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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형,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를 아시죠?
K형,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를 아시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7.08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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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K형. K형이 출판계에 입문한 지도 이제 제법 되지요? 인문학의 사회적 함의를 강조하던 K형이 어떤 출판사를 키워갈지 내심 궁금했습니다. 출판을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 초심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지요. 문화와 사상의 깊은 곳을 응시하는 力作들이 한 권 두 권 쌓여가는 걸 보니, K형과 K형의 출판사는 ‘신진’이란 딱지를 훌쩍 떼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출판시장이 날로 위축되고 있습니다. 책이 안 팔린다는 말이 들려올 때마다 먼저 K형 얼굴이 떠오릅니다. 좋은 저자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모습, 늦은 시간 인사동 골목에서 저자나 번역자들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불콰해하던 모습, 문제적인 신간을 낼 때마다 전화해 저자와 책에 대해 뜨겁게 ‘환대’를 보내던 K형의 모습을 저는 참 좋아합니다.


‘책이 안 팔린다’는 말이 유령처럼 떠도는 출판계에, 또 이런 말도 함께 은밀히 배회합니다. 가끔 그리고 반복적으로 말입니다. ‘베스트셀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아마도 일본에서 건너왔음직한 이 말을 지금 K형과 다시 곱씹어보고 싶습니다. 베스트셀러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조작’에 해당할 것입니다.


출판이 문화의 깊은 곳과 연결돼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이 정의가 과히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출판 윤리를 스스로 거스르는 자기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 안 팔리는 현상과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과연 전혀 무관한 두 현상일 뿐인가요? 물론 학술서들은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기가 쉽지 않지요. 꾸준히 좋은 학술서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많은 출판사들에게 ‘베스트셀러 만들기’는 참 고약하게 비쳐질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학술서도’ 내놓는 출판사들이 이 끈질기고 고약한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그런 욕망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이 은밀한 욕망을 키워내고 현실로 끄집어내는 일이겠지요.


K형의 출판사 규모는 아직 그리 크지 않더군요. 그렇지만 혹시 모르죠. 언제 ‘대박’이 나서 출판사 규모가 급속 성장할지 말입니다. K형이 베스트셀러 만들기와 같은 방식을 따를 정도로 책에 대해 사적 욕망이 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개 그런 사적 욕망이 강한 분들이 운영하는 출판사들은 건물 외형부터 크게 다르더군요. 파주 출판단지의 출판사 건물들이야 계획 입주여서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나라 일부 출판사 건물들은 미적으로도 정말 뛰어나고 규모도 제법 큽니다.


K형도 알다시피 이런 한편에는 ‘좋은 편집자를 찾기 어렵다’는 출판인들의 호소가 어색하게 놓여 있습니다.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주간은 이렇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하게 재편된 출판계는 생존의 문제가 시급함에 따라 전통적인 편집부 체제가 붕괴됐다. 특히 편집자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출판계에 유능한 편집자 공급원 역할을 했던 명망 있는 중견 출판사들조차 기존 편집부 체제를 개인 실적에 따른 인사고과제도로 바꿈으로써 체계적인 편집자 교육 시스템이 붕괴했다.” 이렇게 내적 시스템이 붕괴된 후, 지금에 와서 다시 ‘유능한 편집자’를 찾자는 출판계의 모습은 매우 모순돼 보입니다.
책이 안 팔린다는 말의 이면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할테고, 이것을 지적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분명 출판계 내부에서 자초한 문제점들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이를 개선하고 성찰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책이 안 팔리는’ 출판계를 지원하라는 논리가 만들어지고, 책 읽기 국민운동까지로 번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출판계 내부에는 문제가 없었단 말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자는 것입니다.
출판문화는 시대의 정신과 직결된다는 어느 원로 출판인의 말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일부 출판인들은 출판을 통해 부와 명성을 거머쥐자, 이를 다시 출판문화를 지원하는 데 재투자하지 않고 다른 ‘재테크’에 나섰습니다. 이것이 한국 출판계의 전체 모습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끊이지 않는 ‘베스트셀러 만들기’ 추문이나 유능한 편집자의 부재 문제는 이러한 ‘출판 성공 신화’에 대한 갈망과 욕망이 강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K형. 2010년 창사 60주년을 맞은 독일의 주어캄프(Suhrkamp) 출판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이사한 것을 두고 독일의 유수 언론이 대서특필했던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요? 프랑크푸르트의 문화계와 지성계, 출판계는 이 출판사의 베를린 이전을 놓고 그렇게 서운해 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출판사가 독일의 어떤 ‘문화’와 ‘지성’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입니다. K형의 출판사가 언젠가 새로운 둥지로 이사할 때 그런 아쉬움을 남길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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