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08:05 (토)
‘사회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반성
‘사회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그리고 반성
  • 교수신문
  • 승인 2014.09.16 15: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을 말하다 _ 『사회과학의 철학』 데드 벤턴·이언 크레이브 지음|이기홍 옮김|한울|432쪽|43,000원

한때 한국 사회에 ‘사회과학의 시대’가 있었다. 사회현실을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예측한다는 확신이 지배하고 ‘임박한 파국’과 ‘변혁’을 예기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것은 곧 ‘허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이론의 혁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의 사회과학을 ‘조잡하고 추상적인 것’(이렇게 된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없지만)으로 평가하고, 다원성과 우연성과 차이와 해체 등을 강조하면서 사회과학에 대한 신뢰를 철회했으며, 심지어 ‘과학적 인식’의 가능성을 조롱하기도 한다. 나는 이런 ‘허세’와 ‘부인’의 밑바탕에는 ‘사회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단견 또는 오해가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회과학’의 이런 파란과 혼란은 사실 그 시대부터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었다. 그 시대 이전부터 그리고 그 시대 이후에도 줄곧 제도권의 사회과학자들은 아무런 동요와 의심 없이 여전히 ‘사회과학’에 매진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는 대부분 ‘가설-검증’의 논리에 따라 선진이론을 도입하고 한국사회의 경험적 자료로 시험해 채택 또는 기각하는 절차를 특징으로 한다. 그들이 과학적 방법으로 사용하는 ‘가설-검증’의 논리와 절차의 뿌리에는 과학에 대한 실증주의의 견해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첫째로 경험은 언제나 이론적 해석을 내포하고 있다는 발견과, 둘째로 경험과의 정합이라는 기준만으로 과학이론의 진위를 판정할 수 없다는 발견은 과학에 대한 실증주의의 견해가 부정확하고 취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단하게 입증했다. 이제 과학에 대한 실증주의의 견해는 과학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설득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회‘과학’에 대한 조롱과 불신은 실증주의 과학관의 이런 파탄에서 유래한다. 경험이라는 객관적 근거 또는 보증물을 상실한 과학지식은 주관적 구성물일 뿐, 다른 형태의 지식보다 더 우월하거나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사회과학자들 대부분은 과학철학의 논의 지형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실증주의의 교의에 따라, 더 정확하게는 관습과 습관에 따라 ‘가설-검증’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해독불가능한 수학적 기호들의 조합이나 기묘한 개념들의 유희를 통해 ‘전문성’을 과시하는, 그러나 소통불가능한 연구들이 득세하는 것은 이런 추세의 결과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사회과학에 대해 아무도, 심지어 사회과학자 자신들조차도,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이러한 추세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것이다.


한국 사회과학의 이러한 상황을 두고 ‘위기’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람시를 거듭 인용해 “위기나 곤경의 순간에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암묵적인 믿음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런 뜻에 ‘누구나 철학자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 지도를 보지 않는다”라고 비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21세기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에게 사회과학의 연구는, 적어도 사회적 지위와 보상 획득 측면에서는, 별 문제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사회과학의 ‘위기’는 없는 셈이다.
저자들이 지적하듯, 우리의 일상적 삶은 세계에 대한 철학적 지향을 드러내며 그런 뜻에서 일상의 삶에서도 우리는 암묵적으로 철학자다. 마찬가지로 사회과학도의 일상적인 연구는 사회과학에 대한 그의 철학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과학도라면 위기의 순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연구의 바탕에 자리한 철학적 지향을 의식적으로 반성할 수 있다.


이 책은 사회과학도들에게 사회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반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먼저 대부분의 사회과학자들이 타당하고 믿고 따르는, 또한 과학의 합리성과 객관성을 낙관하는 경험주의 또는 실증주의 과학관을 정리한 다음 실증주의 비판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실증주의를 비판한다고 해도 그것이 곧 실증주의적 탐구가 쓸모없는 것이라거나 그 탐구가 생산하는 지식이 완전히 그릇된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판의 요체는 그러한 연구로 생산하는 정보가 실질적인 과학적 연구의 출발점이며, 그 정보를 설명하는 데서 창조적인 상상력을 주의 깊게 사용하는 ‘해석적 이론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이 차례도 보여주듯 실증주의 비판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사회과학에서 지배적인 비판은, 실증주의에서 이해하는 자연과학적 방법을 인간의 사회적 삶에 대한 연구에 사용하는 것으로, 이 삶이 자연의 사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산출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해석적’ 전통의 사회연구들은 대체로 이런 ‘반자연주의’를 공유하고 있다. 이 전통에서는 자연과 구별되는 고유한 특성을 갖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연구는 자연과학과 다르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사회적 삶을 인간의 의식과 성찰로 환원할 수는 없으며, 개인 너머에 문화나 전통 또는 공동체 이외에도 ‘사회적 사실’이나 ‘사회(구조)’로 부르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해석적 접근에도 한계가 있다.


또 다른 비판 노선은 실증주의 과학관이 해결되지 못한 심각한 난점들과 오류들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는 ‘반실증주의’로, 더 근본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비판적 실재론과 여성주의와 탈근대주의를 그런 비판들로 소개하고 있다. 이 입장들에 따르면, 과학의 지적 성과는 세계의 구조가 상식적인 이해력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며, 과학적 탐구에는 실증주의가 포착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복잡하며 다층적인 탐구 양식과 추론 양식들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입장들은 사회과학이 무엇인가 또는 무엇일 수 있는가에 관한 사유에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인문사회과학을 홀대하는 세태 때문에 나는 근래 담당교수가 은퇴한 ‘사회학이론’ 강의를 맡게 됐다. 하지만 여러 이론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 문헌 이외의 교재는 구하지 못하던 터에 2001년에 출간된 이 책을 상기한 것이다. 번역은 관련된 장들에 붙인 ‘후기’와 제12장 ‘근래의 발전에 대한 논평’ 등을 추가한 10주년 기념판(2011년 출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특히 추가된 ‘근래의 발전에 대한 논평’은 주로 비트겐슈타인학파와 논쟁하는 글로, 난해하긴 하지만 맥락을 따라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보론 1: 개인적인 결론’은 사회과학도가 현실과 어떻게 조우하는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저자들이 조언하듯 사회과학도들은 이 책을 ‘결론을 담은 책이 아니라 주장을 담은 책’으로,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자신의 주장을 구성하는 입문서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연구를 수행하는 사회과학자들은 (적어도 암묵적으로) 철학자이기도 하며, 그래서 자신의 주장을 정리하고 정교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사회과학철학과 사회이론을 공부하는 사회과학도들에게 자신의 작업을 반성하고 생각을 가다듬는 계기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한국 사회과학의 과제에 충실한 것으로 스스로 혁신하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이기홍 강원대·사회학과
필자는 사회과학철학, 사회이론, 환경과 사회 등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등의 책을 번역했고, 「양적 방법의 사회학」 등의 논문을 썼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