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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神話戰爭, 민족 건국신화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계속된다”
“韓·中 神話戰爭, 민족 건국신화의 이데올로기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계속된다”
  • 북학 기자
  • 승인 2014.08.26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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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30회차 강연_ 도진순 창원대 교수의 ‘역사와 기억, 그리고 이데올로기’


▲ 사진제공 네이버문화재단

역사는 그것을 호명해내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데올로기화된 건국신화, 즉 건국 영웅 중심의 역사인 ‘his story’를 넘어서야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실현할 수 있다.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가 다시 한번 대중 강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의 안과 밖’ 30회차 강연이자, ‘역사와 전통’을 주제로 진행되는 6섹션의 첫 번째 강연의 주인공은 도진순 창원대 교수(사학과)였다. 지난 16일 도 교수는 단군신화가 역사 속에서 어떤 전승의 과정을 거쳐왔는지를 고찰하는 동시에 한국과 북한, 중국 등 경계를 넘나들면서 단군신화와 연관된 ‘기억의 터(Les Lieux de m?moire)’들을 순례하는 과정을 통해 ‘단군신화에 대한 기억과 망각, 그리고 그 이데올로기적 함의’에 대해 개관했다. ‘역사와 기억, 그리고 이데올로기’라는 강연 주제는 ‘단군신화’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다.


도 교수는 白凡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세계사적 관점에서 한국사를 객관적으로 조명하는‘한국사의 세계사적 맥락화’에 천착해온 역사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이번 강연은 한국사의 세계사적 맥락화라는 그의 화두 연장선에 놓여 있는, 문제적 강연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도 교수는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호명돼질 따름이며, 따라서 그것을 기억으로 호명해내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지적한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단군신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시대적 과제와 주체의 욕망 및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가 거듭 주체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 교수는 단군신화 전승의 구조는 해당 시기의 ‘선진과 주체의 변증법적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즉, 민족적 위기의식이 높아지거나 주체성이 강조될 때는 ‘단군(조선)’이 부각되다가, 중화문명의 보편성(선진성)이 강조될 때는 ‘기자(조선)’가 부각되는 식으로, 한국 역사 속에서 단군에 대한 기억과 망각의 과정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이번 강연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한국-중국 사학계의 ‘신화전쟁’에 주목한 대목이다. 도 교수는 산동성의 ‘무량사 화상석’이나 허베이성의 ‘중화삼조당’, 요하 일대의 홍산문화를 두고 한국과 중국 사학계 간에 벌어지고 있는 ‘神話 전쟁’을 소개하면서, 다양하고 구체적인 사료와 논거 등을 동원해 중국의 건국신화인 황제신화와 한국의 단군신화가 역사 속에서 어떤 맥락과 연관관계를 가지는지를 설명했다.
도 교수가 볼 때, 한중 양국 간의 논쟁의 핵심에 있는 것이 ‘치우’와 ‘웅녀’다. 그런데 이 둘은 단군신화의 핵심 존재이기도 해서, 치우와 웅녀를 둘러싼 갈등은 결국 한국과 중국 양국의 건국신화 간의 갈등으로 직결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뜻밖에도 도 교수는 “우리가 아득한 옛 신화나 현재의 새로운 건국신화의 이데올로기에서 의식적으로 해방되지 않는 한 신화 전쟁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는 길은 건국신화의 수직적 편재 이전의 역사와 신화 그 자체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컨대 홍산문화가 중국 황제의 것인지 아니면 한국의 단군이나 웅녀의 것인지를 논쟁하기 전에 홍산문화 그 자체의 수준과 문화전통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도 교수의 주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새로운 연구 가능성도 암시한다. 그는 한반도 혹은 국내 자료에 국한된 한국의 신화 연구도 시야를 확대해 아시아적 범주에서 다양하고 풍부하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도 교수는 또 과거의 ‘신화’를 현재적 맥락에서 재구성하는 한국과 중국이 서로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고 읽어냈다. 중국에서의 치우 현양은 한족(황제)의 배타성을 넘어서는 다민족 융합을 위한 것이라면, 한국에서 단군과 치우의 연결은 단군민족주의 또는 단일민족신화의 심화 과정이라는 점에서 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 한국 역시 최근 민족 구성의 변화로 다민족 다문화를 수용하는 것이 역사적 과제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웅-웅녀-호랑이의 소통보다는 치우-단군을 중심으로 하는 단군민족주의의 심화가 더 부상하고 있는 실정을 꼬집은 지적이다.


이외에, “한국 신화에서 ‘역사의 주체’였던 웅녀가 단군족의 영웅화 과정에서 단군을 낳은 ‘부계의 어머니’로 전락했다”는 등의 흥미로운 견해도 제시했다. 이 견해에는 동아시아 신화학 구축을 위해 작업해온 조현설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과)의 분석과 중국 샤먼대학 인문학연구원의 이중톈 교수의 견해가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군신화 속 웅녀의 ‘잃어버린 자기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것은 ‘곰녀 전설’이다. 조현설 교수의 분석을 토대로 도 교수는 웅녀의 잃어버린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읽어낸다. ① 곰녀는 스스로 여인이 되는 능력을 갖거나 적극적으로 남자를 굴로 데려와 같이 산다. 즉 남녀의 동거에서 여인이 선도적 적극적이다. ② 얼마간의 동거 이후 남자측이 도망감으로써 헤어진다. ③ 이로해서 곰녀는 비극에 빠지고 자살한다. ‘흥미로운 견해’라고 한 것은, 도 교수가 이러한 스토리 속에서 모계종족의 위상 변화를 읽어냈다는 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부계종족(환웅-단군족)에게 삶의 근거지를 먼저 제공한 것은 모계부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정시간이 흐른 후 부계부족이 모계부족을 지배하거나 버리고 딴 곳으로 가서 새로운 나라와 건국신화를 만들게 되고, 여기서 모계부족은 선도적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부계부족 이후에 등장해 부계신을 도우는 타자 신세로 전락한다.” 바로 이 대목에 이중텐의 탁월한 분석이 교차하는데, 이중텐은 부계의 건국과정을 거치면서 일종의 ‘문화혁명’이 일어나며, 그 이전 모계 씨족사회의 상징들은 부계의 상징이나 건국신화로 대체되고, 모계의 시조신화 등은 구전 전설로 파편화되거나 변질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중국에서 인류의 창조신인 ‘여와’가 남성들의 문화혁명 이후 남성 ‘복희의 여동생’으로 바뀌며, 모계 씨족사회의 이미지인 물고기 개구리 달 등이 부계 씨족사회의 이미지인 새 뱀 태양으로 대체됐다. 마찬가지로 웅녀는 역사의 주체에서 단군을 낳는 부계의 어머니로 전락한다. 즉 단군족의 영웅화와 더불어 웅녀의 비극이 탄생하는 것이다(조현설, 1999).


‘웅녀의 비극’을 환기한 것은 단군신화를 과거의 기억에서 현재의 기억, 그리고 미래의 기억으로 새롭게 오리엔테이션하는 장치가 된다. 도 교수는 이렇게 결론을 던진다. “21세기 인류의 과제는 개인의 평등과 자유, 소국과 대국의 평등과 선린, 전쟁을 넘어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데올로기화된 건국신화, 즉 건국 영웅 중심의 역사인 ‘his story’를 넘어서야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실현할 수 있다.” 건국 영웅 중심의 ‘his story’를 넘어서는 곳, 혹은 그런 넘어서기의 역사철학적 의미로서 단군신화를 호명한 강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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