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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身全靈으로 古典을 대하는 일이야말로 현대인이 추구할 학문 태도”
“全身全靈으로 古典을 대하는 일이야말로 현대인이 추구할 학문 태도”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9.16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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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32회차 강연_ 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전통시대 학문의 의미와 실천, 그리고 방법’


전통시대 지식인들이라면 유학자들을 말할 것이다. 이들은 과연 학문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학문적 실천의 요체를 어디에 뒀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한 논자들에 의해 제기돼 왔다. 지난달 30일(토) ‘문화의 안과 밖’ 32회차 강연도 이와 관련된다.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의 ‘전통시대 학문의 의미와 실천, 그리고 방법’이 그것이다.
일본 교토대에서 중국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심 교수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한문학을 넘나들며 지금까지 단독 저서 30여 권, 번역서 40여 권 등을 내놓았다. 서울대 석사 시절 과도한 독서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데다 몇 년 전 뇌종양 수술로 오른쪽 귀의 청력마저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도 한문학 연구에 힘써왔다. “한국 한문학은 우리만의 색을 가진 고유 학문인 동시에 文史哲을 아우르는 종합 인문학”이며, “한문학 연구를 통해 우리 조상의 사상체계를 이루는 근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신념을 품어 왔기에 가능했다.
이번 강연에서 심 교수는 ‘道問學’, ‘尙友千古’ 등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통시대 학문의 의미와 실천, 그리고 방법’에 대한 자신의 성찰을 대중과 공유하고자 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전통시대의 학자들은 『중용』 27장에 나오는 ‘極高明而道中庸’, 즉, ‘고명’과 ‘중용’을 종합하는 것(개인이 ‘현실성’의 질곡을 극복하고 ‘본래성’을 획득하는 것)을 학문의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또, ‘학문은 엽등(등급을 건너뛰어 올라감)이 없다’는 학문의 고고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 층위의 학문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학문의 목표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학문이 어느 층위에 놓여 있는지를 수시로 스스로 점검하고 반성했다.
그에 반해 “현대의 공부는 학문의 각 단계에서 학문의 목표(이상)를 환기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 단계도 목표에 맞춰 적절히 조직돼 있지 않다.” 다시 말해, ‘고명’과 ‘중용’을 종합하려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단계 자체가 설정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동서고금의 다양한 지식인들의 ‘상우천고’ 사례들을 들려주는 심 교수는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고전을 대하는 일, 즉, 全身全靈으로 고전을 대하는 일이야말로 현대인이 추구할 학문 태도”라고 강조했다. 그의 강연을 따라가 본다.
사진·자료 제공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논어』를 펼치면 「學而」 제1장의 다음 말이 눈에 들어온다. ‘學而時習습之不亦說乎.’
學은 본받을 效나 깨달을 覺과 관계가 있다. 곧 배움이란 앞사람을 본받는 일과 스스로 깨닫는 일을 포괄한다. 而는 앞과 뒤를 이어 준다. 어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한다는 뜻이나 어떤 일을 하고 난 뒤 다른 일을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는 둘 다 통한다. 時는 보통 ‘때때로’라고 풀이되지만 ‘가끔’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때그때 늘’이란 뜻에 가깝다. 習은 깃(羽)자가 들어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새가 나는 법을 익히는 것처럼 반복을 통해 체득하는 일을 가리킨다. 學習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之는 여기서는 學의 내용을 가리킨다. 說은 기쁠 悅과 같으며, 마음 깊이 느끼는 기쁨인 悅樂을 가리킨다.
공자는 열다섯 살 때 배움에 뜻을 뒀다. 또한 배움에 싫증을 낸 적이 결코 없으며, 發憤忘食(애써 공부하느라 밥 먹는 것도 잊음)하다 늙음이 이르러 오는 것도 몰랐다. 실로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가치 있는 것을 배워 나가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학습이라고 흔히 복합어로 사용하지만 ‘學’과 ‘習’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習’은 이미 공부한 바를 연마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에 비해 ‘學’은 큰 선생의 지도를 받거나 이미 있는 지침에 따라 공부하는 일이다. 만일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큰 선생을 만나지 못한다면, 위로 소급해 옛 분을 자기의 선생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을 ‘私淑’이라고 한다. 그 유력한 방법이 바로 ‘尙友千古’다.
『맹자』 「萬章下」에 이런 말이 있다.


“한 고을의 훌륭한 선비일 경우에는 한 고을의 훌륭한 선비를 벗으로 사귀고, 한 나라의 훌륭한 선비일 경우에는 한 나라의 훌륭한 선비를 벗으로 사귀고, 천하의 훌륭한 선비일 경우에는 천하의 훌륭한 선비를 벗으로 사귄다. 천하의 훌륭한 선비와 벗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하면 다시 옛 시대로 올라가서 옛사람을 논한다. 그의 시를 낭송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당시의 그의 삶을 논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옛 시대로 올라가서 벗하는 것이다(一鄕之善士, 斯友一鄕之善士. 一國之善士, 斯友一國之善士. 天下之善士, 斯友天下之善士. 以友天下之善士爲未足, 又尙論古之人. 頌其詩, 讀其書, 不知其人, 可乎? 是以論其世也, 是尙友也).”


연암 박지원은 청나라 郭執桓(1746~1775)의 문집 『繪聲園集』에 서문을 써서, ‘상우천고’는 웃기는 말이라고 했다. 곽집환은, 홍대용이 1766년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교분을 맺게 된 그의 친구 鄧師閔을 통해, 자신의 詩稿인 『회성원집』에 대해 조선 명사들의 서문을 요청했다. 이에 홍대용과 박지원이 그 발문을 짓게 됐다. 박지원이 쓴 내용은 이렇다. “옛날에 朋友를 말하는 사람들은 붕우를 ‘제2의 나’라 일컫기도 했고, ‘周旋人’이라 일컫기도 했다. …… 붕우란 마치 새에게 두 날개가 있고 사람에게 두 손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도 ‘고의 옛사람을 벗 삼는다(尙友千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너무도 답답한 말이다. 천고의 옛사람은 이미 휘날리는 먼지와 싸늘한 바람으로 변해 버렸으니, 그 누가 장차 ‘제2의 나’가 될 것이며, 누가 나를 위해 주선인이 되겠는가.”

하지만 바로 지금 시대에 제2의 나를 찾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위급할 때 연락할 수 있는 주선인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고 결혼생활, 육아 등 책임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출구 없는 긴 나날을 보내야 한다. 물론 기왕의 친구가 있는 경우는 다르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끼리 모임을 만들어 취미를 공유하는 것은 고독감을 이길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도 내기 어려운 처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1513년 12월 10일, 피렌체에서 쫓겨났던 메디치 가문이 교황과 스페인 군대의 도움을 받아 피렌체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복귀했다. 마키아벨리는 反메디치 음모를 꾸민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가까스로 풀려났다. 관직에서 떠난 그는 피렌체 근교에서 칩거하면서 『군주론』을 집필했다. 이때 그는 친구 프란체스코 베토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일상을 묘사했다.


“밤이 되면 집에 돌아가서 서재에 들어가는데, 들어가기 전에 흙 같은 것으로 더러워진 평상복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네. 예절을 갖춘 복장으로 몸을 정제한 다음, 옛사람들이 있는 옛 궁궐에 입궐하지. …… 그곳에서 나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곤 하지. ……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고 말일세. 그들의 세계에 全身全靈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겠지.”(『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한길사, 2013. 제2판 13쇄)
옛 師友를 만날 때 나는 남루한 존재가 아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지루함도 없고 고뇌는커녕, 나만을 위한 음식물을 먹으며 열락을 느낀다.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고전을 대하는 일, 이것이 동서양의 지식인들이 실행한 실제적인 학문 태도였다. 전신전령으로 고전을 대하는 일, 현대인이 추구할 학문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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