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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원리가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위험하다
시장의 원리가 생활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위험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7.21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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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25회차 강연_ 이정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경제, 문화, 정치’

‘문화의 안과 밖’ 전체 50강 중 딱 절반 지점에 해당하는 25회차 강연이자 총 11강으로 구성된 ‘문화의 안과 밖 자연과학 특강 섹션’의 6번째 강연이 지난 12일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 4층 W스테이지에서 열렸다. ‘경제, 문화, 정치’를 주제로 이정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가 바턴을 이은 것. 1994년 『녹색경제학』을 발표하며 국내에 ‘녹색 경제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해 주목 받았으며, 이후 『분배의 정의』, 『시장은 정의로운가』 등 다수의 저작을 통해 ‘시장과 경제의 정의’ 및 ‘경제와 행복의 상관관계’ 등 경제학의 새로운 화두를 꾸준히 제시해온 원로 경제학자다.

이날 강연에서 이 교수는 무엇보다 ‘경제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전이란 결국 서구가 다른 문화권에 강제로 부과하는 개념에 불과하다”는 문화상대주의자들의 시각을 소개하면서 서구화가 곧 세계화이고 사회발전의 척도인 것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진단했다. “미국식 생활양식과 도시화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한정된 지구촌에 미국식 생활양식을 답습하는 ‘미국인’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세계의 도시들 모두가 ‘맨하탄의 축소판’이 돼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에 이어 그는 ‘행복의 역설’을 강조한다. 그는 “결국 일반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행복이며,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경제 성장과 문화 발전은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그의 강연은 자본주의 시장의 확산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악영향들을 지적하는 데서 절정을 이뤘다. 자본주의 시장의 발달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과도한 불평등은 경제 성장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까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경제, 문화, 정치의 세 영역이 잘 조화된 사회야말로 기본 가치들이 공존하는 정의로운 사회인데, 경제 영역이 급팽창하면서 세 영역 사이의 균형이 점차 깨지고 있다는 것. 자본주의 시장에 국한돼야 할 시장의 원리(경제)가 越境해 이제 생활세계(문화)를 지배하게 됐으며, 그 결과 경제가 사회에 복속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가 경제에 복속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됐다는 진단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자본주의 시장에 의한 생활세계의 파괴는 결국 체제의 사회적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통합을 위협하는 근원적 요인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나,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나, 체제의 정당성을 굳건히 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최대 과제는 뭘까. 그는 하버마스가 말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확립해내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논의를 발췌해본다. 사진·자료 네이버문화재단


제, 문화, 그리고 정치 사이의 삼각관계에서 또 하나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것은 그 세 영역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다. 이 세 영역 각각은 독자적인 가치와 원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 세 영역이 잘 조화된 사회야말로 기본 가치들이 공존하는 정의로운 사회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그 세 영역 사이의 균형이 점차 깨지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경제 영역의 급팽창이다.


생산이 늘고 소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의 양과 종류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경제영역이 크게 확장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따라 우리의 삶이 시장에 의존하는 정도 역시 점점 더 커지고 있으며, 그만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시장원리의 지배를 받는 범위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 국한돼야 할 시장의 원리가 越境해 이제 생활세계를 지배하게 됐다. 그래서 경제가 사회에 복속되지 않고 반대로 사회가 경제에 복속됐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면, 자본주의 시장이 생활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런 ‘식민화’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플라톤에 의하면 정의롭지 못한 사회요, 행복 전문가들에 의하면 국민의 행복지수가 발목이 잡힌 사회이며, 하버마스에 의하면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이 뿌리 채 흔들리는 위기의 사회다. 하버마스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자.


참된 대화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 하버마스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참된 대화가 필요 없는 곳이라는 점이다.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는 말 한 마디 없이 얼마든지 원하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대화를 통해서 알 필요도 없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전혀 없다. 정해진 가격표를 보고 상품을 사고팔면 그 뿐이다. 반면 생활세계는 진솔한 대화를 통해 온정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나아가서 참된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곳이다. 시장이 생활세계를 잠식한다는 것은 그런 대화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하버마스의 표현으로는, 생활세계는 의사소통을 하는 곳이요, ‘의사소통의 합리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사회문제가 터질 때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합리적으로 해결하자’고 늘 말한다. 아무런 강압이나 강제가 없는 상태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자유롭고 진솔하고 성실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는 가운데 합의에 도달했을 때, 우리는 흔히 ‘문제가 합리적으로 잘 해결됐다’고 말한다. 하버마스가 그토록 강조한 의사소통의 합리성은 바로 이런 포괄적 의미의 합리성이다. 바로 이런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바탕으로 일궈낸 합의가 참된 정당성의 궁극적 근거가 되며, 따라서 생활세계는 사회적 정당성의 근거지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장에 의한 생활세계의 침범은 결국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근거지를 갉아먹는 것이다. 원래 경제영역과 정치영역은 생활세계에서 분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영역과 정치영역의 정당성이나 권위의 근원은 생활세계에 뿌리박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에 의한 생활세계의 파괴는 결국 체제의 사회적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사회적 통합을 위협하는 근원적 요인이 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나,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나, 체제의 정당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 의사소통의 합리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최대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보면 경제학자들은 체제의 정당성이니 정의니 의사소통의 합리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생산성이나 효율과 같이 구체적이고 숫자로 나타낼 수 있으며 수학을 이용할 수 있는 것에만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이 너무 수학적 정교함을 추구한 결과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이미 오래다. 심지어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수학적이 된다고 해서 논쟁의 여지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경제학계에서 치열한 논쟁거리의 하나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분담에 관한 것이다. 경제학계가 ‘큰 정부, 작은 시장’을 외치는 진영(주로 케인스이론 추종자들)과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요구하는 진영(주로 시카고학파)으로 갈려서 경제학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긴 논쟁을 벌여왔다. 철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복지문제를 놓고 최대한 많은 책임을 각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쪽과 반대로 최대한 많은 책임을 국가에게 귀속시키는 쪽의 논쟁으로 요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장이 발달하고 시장원리가 확산됨에 따라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경기변동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실업, 빈곤, 환경피해 등, 복지의 문제를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의 책임 문제가 부각되고 있으며 ‘작은 정부, 큰 시장’을 요구하는 진영은 국가의 책임회피를 이론적으로 방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가의 책임을 당사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이 ‘책임전가’의 모순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답보상태에 머물거나 퇴보하게 된다고 어느 철학자는 경고한다.


어떻든 2008년에 터진 세계경제 위기로 1980년대부터 세계를 풍미하던 신자유주의 기세가 일단 꺾이면서 ‘작은 정부, 큰 시장’의 외침은 좀 잦아들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제 ‘큰 정부, 작은 시장’의 시대가 오게 돼 있지만, 세계경제 여건이 그리 녹록치는 않다. 허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정부와 시장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를 재정립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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