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21:45 (일)
“인간은 유전자 기계지만 밈적 기계이기도 하다”
“인간은 유전자 기계지만 밈적 기계이기도 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7.03 1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의 안과 밖’ 22회차 강연_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부교수

지난 21일 토요일 ‘문화의 안과 밖’ 22회차 강연자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였다. 그리고 그가 들고 나온 주제는 ‘생물학, 진화론, 인간 이해: 인간 본성의 진화론적 이해’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익은 이 주제는 현대 지식생태계에서 매우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생물학을 새롭게 조명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장 교수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그런 인간관은 기존의 인문학적 인간관과 어떻게 다른지를 짚었다.

그는 현대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이론’을 소개한 후, 인간에 대한 현대 진화론의 두 가지 시각, 즉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라는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적 통찰과, ‘인간은 밈(meme)의 생존 기계이기도 하다’는 밈학(memetics)적 통찰을 정리했다. 장 교수에 의하면, 현대과학은 실용의 도구를 넘어 인식의 원천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진화는 기존의 인문학이 즐겨 던져왔던 인간 존재, 본성, 고유한 특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공유권’을 주장하기까지 이르렀다.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는 유전자, 인간, 그리고 밈(인공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다음은 그의 발표문을 발췌한 글이다. 자료·사진 카라커뮤니케이션즈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인간 본성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의 밑바닥에는 인간도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의 기계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실제로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렇기에 그 행동의 결과들로 우리가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됐다는 설명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충분하지 않을 뿐이다. 문화를 만드는 존재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문화에 영향 받는 존재로 진화한 인간에 대해서도 과학적 이론이 필요한데, 진화심리학은 전자에 주로 특화된 설명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후자의 질문에 집중해 인간 본성에 대한 또 다른 진화론적 이해로 나아가려 한다. 그것은 인간 독특성(uniqueness)의 진화와 관련돼 있다. 이른바 밈 이론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인간 본성에 대한 또 다른 진화론적 이해다.


도킨스의 밈 이 론이 급진적인 진짜 이유는 그것이 이른바 ‘수혜자 질문(qui bono question)’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 질문이란 말 그대로 ‘결국 무엇이 이득을 얻는가?’라는 물음이다. 사람들은 대개 유기체 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어서 스스로 자기 자신의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도킨스는 유전자가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운반자인 유기체를 만들어냈다는 진화의 사실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리고 때로는 유전자 수준에서의 ‘욕구’와 개체 수준에서의 ‘욕구’가 충돌할 수 있음을 보임으로써, 수혜자 질문을 다시 철학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수혜자 질문이 대두되면서 얻어진 자연스런 귀결 중 하나는, 이제 사람들이 ‘집단의 응집력’이라는 것이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깨지기 쉬운 것임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몇몇 논자들이 새로운 유형의 집단 선택론을 들고 나와 집단의 응집성 조건을 탐구하고 있긴 하지만 그 조건은 현실세계에서는 매우 드물게 만족 된다. 그런데 수혜자 질문의 파괴력은 오히려 밈에 대한 논의에서 더 커진다. 왜냐하면 만일 밈도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복제자이고, 유전자가 자신의 유전적 적합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밈도 자신의 밈적 적합도(memetic fitness)를 높이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밈은 문화의 전달 단위다. 특정 단어, 아이디어, 인공물 등도 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밈들은 기본적으로 그것의 창시자나 운반자의 적합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적합도를 높이게끔 행동한다. 이런 결론이 왜 도발적이란 말인가?
예를 들어 보자. 매년 한번씩 100만이 넘는 이슬람 신자들이 메카 주변에 하즈 순례를 하기 위해 모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다보니 수십 명이 다치거나 심지어 사망하기도 한다. 안전을 생각한다면 결코 진행할 수 없는 회합이다. 하지만 이슬람 교인들의 꿈 중 하나는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카바 신전을 직접 만져보는 것이란다. 이런 행동, 즉 자신의 유전적 적합도를 낮추면서까지 무언가를 위하는 행동은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밈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가. 중요한 것은 여기서 과연 무엇이(또는 누가) 최종적으로 이익을 얻느냐는 것이다. 종교 교리, 정치 이념, 경제 제도 등과 같은 밈 자신인가, 아니면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의 유전자인가? 자유, 평등, 평화, 사랑과 같은 (숭고한) 가치를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다 바치는 존재, 이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체 중에서 오직 인간만이 그런 행동을 한다. 유전자의 관점으로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조망한 것이 진화심리학이라면, 밈학(memetics)은 유전자와 밈의 관점에서 인간 본성을 이해하려는 진화론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밈을 위한 기계로 진화하게 됐을까. 우리 조상과 600만 년 전쯤에 한 공통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침팬지는 여전히 아프리카 숲에서 그때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우리의 조상 호모 속들은 전 대륙으로 퍼져나가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다. 대체 무엇이 이런 커다란 차이를 만들었을까. 인간의 독특성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모방 능력을 비교해봄으로써 그 차이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이 진화의 역사에서 ‘참된 모방’을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다른 동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진화적 경로를 걷게 됐고,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문명을 이룩한 종으로 진화했다. 여기서 ‘참된 모방’이란 “새롭거나 있을 법하지 않은 행위나 발언, 그리고 본능적 성향이 없는 행위들을 복제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밈은 인간의 모방 능력을 통해 전달되는 복제자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모방 능력의 진화가 밈의 출현과는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인간만이 가진 정교한 모방 능력(목표뿐만 아니라 절차까지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은 인공물을 복제자로 격상시키는 마법 장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모방 능력은 자연선택이 작동하기 위해 복제자가 갖춰야 할 ‘높은 복제충실도’를 견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누군가가 다소 복잡하지만 효과적인 새로운 사냥기술을 발명했다고 해보자. 그것을 그대로 복제하는 행동은 틀림없이 유전적 적합도를 높이는 적응 행동이다. 그 기술을 습득함으로 인해 추후에 더 많은 사냥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방 능력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집단 내에서 빠르게 퍼졌을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는 신체 지향적 행동까지도 움직임 수준에서 정확히 따라할 수 있는 모방 능력을 갖게 됐고, 그 모방 메커니즘 덕분에 인공물들이 복제자의 지위를 얻게 됐다. 이렇게 본다면 인간의 모방 능력이 인간의 유전자와는 독립적인 문화 전달자 밈의 탄생을 촉발시켰고, 그 밈은 다시 인간의 모방능력을 발달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밈이 우리의 보편적 심리 메커니즘을 갈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밈들은 대체로 우리의 유전적 적합도를 높이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심리 메커니즘은 그것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매개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밈은 인간의 정교한 모방 능력 덕택에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갖게 됐다. 우리가 가치들을 만들지만 그것들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때로는 유전적 적응도를 훼손시키면서까지 말이다.


역사를 돌아보라. 이기적 유전자 이론의 관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즐비하다. 자유, 정의, 평등, 민주주의 등과 같은 이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버렸는가? 우리가 만들어 낸 제도나 가치들이 다시 우리의 행동과 마음을 사로잡거나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세계에만 있는 고유한 특성이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지만 밈 기계이기도 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