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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천재 통해 지리학의 가능성 확인했다”
“16세기 천재 통해 지리학의 가능성 확인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7.2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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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메르카토르 연구서 『네모에 담은 지구』 출간한 손 일 부산대 교수


400여 년 전 메르카토르는 장방형의 틀 속에 구체인 지구 표면을 기하학적 혹은 수학적 원리에 따라 옮겨 놓는 방법을 통해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그 지도가 바로 지리상의 발견을 고스란히 담은 사각형의 지구,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1569년 세계지도다.
『네모에 담은 지구: 메르카토르 1569년 세계지도의 인문학』(푸른길, 416쪽, 28,000원)은 지리학자이자 지도학 연구에 매진해 온 저자가 5년 동안 방대한 자료와 현지 조사를 바탕으로 메르카토르 지도학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그간 지도학 관련 서적인 『지도와 거짓말』, 『지도전쟁: 메르카토르 도법의 사회사』, 『메르카토르의 세계』 등을 국내에 번역 소개한 저자의 이 책은 메르카토르 세계지도의 연구라는 좁은 의미가 아니라, 중세에서 근대로 내딛는 세계사적 전환기 속에서 16세기를 살아간 지리학과 지도학계의 거장 메르카토르의 지도에 담긴 세계관과 지도관을 살펴봄과 아울러 새로운 탐험과 대항해 시대의 세계사를 포괄한 넓은 의미의 인문학서로 손색이 없다.


저자는 당대 최고의 지도, 지구의 제작자일뿐 아니라 과학계의 거인으로 다방면에 걸쳐 천재성을 발휘한 메르카토르의 인생 여정을 시작으로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1569년 세계지도의 탄생 과정과 역사적 배경을 자세히 풀어내고 있다. 저자 손 일 교수를 이메일로 만났다.

△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메르카토르의 삶과 그의 성과만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지는 않다.
“가능성이다. 종합과학의 성격을 지닌 지리학은 학문의 세분화, 전문화를 요구하는 작금의 시대적 분위기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북방항로의 개척에 국가 총력을 기울이던 16세기 잉글랜드에서 보여준 메르카토르의 1569년 세계지도의 역할처럼, 공간에 관한 지리학의 통시적, 다층적 지식체계가 다양한 공간적 스케일에서 여전히 유용할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게다가 메르카토르라는 지리학적 소재도 역사라는 씨줄과 날줄과 엮이면 그럴듯한 내러티브로 변화될 수 있음을 후학들이나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메르카토르는 이 지도를 발간하고는 완전히 잊어버렸고, 자신의 후반기 지도첩이나 저작 목록에 올리지도 않았다. 또한 이 지도가 지닌 항해도로서 기능에 대해 수학적 해석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인류는 그가 내팽개친 이 지도에 대해서만 열광을 했고, 그가 제시한 항해도로서의 아이디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당대는 물론 자신마저도 그 가치를 외면했지만 메르카토르의 지도처럼 진정 가치 있는 작업은 언제가 만개할 가능성이 있으니, 현재 지지부진한 자신의 학문 작업에 대해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었다.”

△ 『네모에 담은 지구』 이전에 메르카토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책들을 많이 번역했다. 그 가운데는 메르카토르 평전인 『메르카토르의 세계』(테일러 지음)도 있다. 메르카토르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가 궁금하다.
“지리학의 기원은 그리스 시대로 올라가지만,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리학자로 분류되는 그리고 일반인마저 그렇다고 수긍하는 인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 중 3명을 꼽으라면 프톨레마이오스, 메르카토르, 훔볼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문학, 훔볼트는 생물학과 깊은 연계를 맺고 있어 순수 지리학자라면 아마 메르카토르뿐일거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국내 메르카토르 평전은 내 손으로 써보고 싶다는 욕심을 교수초년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형학에서 지도학으로 전공을 옮기면서 스스로 지도학자임을 선언한다는 기분으로 지도학 책 하나를 번역했는데, 그 책이 『지도와 거짓말』이다. 이 책의 원저자 마크 몬모니어 교수가 새로 낸 책 『지도전쟁: 메르카토르 도법의 사회사』의 번역을 출판사로부터 의뢰받은 것이 메르카토르에 대한 관심이 본격화되는 계기가 됐고, 그 후 또 다른 책 『메르카토르의 세계』를 번역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400년도 더 된 항해도에 관한 메르카토르의 아이디어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사각형의 지구관 역시 바로 메르카토르의 1569년 세계지도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 매료당했다. 그래서 이 책 제목도 『네모에 담은 지구』로 정했다.”

△ 자연지리학은 자연과학 분야로 구분된다. 인문학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분야인데, 연구재단 ‘인문저술사업’에 지원했고, 그 결과가 이 책으로 나왔다.
“지리학자는 각자의 전공에 따라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인문학자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에도 불구하고 지리학은 공간 위에 펼쳐진 인간의 삶과 그 흔적을 추적하고 해석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지리학은 궁극적으로 인문학으로 귀결돼야 하고, 그것만이 지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자나 일반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제목에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넣는다고 그 책이 인문학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논리 실증적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즉, 16세기라는 세계사적 대변혁기, 그것도 에스파냐·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치적, 경제적 중심지인 저지국가에서, 대항해시대와 더불어 등장한 상업지도학을 메르카토르라는 인물을 통해 들여다보았다는 점에서 감히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내걸었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범인들의 삶도 그 시대의 굴곡이 그대로 반영된 영욕의 삶일진대, 하물며 메르카토르와 같은 뛰어난 인물의 삶의 궤적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서술 방식이 인문학자 고유의 그것에 얼마나 부응하는지는 알 수 없고, 또한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 16세기 유럽의 빼어난 학자를 비유럽권에서 조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가장 어려웠던 문제가 있었다면?
“독서 양의 절대 부족이다. 기존 책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서양사에 문외한인 필자가 메르카토르가 살던 16세기 유럽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독서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했음을 자인한다. 게다가 필자가 16세기 유럽을 만나는 방식은 유럽 지도를 넓게 펼쳐놓고 오늘은 잉글랜드에서 프란시스 월싱엄을 만나고, 내일은 오스만튀르크에서 술레이만 1세를 만나는 식이었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독서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역사학자도 아니고 그들 방식대로 논문을 쓸 필요도 없었다. 서양사 전공자의 눈에는 천박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16세기 라틴어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어학적 한계였다. 결국 16세기 서유럽 이야기와 상업지도학, 존 디와 잉글랜드의 북방항로 탐험 이야기, 게다가 남들 하듯이 페터스 이야기까지 끌어들였지만, 결국 원전에 다가설 수 없는 한계로 그저 그런 이야기로 끝을 맺고 말았다. 또 다른 어려움은 사실 유럽 역사에 대해 전문적인 훈련이 부족한 탓에, 나만이 아는 것, 나도 아는 것,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우리 모두 모르는 것을 구분해 글을 쓰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다국적, 다층적, 다면적 사실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앞으로 ‘한국지리’에 관한 저작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인지 궁금하다.
“『세종실록지리지』와 같은 조선시대 관찬지리지부터 최근 국토지리정보원이 발간한 『한국지리지』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국내 지리학자들이 펴낸 다양한 제목의 『한국지리』부터 일제 강점기 독일인 라우텐자흐가 펴낸 『코레아』까지 한국지리에 관한 책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일반인은 물론이고 우리 지리학자도 잘 읽지 않는다. 기존의 한국지리 책의 고답적인 서술체계로는 일반 독서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중등학교 현장에서도 살아남기 힘이 든다. 뭔가 특별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막막하다.


아이패드를 펴 포탈업체 다음에서 제공하는 위성영상을 줌인-줌아웃 해보면 매 순간마다 새롭고도 놀라운 공간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반복, 대비, 대조, 이들은 모두 그 공간에 통시적으로 누적된 삶의 이력이며, 이를 지리학에서는 지역의 정체성, 줄여서 지역성이라 한다. 이는 공간에 대한 포괄적, 상징적 인식의 결과이지만 전문화 시대에 매력적일 수 없으며, 더군다나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기존의 서술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콘텐츠는 사방에 늘려있다. 따라서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기 보다는 다양한 스케일로 구분된 새로운 지역구분과 이에 대한 새로운 지역 키워드를 발굴하는 작업이 요구된다고 본다. 그 예비 작업으로 2011년 『앵글 속 지리학(상·하)』를 펴내기도 했다. 유홍준, 이원복 교수 등의 예를 거울삼아 소통을 전제로 하는 지역 키워드의 재발견, 장절항목의 구조화, 서술방식의 구조화를 통해 모두에게 사랑받는 지리책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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