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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미술 이론서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갖춘 미술 이론서
  •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철학
  • 승인 2014.11.20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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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 『미술론 강의』 오병남 지음|세창출판사|383쪽|20,000원

 

유명한 화가의 전시회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세계 각국의 유명 박물관을 취미삼아 순례하듯 하는 사람들에게도 미술이론의 배경이 없이는 그림이나 조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작품의 양식이 다르고, 심지어는 같은 양식 안에서도 작가에 따라 미를 표현하는 세부적인 방식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술사가 작품들의 이해와 감상에 어느 정도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술사에 대한 지식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미술품의 이해에는 더욱 깊은 미술의 이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술이론은 미술사와는 다르다. 미술사가 사실로서의 미술 작품에 대한 설명이라면, 미술이론은 이런 작품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해명이다. 그러므로 미술이론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탐구하는 미학의 한 영역이 된다. 미학은 지금도 철학의 한 분과로서 추상적 사유와 복잡한 논리적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미술이론의 딜레마는 여기서 발생한다. 미술품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미술이론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춰야 하지만, 미술이론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난점을 안고 있다.
오병남 교수의 『미술론 강의』는 이런 난문제를 해결한 力著다. 이 책이 돋보이는 점은 우선 전문적 깊이를 가지면서도 이런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서술됐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상극에 가까운 전문성과 대중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이 책의 독창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크게 돋보인다.


1) 단순히 서양의 미술이론들을 시대별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관점에서 미술이론을 전개했다.
2) 미술이론을 인간관과 연관시켜 논의하면서, 현대 미술과 포스트모던 등 오늘날의 미술이 잘못된 길로 나가고 있음을 비판한다.
3) 한국적 미의 본질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인상주의 이후의 현대 미술과 그것을 정당화해 온 이론을 양극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하나는 정신의 절대적 자유를 이상으로 추구한 추상 형식주의 미술론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이 매개되지 않은 근원적 자연의 자발성을 이상으로 추구한 추상 표현주의 미술론이다.” 추상 형식주의는 세잔에서 시작하는 유미주의다. 유미주의는 이 유한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그 의미를 묻고자 한다. 그렇지만 신이 없는 세계는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우리를 낙원으로 인도해 주는 구원의 손길은 어디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서 만족을 찾을 수도 없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 우리는 던져져 있다. 카뮈가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그렸던 그런 부조리한 세상이다.
이런 부조리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유미주의자는 세계를 부정하고 주관을 긍정하는 길을 택했다. 말하자면, 유미주의자는 이 세계를 자유로운 정신이 구축한 가상적 세계로 대체시킴으로써 부조리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이렇게 볼 때 유미주의자의 근본원리는 부정의 찬미인 셈이다. 이 때 세계를 부정하는 방식이 아이러니다.


▲ 저자는 책의 9장과 10장에서 고유섭의 미학사상과 박종홍의 석굴암 본존 불상 고찰을 다뤘다. 아마도 동양미학과 한국미학의 지평을 더듬기 위한 작업으로 이해된다. 사진 왼쪽이 고유섭, 오른쪽이 박종홍.
고흐에서 출발해 마르크와 칸딘스키로 이어지는 추상 표현주의는 근원적 존재를 드러내려는 시도다. 이것은 이성적 인간관과는 전혀 다른 생물학적 욕망의 인간관과 연결돼 있다. 이성보다는 욕망이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런 욕망은 성욕이나 살려는 맹목적 의지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보다 근원적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정신을 부정해야 하며, 정신이 구성해낸 허식을 벗겨내야 한다. 이 때 사용되는 방식이 공감이며 범신론적 감정이입이다. 공감은 미술가로 하여금 다른 피조물들의 영혼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열쇠다.
저자는 자유로운 정신이나 근원적 존재에서 착상된 현대 미술이 잘못된 것이듯이, 포스트모던 미술도 또 다른 입장에서 잘못된 기획임을 주장한다. 인간은 추상 형식주의 미술관이 표방했던 정신만의 존재도 아니며, 추상 표현주의미술의 자연적 존재도 아님은 물론,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단순한 존재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인상주의 이후 추구된 현대미술과 포스트모던 미술이 기반하고 있는 인간 이해는 모두 허구적이다. 그런 인간들은 대지 위에 발을 붙이고 있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여기서 저자는 진정으로 참된 미술이 새롭게 잉태되려면 그것은 미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의 설정과 긴밀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새롭게 요구되는 미술은 극단적인 현대의 두 인간관을 반성케 하고 교정시켜 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한국적 미에 대한 설명은 미술론이 추구해야 할 마지막 과제다. 한국 미학의 기본 개념이 서구미학과 같이 ‘뷰티(beauty)’와 ‘파인 아트(fine art)’일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노자』와 『주역』, 『논어』 등에서 논의됐던, 미와 예술, 육예 등을 고찰하면서, 동서양의 예술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구명한다. “서양의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며, 동양의 예술은 자연의 구현이다.” 그가 이런 논의를 기초로 해서 다룬 고유섭과 박종홍의 한국 미술론에 대한 설명은 지금까지의 어떤 해설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美는 眞, 善과 더불어 인류가 역사의 시작과 함께 추구해 온 최고의 가치다. 이들은 때로는 동일시되기도 했다. 미는 우리에게 항상 특별한 즐거움과 만족을 주지만, 미에 대한 이해나 미를 창조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 이 책은 미와 미술에 대한 간결하고 명료한 이론적 안내서다.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철학
필자는 서울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명예교수로 있으며, 열암학술상과 서우철학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역사학의 철학』, 『역사주의와 역사철학』, 『지식의 성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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