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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의 비밀 … 과학 경시 풍조 되레 심화시켜
개정안의 비밀 … 과학 경시 풍조 되레 심화시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7.02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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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교육 축소’하는 문·이과 통합론에 과학계 비판 확산

 

지난 16일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한림원의 목소리 제42호’(문·이과 통합 교과과정, ‘과학·수학교육’ 강화만이 살 길이다)를 국회의원, 미래창조과학부, 교육부, 그리고 과학 관련 기관과 언론사 등에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명의로 긴급 발송했다. 이보다 앞선 5월 29일 기초과학학회협의체(회장 김명환, 서울대·수리과학부)가 회장 명의로 서남수 교육부 장관에게 한 통의 공문을 보냈다. 한림원과 기초과학 학회협의체가 긴급 발송한 ‘한림원의 목소리’와 공문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일까. 왜 과학계가 이렇게 긴박하게 움직인 것일까.

 

공문에 담긴 긴급 메시지
기초과학 학회협의체가 보낸 공문부터 보자. ‘문·이과 통합을 위한 교육과정 개정에 대한 의견’이란 제목의 공문에서 이들은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수학·과학 교육을 강화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을 통한 창조경제를 정책기조로 삼고 있는 바, 실질적인 ‘이과 폐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교육과정개정 연구위원회(이하 연구위)의 개정안은 이러한 정책기조에 역행”한다고 지적하면서, “문·이과 통합은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중차대한 일인 만큼 서두르지 말고 진정한 문·이과 통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연구위원회를 새로이 구성하자”라고 촉구했다.


한림원이 발송한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었다. “문·이과 통합 교과과정, ‘과학·수학교육’ 강화만이 살 길”이라고 전제한 한림원의 ‘목소리’는 “최근 교육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편에 대해 심히 우려하고 있다”라고 밝히면서 네 가지 ‘충심어린’ 지적과 제안을 건넨다. 첫째, 미래를 위해서는 과학·수학교육을 지금보다 더욱 강화해야 한다. 둘째, 교육부의 교과목 개정 방향은 시정돼야 한다. 셋째, 교육과정 개정 연구위원회에 각 분야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 넷째, 교육과정 개편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결국, 공문에 담긴 긴급 메시지는 요약하면 간단하다. ‘연구위’가 고교 문·이과 통합을 위한 교과과정 개편안을 준비하면서도 과학계가 참여하지 않은 편향된 위원 구성으로 수학과 과학 교육 비중을 축소하고 있으며, 과학 경시 풍조를 개선하기보다 심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지금 연구위가 마련중인 개정안은 국어, 영어, 수학의 필수 교과시간은 주당 10시간에서 12.24시간으로, 역사를 포함한 사회 과목 필수 교과시간을 각각 주당 10시간에서 16시간으로 확대했다. 이 안대로라면 전체 필수 교과시간에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과학계가 단단히 뿔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림원은 “결국 고등학교에서 창의융합적 사고를 훈련시킬 수 있는 과학의 시간수를 줄이려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과학·수학교육이 무너지면, 대학의 교육도 무너진다”라고 진단하면서 연구위의 개정안 작업을 우려했다.
이덕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서강대·화학)은 “교과목을 잘게 쪼개 놓고, 개념 설명에만 골몰하는 교수학습 방법은 기능공 양성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문 분야를 모두 가르쳐야 한다면서, 자연과학과 공학의 기초학문 분야는 외면하는 교육과정전공 학자들의 얄팍한 꼼수는 설득력이 없다. 문과는 과학·수학을 포기하고, 이과는 사회·국어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일그러진 수능과 최소이수단위를 바로잡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교육과정 개편은 어떻게 진행됐나
문·이과 통합을 위한 교육과정 개편 작업은 지난해 여름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꺼내든 이슈였다. 교육부는 올해 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문·이과 통합을 위한 교육과정 개정을 예고했다. 오는 7월까지 개정안 총론의 주요 내용을 결정하고, 내년 8월에는 각론을 고시한다는 게 교육부의 기본 구상이다. 그러다보니 논의가 속전속결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문·이과 통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 과학계이지만, 이들이 불만스럽게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대목,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고 논의를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연구위가 꾸려져 진행하고 있는 개정안 총론은 고교 교과목 편제 및 시간 배당이 핵심이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필수 이수단위를 줄여줌으로써 학생들의 과목 자율 선택권을 넓히며, 이렇게 해서 문·이과 통합에 도움을 주자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그러나 여러 차례 회의가 진행됐지만, 내용이 처음 공개된 것은 5월 14일이었다. 과학계가 신중하지 못한 접근이라고 보는 것은, 정책 연구에 참여한 이들의 전공이 편향된 점도 작용한다. 대부분 교육과정 전공으로, 전체 12명 가운데 수학 교육과 물리 교육 전공자 단 2명만 포함돼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연구위도 그 구성을 보면 전체 11명의 위원 가운데 물리 교육 전공자 1명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온 개정안 윤곽은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주지도 못하고, 결코 과학 경시 풍조를 개선하거나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과학계의 진단이다.

과학과목 시수를 늘여달라는 주장?
기초과학 학회협의체는 논의중인 개정안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으며, 과학 과목을 상대적으로 축소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문제 삼고 있다. 교육부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를 강조했지만, 실제 개정안을 들여다보면 사회(역사 포함) 대비 과학은 63% 수준에 그치며, 특히 과학을 핵심교과로 취급하는 국제적 중요도에도 턱없이 밑돈다는 게 이들의 결론이다.


이덕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장은 과학계의 이런 비판을 ‘과학 과목 시수 확대’로 오해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과학계가 ‘과학 과목 축소’라고 말하면, 그걸 시수를 늘여달라는 주장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시수보다 중요한 것은, 문과 학생에게는 과학의 경이로움을 제대로 알려주고, 이과 학생에게는 역사와 철학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도록 기초 교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계의 주장은 시수가 줄어들었으니 단순 반대한다는 논리가 아니다. 소수의 교육학자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도록 한 것이 패착이다. ‘모두를 위한 과학 교육’에 대한 아이디어와 지혜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어떤 대안을 찾아야 할까
일단 과학계는 분명한 목소리를 사회 곳곳에 제출했다. 한림원이나 기초과학 학회협의체 모두 공통된 내용을 주문하고 있다. 협의체는 과학적 소양과 문제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는 과학교육 구현(구체적으로 ‘과학실험 교과’ 신설 요구)과 이공계 적성이 이공계 진학에 불리하지 않은 입시시스템 마련, 시대에 걸맞은 과학 중시 풍토 조성 등을 촉구했다. 한림원은 연구위에 각 분야 전문가 특히 산업, 과학, 수학, 창의력 전문가들을 참여하게 하고, 5개월의 시한을 정해 놓고 졸속추진하기보다 ‘신중하게’ 교육과정 개편을 검토해줄 것을 요청했다.


한국창의재단 융합과학교육단장을 맡고 있는 정진수 충북대 교수(물리학과)는 “우리나라도 초중고에서 과학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이공계 적성을 가진 학생조차 수학·과학 과목을 기피하게 만드는 입시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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