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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위기, 인문학적 성찰과 과학적 합리주의의 융합으로 해결 가능”
“환경위기, 인문학적 성찰과 과학적 합리주의의 융합으로 해결 가능”
  • 교수신문
  • 승인 2014.08.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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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29회차 강연_ 이덕환 서강대 교수의 ‘환경과 과학기술’


‘문화의 안과 밖’ 29회차 강연 주인공은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이자, 국제화학올림피아드 의장으로 재선출된 이덕환 서강대 교수. 이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과학커뮤니케이션(science communication) 전문가이자, 다양한 과학서적 집필과 번역을 통해 과학 대중화 작업에 앞장서왔다.


지난 9일(토) 진행된 강연에서 이 교수는 흥미로운 문제의식을 던졌다. 인류의 발전에 기여해온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인류의 과도한 탐욕을 부추겨왔던 과학기술을 포기해야 한다”는 反과학기술적 정서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인류의 생존과 문명의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오히려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활용해야 한다”는 親과학기술적 주장이다. 이 교수는 특히 반과학기술적 정서에 기반해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친환경주의·자연주의·생태주의·녹색주의가 과연 인류의 미래를 위한 실현 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대안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현대 과학기술이 갖는 긍정적인 가치를 ‘과학지식’과 ‘과학적 기술’, ‘과학정신(scientific spirit)’의 세 측면에서 찾았다. 과학지식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제고시킴으로써 인간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했으며, 과학적 기술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연 생태계에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왔고, 과학정신은 민주화와 다원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민주사회에서 절박하게 요구되는 사회통합을 촉진시키는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이 교수가 내놓은 답안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향한 새로운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한 모색”이다. 인간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과학적 합리주의의 융합을 통해 오늘날의 환경문제 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사진·자료 네이버문화재단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지금까지 인류가 이룩한 놀라운 발전의 핵심에는 화학을 중심으로 물질을 변환시키는 기술이 있었다. 우리의 수명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향상된 것도 그런 화학적 기술의 성과였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했지만 70억의 인구가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도 제공해주었고, 감염성 질병의 확산을 막아주는 위생 환경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합성 염료와 섬유의 개발을 통해 끔찍한 신분 차별의 철폐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속 가능한 녹색 화학
그렇다고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분별한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로 자연 자원은 고갈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엄청난 양의 유해 폐기물을 만들어냈으며, 우리의 삶이 지구의 순환 과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늘날 우리 몸에 들어있는 질소와 황 원자의 절반 이상이 화학 공장을 거쳐 왔고, 대부분의 탄소, 산소, 수소들도 인공적인 농업이나 식품 제조 공정을 거쳐서 들어온 것이다. 이제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훼손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분명하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고갈 위기에 있는 자연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동시에 자연 자원의 활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 환경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녹색 화학(sustainable green chemistry)’을 추구해야 한다.

자연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원자 경제성(atomic economy)’을 고려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화학적 합성의 효율은 주로 전통적인 수득률을 근거로 판단해왔다. 수득률은 반응물질에서 이론적으로 얻을 수 있는 생성물질의 양과 실제로 합성에서 얻어지는 생성물질의 양의 比만으로 정의되고, 합성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만들어지는 부산물의 양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단순한 수득률 대신에 원자 경제성을 근거로 합성의 효율을 판단하게 되면 부산물로 버려지는 자원을 절약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부산물을 적절하게 폐기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도 절감된다.


화학물질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위험성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을 우리 사회가 허용할 수 있는 수준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비교적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위험성의 평가는 화학물질의 ‘유해성’(독성)과 그런 물질의 ‘노출량’에 의해서 결정된다. 위험성을 절감시키는 전통적인 방법은 노출량을 줄이는 것이었다. 유해성이 일정한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량을 줄이면 위험성도 비례해서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노출 규제의 현실적인 효율과 유해성 자료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만 있다면 위험성을 허용 수준 이하로 감소시킬 수가 있다.

집단 지성과 과학 정신
우리 인간은 아득한 옛날 어느 순간에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놀라운 가치를 깨달았다. 돌도끼를 만들 때도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아이디어를 합치면 한 사람이 만든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을 훨씬 더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커질 수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다. 낯선 상대를 신뢰하는 본능적인 자질이 ‘분업’과 ‘전문화’를 통한 집단 지상의 원동력이 됐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이룩한 번영의 출발이었다.


인류의 원체험 속에 녹아들어 있는 집단 지성이 다시 한 번 환경의 문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길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포기할 이유는 결코 없다. 물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회귀하자는 맹목적인 자연주의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희망을 버리자는 지극히 패배주의적인 것이고, 자칫 과학기술만능주의보다 더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지난 400여 년 동안 과학의 눈부신 발전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과학 정신(scientific spirit)’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필요하다. 과학 정신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방식을 말한다. 객관적 증거에 대한 정직성, 합리성, 개방성, 민주성, 비판성이 그 핵심이다. 그런 과학 정신은 자연에 대한 탐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소통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기도 하다.


집단 지성과 과학 정신을 기반으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과학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만 한다. 과학이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는 소통의 기반이 돼야만 하고, 환경 문제를 넘어서 복잡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이 돼야만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합리주의 ‘융합’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강력한 요구가 바로 새로운 목표의 설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가 직면한 환경문제는 인간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과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적 합리주의의 적절한 융합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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