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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활자들 … 근대 문학유산을 방치할텐가?
사라지는 활자들 … 근대 문학유산을 방치할텐가?
  •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국문학
  • 승인 2014.11.04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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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 100년, 자료의 가치를 생각하다’ 전문가 심포지엄, 뭘 다뤘나

▲ 이번 전문가심포지엄에 맞춰 ‘한국근대문학을 만나다’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근대문학유산이랄 수 있는 소설과 시집들이다. 사진제공=화봉문고
“근대 문학 자료는 漢籍과 달라서 산화 방지처리가 시급합니다. 한적은 지금도 비교적 상태가 양호하지만, 일부 근대 문학 자료는 책이 바스러지는 경우가 많아요. 심지어 어떤 책은 안의 활자가 사라진 경우도 있어요. 책의 형태만 있고 잉크가 지워진 경우이지요.” 연세대 김영민 교수(국어국문학과)는 근대 문학 자료의 훼손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희귀자료를 개인이 소장하고 있을 경우, 산화 방지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계속 망실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희귀자료의 경우는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 계획을 세워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 김영민 교수의 주장이다.


근대문학 자료의 보존과 가치 평가에 대한 학문적 논의를 하는 심포지엄이 지난달 31일(금)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있었다. ‘한국 근대문학 100년, 자료의 가치를 생각하다―근대문학자료 현황과 활용방안을 위한 심포지엄’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근대문학 자료 보존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행사는 7월부터 서울대 산학협력단 ‘국내 근대문학자료 소장 실태조사 프로젝트 연구팀’(연구책임자,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근대문학자료 실태조사’를 보고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전문가 심포지엄에 맞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개최한 ‘한국근대문학을 만나다’ 특별전시회였다.


이인직 『혈의 누』(광학서포, 1907), 염상섭 『만세전』(고려공사, 1924), 이기영 『서화』(동광당서점, 1936), 김동환 『국경의 밤』(한성도서, 1925년 재판본), 백석 『사슴』(조선인쇄주식회사, 1936),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 등과 같은 희귀자료들이 전시됐다. ‘근대문학자료’를 시각적으로 제시한 전시인 셈이다.
식전 행사에서는 근대문학자료 3만여권을 소장하고 있는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가 「문학서적 수집 33년」라는 주제로 ‘문학책과의 인연’을 밝혔고, 소설가 박태원의 차남인 박재영씨도 「문학가가 남긴 책들」에서 ‘희귀자료의 공유와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체적인 논의는, 안용희 근대문학자료 실태조사팀 공동연구원은 「근대문학자료 조사 프로젝트 성과 보고」를 발표했고, 유성호 한양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근대문학자료 서지의 중요성」에 관해 주제 발표를 했다. 활용의 측면에서는 「근대문학자료 보존과 문학관 운영」에 대해 김선기 시문학파기념관 관장이 논의를 펼쳤고, 서재길 국민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해외문학관 설립 사례와 한국근대문학관의 방향」에 대한 주제 발표를 하는 진행이었다. 토론에는 서정자 초당대 명예교수, 강진호 성신여대 교수, 이동순 조선대 교수가 참여해 논의를 풍부하게 돋궜다.


그간 한국 문학계는 근대문학 자료의 보존과 체계적 관리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근대문학연구자들과 서지학자들, 그리고 장서가들도 망실되고 있는 근대문학자료에 대한 현황파악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여승구 화봉문고 대표는 “한국 근대문학도서도 보존이 필요한 문화재가 되고 있다”면서, 이제는 “도서관에서 근대문학도서가 훼손되도록 방치할 것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서 보존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문인 유족을 대표해 강연한 박재영씨도 “전국 각 곳의 도서관에서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버님의 작품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타깝다고 했다. 그의 강연 요지는 이렇다. 그간 근대문학도서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 작업이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전국에 산개해 있는 문학자료에 접근이 용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도서관들은 오래전부터 책을 열람하는 곳이자 중요한 도서를 보존하는 박물관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근대문학도서도 어느덧 1백년의 역사를 가지게 됨에 따라 ‘국립근대문학관’ 같은 전문 기관을 설립해 도서를 체계적으로 보존하면서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안용희 연구원은 발표문을 통해 “지금까지도 근대문학자료가 언제 얼마나 출판됐는지 알 수 있는 근대문학 출판 총목록이 작성돼 있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근대문학자료 총목록이 없다보니 “중요한 자료의 소재지나 현황 파악도 용이하지 않은 실정”이라는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 그는 ‘근대문학 자료의 가치 평가를 위한 체계적 평가 시스템’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료의 예술적 가치, 자료의 역사적 가치, 자료의 서지적 가치로 나눠 “문학적 중요성과 작품의 완성도, 시대적 맥락과 독자 수용적 측면, 그리고 자료의 희귀성과 보존상태”를 고려해 근대문학자료의 가치평가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파악된 근대문학자료에 대해서도 밝혔는데, 2천800여종의 근대문학자료 가운데 1만5천건에서 2만5천건의 자료가 보존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이들 자료를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할 것인가다. 대안으로 발표자들이 제시한 것은 ‘국립근대문학관’의 건립이었다. 유성호 교수는 근대문학자료에 대한 전향적 접근을 제안하면서, ‘근대문학 도서의 문화유산 보존’을 역설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근대문학 자료 서지의 중요성이 거론될 때 반드시 구술 혹은 기억의 자료들이 망라”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술사가 “과거 경험들을 인터뷰 기록을 통해 재현하고 거기서 얻어진 역사·사회적 정보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적 기억을 현재로 불러내”기에 ‘현장성과 다양성’을 지닌 중요한 자료로 취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이들 구술자료까지 포함하는 국가 차원의 관리를 위해 ‘국립근대문학관건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립근대문학관이 건립된다면 어떤 형태로 활용될 수 있을까. ‘시문학파문학관’의 운영사례와 프랑스 문학관의 사례는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제공해줬다. 김선기 관장은 현대적 의미의 문학관은 박제화된 전시연출 기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희귀 소장 자료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으로 온라인-오프라인과의 연계를 통해 문학적·서지학적 가치가 큰 자료를 독자들에게 제공해 문학관으로서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활용적 측면은 프랑스 문학관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서재길 교수는 “방문객과 지역사회의 능동적인 체험과 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구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제시했다.
『혈의 누』, 『만세전』, 『서화』, 『국경의 밤』, 『사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등이 국립근대문학관에서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온라인과 복각본 시스템을 통해 원하는 연구자들에게 서비스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이들 책을 전시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한국근대문학을 만나다’ 특별전은 오는 12월 7일까지 계속된다. 한국근대문학의 대표작가 93명의 단행본 156종과 각종 잡지 28종이 전시되는 현장에서 ‘국립근대문학관 건립’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고 본다.

오창은 중앙대 교양학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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