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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에 숨은 인류 진화의 비밀
알코올에 숨은 인류 진화의 비밀
  •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 승인 2014.12.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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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82. 술과 영장류

▲ 인류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을 진화시켜 왔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게 됐을까. 이번 연구결과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매우 흥미롭다. 사진출처=<사이언스>
술의 계절이 돌아왔다. 12월이면 송년회 등으로 우리 간이 쉴 새 없다. 그런데 알코올을 잘 마시는 것이 진화의 특징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사이언스>는 최근 「알코올을 소비하는 능력이 영장류 진화를 이끌어 왔을지 모른다(Ability to consume alcohol may have shaped primate evolution)」(이하 관련 내용 참조)는 독특한 소식을 전했다. 인류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능력 덕분에 땅에 살게 됐다는 것이다. 즉 다른 영장류에 비해 알코올을 대사작용 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가설이다. 관련 연구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12월 1일자로 실렸다.


술의 주성분은 에틸알코올(에탄올)이다. 물론 술에는 물이 포함돼 있다. 술의 기원은 과실주일 것으로 추정되며,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면서 곡주가 탄생했다. 알코올성 음료 중 효모와 연관된 것들은 포도주, 사케, 맥주, 증류주 등이다. 효모들은 당을 발효해 에탄올을 만든다. 한편 인류는 예나 지금이나 祭儀에서 술을 신에게 바치는 경건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생긴 알코올에 어떤 상징이 있다는 뜻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이나 취기를 불러오는 에탄올을 분해하는 신체의 능력은 1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로운 연구결과는 인류의 선조격인 영장류들의 행동을 밝히고 왜 알코올 중독 혹은 간단히 한 잔 하고 싶은 욕구가 애초에 존재했는지 알려준다. 뉴멕시코주립대 인류학자인 브렌다 베네핏은 이번 연구에 참여하진 않았으나 “연구진들이 이 모든 진화 역사를 한데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1천만년 전부터 알코올 분해효소 발달
인류가 에탄올을 대사작용 하는 능력은 알코올 탈수소 효소 ‘ADH4’(일종의 소화효소로, 알코올을 분해)를 포함하는 단백질 집합에 의존한다. 탈남 없이 적당량 술을 마신 사람들에 한해서 말이다. 물론 모든 영장류들이 에탄올을 분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요수인 ADH4를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 영장류들이 알코올을 분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여우원숭이와 개코원숭이는 인간에 비해 덜 효과적인 ADH4 버전을 갖고 있다. 연구진들은 인간이 얼마나 오래 전에 훨씬 더 활성화된 효소 형태를 진화시켜 왔는지 모른다. 다만 몇몇 과학자들은 인간이 약 9천년 전에 발효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진화가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플로리다 주에 있는 샌타페이 칼리지(Santa Fe College)의 생물학자 매튜 캐리건과 연구진들은 ADH4 단백질의 유전자 배열 순서를 분석했다. 19개 현대 영장류들을 그 대상으로 했으며, 영장류 역사에서 유전자 배열 차이를 결정하기 위해 역추적해 조사했다. 연구진들은 고대 영장류들의 단백질 복사본을 만들었다. 각각은 다른 유전자 버전으로 코드화했다. 연구 배경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에탄올을 대사 작용해 분해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 결과, 5천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고대 영장류의 ADH4는 적은 양의 에탄올만 느리게 분해했다. 하지만 약 1천만 년 전, 인류와 침팬지, 고릴라의 같은 조상은 40배나 훨씬 더 효율적인 에탄올 분해 대사작용의 단백질을 진화시켜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유사한 시기에 지구는 빙하기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식량 자원이 달라졌다. 그래서 영장류 조상들은 지상에서 탐험을 시작했다”고 캐리건은 말한다. 이로부터 영장류들은 나무 열매만 먹는 게 아니라 땅에 떨어진 열매도 먹게 된다. 떨어진 열매들이 박테리아에 노출되면 당이 알코올로 바뀐다. 서서히 에탄올이 늘어나며 축적되기 시작하는 셈이다.


캐리건은 “만약 이러한 ADH4상 변이가 없는 영장류라면 에탄올이 빠르게 핏속으로 들어가 금방 취하게 됐을 것이다”고 말한다. 변이가 없었던 원숭이들은 상한 열매들로부터 쉽게 아프거나 금방 취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영역을 지킬 수 없고 식량을 찾아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구진들은 새로운 변이를 겪은 영장류들은 더 많은 먹을거리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한 유전자들이 인류와 침팬지 계통에 남게 된다.
왜 인간의 뇌는 알코올 섭취를 쾌락의 방편(pleasure pathways. 직역 하면 쾌락 통로라는 뜻으로 뇌가 인지하는 쾌락의 수단 정도로 이해하면 됨)으로 연결시키려고 진화해온 것일까? 캐리건은 이번 연구 결과로 이 같은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알코올을 이루는 에탄올은 주요 식량자원과 결부돼 있다. 그는 “몇몇 사람들이 음식에 집착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알코올과 사탕이 온 사방에 깔려 있지 않는 한 중독되기는 쉽지 않으나, 한번 발견하면 과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에탄올 분해 능력에 따라 뒤바뀐 운명
ADH4를 추적하면 인류 진화의 비밀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인간 영장류 조상은 이미 다른 원숭이에 비해 1천만 년 전부터 다른 종류의 ADH4를 보유해 왔다. 이 때문에 오우라노피테쿠스(Ouranopithecus. 아시아계 유인원으로 800만 년에서 900만 년 사이 화석에서 발견된다)가 인류와 침팬지 진화상 첫 단계였다는 것에 의문점을 갖게 한다. 영장류 족보의 역사상 이 시점에서 인류는 이미 아시아계 유인원과 분리됐을 것이라고 베네핏은 설명한다. 이유인즉, 아시아계 유인원은 훨씬 덜 효율적인 ADH4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번 연구 결과는 1천만 년 전부터 영장류들이 교류해온 방식을 추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베네핏은 “우리는 언제나 어떤 영장류들은 땅에 사는 반면 다른 영장류들은 그렇지 못했는지 궁금해왔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로 인해 땅에 떨어진 발효된 과일을 먹는 영장류들이 지상에 머물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된 셈이다.
한 네티즌은 땅에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매달린 채 발효되는 열매들이 있고, 이를 먹는 다람쥐와 새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인류는 에탄올을 분해하는 더 나은 방법을 진화시켜 왔을 거라는 뜻이다. 아무튼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김재호 학술객원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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