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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아의 ‘슬리퍼’에 새겨진 서명의 의미
루크레티아의 ‘슬리퍼’에 새겨진 서명의 의미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10.15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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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가 말하는 그림을 읽는 몇 가지 방법


 

▲ 티치아노, 「루크레티아의 능욕」, 1568~1576, 케임브리지대 피츠윌리엄미술관 소장.

리 슈나이더 애덤스는 뉴욕시립대 존 제이 대학에서 미술사 교수로 있다. 그의 책 『미술사벙법론』(박은영 옮김, 서울하우스 刊)이 최근 번역, 소개됐다. 옮긴이에 의하면 이 책의 특징은 “무엇보다 미술의 해석에 필요한 심오한 이론들의 핵심을 포괄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요약해 간결하게 전달하는 점”에 있다. 쉽게 말해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해준다는 것. 비록 미술사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론이긴 하지만, 이 여덟 가지 방법론을 통해 그림을 어느 정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책임에 틀림없다. 저자와의 가상 대화로 저자가 말하는 방법론을 들여다 본다.

문: 케임브리지 피츠월리엄 미술관에 있는 티치아노의 「루크레티아의 능욕」(혹은 「타르퀴니우스와 루크레티아」로도 불림)을 예로 들어 다양한 방법론적 분석을 시도했는데, 형식주의, 도상학,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기호학, 정신분석 방법의 적용을 듣고 싶다.

: 작가는 이 사건을 여러 버전으로 그렸으므로 아마도 그와 그의 후원자가 이 주제에 흥미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피츠윌리엄에 있는 그림은 1568년에서 1571년 사이에 그린 것인데,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소장한 많은 작품들 중의 하나였다. 티치아노는 그를 위해 신화 그림을 여러 점 제작했다. 대부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나오는 대로, 그리스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가 인간 여인들을 유혹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의 경우, 티치아노는 오비디우스의 『달력』과 리비우스의 『로마사』에 나오는 전설적인 로마의 역사 중 한 일화를 묘사했다.

문: 그렇다면 이 작품을 ‘형식주의’로 읽어낸다면 어떤 점에 주목할 수 있겠나.

답: 형식주의 방법으로 분석해보면, 이 그림은 전형적인 티치아노의 후기 회화라 할 수 있다. 엉성한 붓자국, 풍부한 질감, 극적인 동작이 특징이다. 강한 대각선들, 인물들의 단축법, 커튼과 침대 시트의 반복되는 곡선들이 제한된 공간 속에 압축돼 있어 더 힘찬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압축의 느낌은 침대의 양 끝이 잘린 것, 타르퀴니우스의 왼발이 그림 가장 자리에서 잘린 듯한 배치, 커튼을 당기는 맨 왼쪽 인물 등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색채는 선명한 붉은색들―티치아노의 특징적인 색―, 금색, 초록, 날카롭게 대조되는 검정과 흰색 등을 써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작품은 후기 르네상스라는 맥락에 놓을 수 있다. 대각선들이 우세하지만 그 선들은 공간의 건축적 구조 속에 있지 않고 주로 인물들 속에 들어 있다. 또한 침대와 바닥의 수평선과 커튼이 내포하는 수직의 벽에 의해 한정된다. 따라서 이러한 장면설정은 이른바 르네상스 공간의 합리성에 부합된다. 인물들은 보다 자연주의적인 신체비율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르네상스 초기보다 후기 양식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문: 당신은 “이 그림에서 형식의 강한 충돌이 그 내용, 즉 공격과 저항의 느낌과 일치한다”라고 말하면서 도상학적 방법으로 나아갔다.

답:
이 그림을 도상학적으로 접근하려면 그림의 기초가 된 텍스트와 티치아노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어떻게 ‘썼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도상학적 연구방법의 창시자인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를 따라 첫 번째 단계에서 해석하자면, 우리는 한 남자가 어떤 여자를 공격하고 있고 제 3의 인물이 커튼 뒤에서 훔쳐보고 있는 그림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의 해석에서는 수많은 텍스트가 이 주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커튼 뒤에서 훔쳐보는 사람과 화면 우측 하단의 슬리퍼는 리비우스의 원전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에 따라 이 그림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를 독해해 보면 수많은 가능성을 만나게 된다. 고대 로마의 문헌들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의미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데, 오비디우스는 이 이야기가 에트루리아 왕정이 끝나고 로마 공화정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은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으로 나아가게 한다.

문: 작품이 놓이는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중시한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은 문학예술을 분석하는 데 다양하게 원용되고 있다. 이렇게 접근했을 때 환원론에 흐를 수도 있지 않나?

답:
마르크스주의 해석을 환원론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것이 형식주의에 대한 반동이자 문화적 맥락의 여러 양상들을 포함하는 도상학의 확장으로 이해하면 좋겠다. 에트루리아의 왕 타르퀴니우스는 펠리페 2세처럼 소유계층의 권력 남용을 나타낸다. 루크레티아와 그녀의 가족은 펠리페의 신하들처럼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대표한다. 그리고 티치아노는 예술가 노동자로서 그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된 것처럼 보인다.

문: 이제 ‘페미니즘’으로 이 작품을 바라볼 때가 됐다.

답:
「루크레티아의 능욕」에 대한 페미니즘적 독해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관람자와의 관계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오비디우스에 의하면 여자는 남자와 싸워 이길 수 없고 남자보다 약하다. 티치아노는 루크레티아가 공격자에게 저항하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그녀를 누드로 묘사해 타르퀴니우스에게 공격당하기 쉽게 하고 관람자의 에로틱한 응시의 대상이 되게 했다. 지위가 낮아서 그려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고 남자보다 수동적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곡선들은 그의 대각선들에 대해, 그녀의 낮은 위치는 그의 높은 위치에 대해(사회적·형식적으로도), 그녀의 나체는 그의 화려한 옷에 대해, 그 모두가 희생자이며 객체이며 결국 남자의 공격으로 파괴되는 그녀의 역할을 강화한다.

문: 페미니즘적 독해가 실은 사회적·형식적인 내용과 양립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제 구조주의 기호학적 독해 차례다.

답:
티치아노의 그림에 대한 이 독해는 기호들과 전통적 이항대립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예를 들면, 루크레티아를 둘러싼 흰색은 서양에서 순결에 대한 기호다. 그러나 중국에서 흰색은 애도와 죽음의 기호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이는 순전히 임의적 관계를 갖는다. 붉은색은 물론 자연적 관계가 있는 피의 상징이다. 그러나 붉은색은 또 다른 임의적인 의미를 가리키는데, 폭력, 힘, 에너지, 부유함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이항적인 짝짓기는 남성/여성, 흑/백, 능동적/수동적, 옷 입은/나체의, 무장한/무장하지 않은, 힘센/취약한, 지배하는/지배당한, 숨겨진(커튼)/개방된(공격) 등을 포함한다. 물론 이런 대립항들은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도상학, 형식주의 독해에 모두 적용할 수 있다.

문: 당신은 정신분석을 기호학의 기호와 달리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고 했다. 정신분석학에서 상징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과 자연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지적인데.

답:
쉽게 눈에 띄는 ‘남근적 상징들’ 보다는 무의식적 원동력에 주목해보자. 티치아노의 여러 신화 그림들이 그렇듯 이 작품에서 작가는 희생자의 양면성을 표현한다. 여기서 그는 루크레티아가 타르퀴니우스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나타낸다. 그녀는 저항하고 있지만 그가 앞으로 움직이자 드러누움으로써 자신을 노출한다. 그녀의 입은 그의 포옹을 수용하는 듯 약간 벌어져 있다. 이 그림은 최초의 장면의 성격이 특히 두드러진다. 관람자인 우리가 시각적으로 폭력에 참여할 뿐 아니라 티치아노가 우리에게 또 다른 관람자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그의 신화적 유혹 장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에서는 맨 왼쪽에 하인인 듯한 구경꾼이 있어 커튼을 옆으로 당겨 침실을 엿보고 있다. 그래서 이 하인은 티치아노의 많은 신화적 유혹 장면에서 목격자 노릇을 하는 큐피드들과 상응한다.

티치아노의 서명에 대해, 로나 고픈(Rona Goffen)은 티치아노가 슬리퍼 한 짝에 ‘titianus f’라고 서명한 것이 성적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일차적 질서를 암시한다. 슬리퍼는 신발이나 발이나 수많은 다른 물건들처럼 페티시라는 뜻을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아에서 분리돼 잃어버린 남근을 무의식적으로 상징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짝의 신발이나 슬리퍼는 또한 뭔가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슬리퍼는 담는 그릇이자 담기는 물건이라는 양면성을 갖는다. 티치아노는 그 속에 서명을 함으로써 슬리퍼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남성 공격자와 여성 희생자 모두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그 장면을 엿보는 커튼 뒤 구경꾼과도 동일시한다. 어떤 작가도 그렇듯 자신의 모든 등장인물과 동일시하는 능력은 위대한 작품을 창작하는 천재의 필요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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