 용처럼 나타나고 우레처럼 소리쳐라』 정우락 지음|도서출판 역락|525쪽|35,000원


남명학의 대중성 제고는 우리 시대로 남명을 불러내 그의 고민과 혜안을 함께 청취하자는 취지다. 그리고 남명학의 외연 확장은 자료 부족이라는 남명학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있어 매우 유효하다.

남명사상의 핵심이 敬義에 있다는 것은 거듭 논의돼 왔다. 그 자신 창문과 벽 사이에 이 두 글자를 써서 붙여두고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칼에 ‘內明者敬(안으로 마음을 밝히는 것이 경이요), 外斷者義(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이 의다)’라는 글귀를 새겨두고 자신의 마음을 단속했다. 그리고 惺惺子라는 방울을 차고 다니면서 마음을 일깨우는 도구로 삼기도 했다. ‘성성’은 다름 아닌 청명하고 맑은 자아를 의미하니, 그는 방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를 깨치고, 이를 통해 성인이 걷던 길을 걷고자 했던 것이다.


남명은 자신에게 남은 것은 오직 실천이라 믿었다. 이 때문에 “정자와 주자 이후 반드시 저술할 필요는 없다(程朱後不必著述)”라고 한 바 있으며, 저술보다 당대의 부조리를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성찰을 통해 사회가 개선되기를 강력하게 희망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언제나 결기가 서려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남명은 퇴계학파 내에서 화려하게 진행되던 성리논쟁을 지켜보면서, 마침내 퇴계에게 편지해 “손으로 물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만 천리를 담론해 헛된 이름이나 훔쳐서 남을 속이려 하고 있다”고 통매하기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일련의 학자들에 의해 소외와 오해에서 바로잡자며 남명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현재 남명학과 남명학파에 대한 연구는 1천900편에 육박하는 논문과 저술이 축적됐다. 연구 자료가 극히 제한적임에도 불구하고 남명학은 전방위적으로 탐구돼 이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말았다. 최근 남명학 연구가 거의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동어반복과 제자리 맴돌기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점에 놓인 것이다.

남명학에 대한 문화론적 접근
남명학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 즉 텍스트 중심주의적 연구는 남명학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긴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제한된 자료로 인한 한계 역시 뚜렷했다. 이러한 자각 하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여기서 제출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화론적 접근이다. 문화론은 융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며, 우리의 삶에 대한 현재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남명학 연구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관점의 전환은 절실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남명학에 대한 문화론적 비전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내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남명학의 생성공간’이다. 남명이 특정 공간에 대한 작품을 남기면, 후인들은 이것을 次韻의 형식으로 계승하기도 했고, 때로 이것을 詩板으로 제작해 관련 건축물에 게시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아가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남명이 그린 ‘神明舍圖’는 후인들이 합천의 雷龍亭을 짓는 데 있어 설계도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남명학은 ‘계승-변용-발전’되는 과정을 거쳤으나 남명학을 문화 생성공간의 측면에서 본격화 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비전문적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명학의 생성공간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거주지에 따른 공간, 문학창작에 따른 공간, 중국이라는 상상의 공간이 그것이다. 남명학은 그가 거주했던 공간을 중심으로 강한 구심력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모색기(31~45세)의 김해 산해정, 정립기(45~60세)의 합천 뇌룡정과 계부당, 온축기(61~72세)의 산청 산천재는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남명학의 생성공간은 거주지를 중심에 두지만 이를 훨씬 뛰어넘기도 한다. 함양군·청도군·양산시·경주시·영천시·보은군·진주시·거창군·고령군·남원시·광주시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확장은 상상력이 가미되면서 중국의 사천성 삼협, 산동성 곡부, 항주시 부춘산 등으로 이어지게 되고, 따라서 남명학은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는 발판을 갖추게 됐다.


그렇다면 남명학의 문화론적 접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남명학에 대한 체험적 이해와 대중성 제고, 그리고 외연 확장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남명학의 체험적 이해는 다양하게 이뤄질 수 있으나 생성공간에 대한 답사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다. 이는 동선을 고려하면서 관심을 갖고 꾸준히 발굴 개발해야 할 부분이다. 남명학의 대중성 제고는 우리시대로 남명을 불러내 그의 고민과 혜안을 함께 청취하자는 취지다. 그리고 남명학의 외연 확장은 자료 부족이라는 남명학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있어 매우 유효하다. 이상의 몇 가지는 남명학이 현대사회와 맞물리면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결부돼 있다.


이 책에 나오는 남명학의 생성공간은 내가 모두 직접 답사를 한 곳이다. 여기서 나는 수없는 남명의 공간 상상력을 만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우리 국토에 내재돼 있는 의로움의 문화역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지조를 생명처럼 여기는 처사 남명의 자취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우리 국토가 거느린 사상사적 함의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은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이름나고, 물은 깊지 않아도 용이 서려 있으면 신령하다고 했던가. 우리 국토에서 남명은 신선이자 용이었다. 하물며 산이 높고 물이 깊은 데 있어서랴!

한국학 연구의 새로운 길 찾기
전문성과 대중성,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인문학자에게 던지는 이 같은 질문은 愚問일 뿐만 아니라 불편하기까지 하다. 당연히 전문성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흩어진 자료를 수집해 여기에 질서를 부여하고, 그 질서가 갖는 인문학적 의미를 찾는 것은 연구자에게 부여된 고유한 임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학문의 당대적 혹은 사회적 기능을 고려한다면, 이 우문이 그리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당대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지 못하는 학문이라면, 그것은 무용하거나 가치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연구실 아니면 길 위에 있었다. 연구실이 이론을 정비하는 곳이라면, 길은 그것을 현장에 접목시킬 수 있는 곳이다. 전문성과 대중성이 새의 두 날개나 수레의 두 바퀴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인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학문이 ‘지금’과 ‘여기’에 어떤 해답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남명이 말하지 않았던가. 보물 가게에서 가격만 흥정하다 소득 없이 돌아오는 것보다, 한 필의 베를 팔아 한 마리의 고기를 사오는 것이 더 낫다고. 이것은 당대의 高談性理를 비판한 것이지만, 이 책은 적어도 남명의 이 말을 경청하면서 쓴 것이라 하겠다.



정우락 경북대·국어국문학과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학과 철학 사이에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작품을 주로 읽어 왔다. 저서로는 『남명학파의 문학적 상상력』, 『삼국유사, 원시와 문명 사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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