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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책의 匠人’이 던진 벼락같은 한 手
우리시대 ‘책의 匠人’이 던진 벼락같은 한 手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4.06.26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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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기념 영혼도서관’ 짓는 이기웅 열화당 대표

 
누구든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자서전을 쓰는 일에 착수하게 하는 게 영혼도서관의 지향점이다.
영혼도서관에서 우리의 영혼은 한 권의 아름다운 책 속에
따뜻하게 묻히게 될 것이다.

▲ 영혼도서관을 건립하고 있는 이기웅 열화당 대표. 그의 도서관은 정신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웅(74세) 열화당 대표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책 인생이 거의 반세기에 가까울 정도다. 그러나 그와 책에 얽힌 관계는 200년이나 된다. 강릉의 역사적 유물인 船橋莊이 그가 어릴적부터 자란 곳이다. 선교장은 그를 책의 세계로 이끌고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천이다. 1815년 그의 5대조인 鰲隱 李厚가 선교장에 서재와 사랑채를 겸한 ‘悅話堂’이라는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다. 열화당은 그 시절 하나의 도서관이자 출판사 같은 곳이었다. 장서가 1만권을 넘었고, 문집도 찍고 족보도 찍었다. 그는 대여섯 살 때부터 그곳을 들락거렸다. 군불도 때고 책 심부름을 하면서 열화당을 온몸으로 익혔다. 결국 이런 경험이 그를 출판계로 이끌어 책을 만드는 匠人이 되게 했다. 그의 아호(悅話) 또한 그곳의 이름을 땄고, 1971년 그가 설립한 출판사 ‘열화당’도 거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책과 출판에 관해서라면 이기웅 대표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그만큼 그가 우리 출판문화에 드리운 그림자가 크다는 얘기다. 책에 대한 선한 의지와 철학 같은 믿음을 가진 이 대표는 건강하고 좋은 책이 곧 올바른 사람과 사회, 더 나아가서는 건강한 나라를 만든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오늘의 파주출판도시 건설과 조성을 주도했고, 이제 그 마무리 단계에서 쌀농사와 사람 농사를 축으로 하는 인간중심의 친환경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현재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기웅 대표가 책을 통해 사람 냄새를 물씬 풍기게 하는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름 하여 ‘영혼도서관’을 세우는 일이다. 파주출판도시에 부지는 이미 마련됐고, 건립을 위한 설계 작업과 설치 미술 등의 아트워크가 더해지는 공사이고 작업이다. 500평 규모의 부지는 이 대표의 기증으로 마련됐고, 설계는 조병수, 아트워크는 임옥상,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부각되고 강조되는 이 도서관에 걸릴 안중근 초상화는 안창홍이 맡았다. 도서관은 ‘안중근기념영혼도서관’으로 명명될 것이다. 이기웅 대표가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로 숭앙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 그를 지난 18일 점심시간이 막 지나 파주출판도시의 열화당 사옥에서 만났다.

△ ‘영혼도서관’의 개념부터 듣고 싶다.
“인간은 靈的인 존재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인생을 원함은 영적으로 살기를 희구함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희망에 차서 시작되지만, 절망으로 끝나거나 회의와 옹색함과 謀免之策으로 얼버무리며 삶을 마감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인생이 어찌 모면지책에 의탁해 살고 끝나야 하는 것인가. 그 생각만 하면 슬프다. 그래서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참다운 자서전을 쓰는 일에 착수하는 것이 바로 ‘영혼도서관’이 지향하는 바다. 그래서 이를 구상했고 추진 중이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모두가 자서전 쓰는 일에 착수하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평생 계속해서 참다운 자서전 쓰는 일에 착수하면 어떤 세상이 되겠는가. 맑은 세상이 될 것이다. ‘영혼도서관’에서는 한 인간이 평생 동안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주선해주고, 경우에 따라서는 깊이 개입해 지도해주는 일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혼도서관’에 등록해 자서전을 쓰는 동안, 그의 인생은 깊은 성찰을 통해 인간 본연의 진정성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그 삶은 영적인 존재감을 세우고, 마음의 평정과 삶의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자서전이라고 하는 책의 가치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요체에 이르고자 하는 발상이다. ‘영혼도서관’에서 자서전을 쓰는 것은 말하자면 자신의 인생을 殮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 평생 책을 만들어 온 입장에서 책에 대해 느끼는 생각도 ‘영혼도서관’ 건립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이는데.

 “맞다. 나는 48년 동안 책을 만들고 공급하는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책이 제 구실 못한다는 문제의식에 좀 당황스럽고 괴롭다. 예컨대 수많은 자기계발서 류의 책을 보라. 자기를 계발하는 게 아니라 인간을 망가뜨리는 도구로까지 가고 있다. 법정스님이 돌아가실 때 말씀을 기억한다. ‘내 책 모두를 절판하라. 내가 쓴 말 모든 게 다 거짓이고 허위다.’ 인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울 수 있나 생각했다. 그렇다면 책다운 책이란 무엇일까. 일기든 자서전이든, 자기반성을 위한 글쓰기라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기웅 대표가 말하는 자서전은 숨김없는 인생의 고백록 같은 것이다. 예컨대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쓴 『참회록』, 사후 100년이 지나 출간하라고 유언했던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 같은 것을 말한다.


▲ 안중근기념영혼도서관’ 조감도
△ 특정인만을 대상으로 한 ‘영혼도서관’이 아니라면 일반 보통 사람에게 그런 자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믿음이 있다.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서로 손을 내밀고, 제안하고, 따뜻함을 권하는 사회, 이것이 ‘영혼도서관’의 궁극적 지향이다. 톨스토이라고 어느날 갑자기 깨달아 『참회록』을 쓰게 된 건 아닐 거다. 모든 인간이 대문호처럼 글쓰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자서전을 쓰는 동안 거칠었던 우리 인생은 따뜻한 자기 성찰과 사랑의 삶으로 가다듬어질 거라고 본다. 그때야말로 인간 본연의 진정성을 얻게 될 것 아닌가. 이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영혼도서관’은 이렇게 운용된다. 누구나 이 도서관에 등록하면서 자서전을 쓴다. 정해진 기일이 없다. 그저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단 한 줄만 써도 된다. 쓰다가 내용이 마음에 안 들면 지워버려도 된다. 글의 양에 대한 기준도 물론 없다. 그렇게 써 나가다 때가 이르러 생을 마감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영혼도서관’에서는 故人의 유족 또는 친지들과 협의해 그동안 써왔던 자서전 원고를 정리해 한 권의 아름다운 책으로 탄생시킨 다음 이 도서관 서가에 꽂는다. 그 자서전은 제한적으로 열람이 가능하지만, 매우 상징적으로 항구히 보존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은 한 권의 아름다운 책 속에 따뜻하게 묻히게 된다. 유체의 흔적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방안도 있다. DNA를 채취해 병에 넣어 책에 걸어두게 하는 방법 등이 그 것이다.


△ 그런데 왜 안중근 의사의 이름을 걸었는가.
“안중근 의사 이름을 걸었다고 해서 안중근 자료 같은 것으로만 모아놓는 도서관은 아니다. 안중근을 추념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명명했다. 안 의사가 나에게 끼친 영향이 클뿐더러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안 의사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 그렇게 된 계기가 있었던 것 같다.

“1990년 대 초중반 파주출판단지를 건설할 때 말로 표현 못할 어려움이 있었다. 요즘 관피아라는 말이 유행인데, 나는 그때 이미 그것과 그로인한 폐해를 경험한 사람이다. 우리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 구성원들의 교양이나 상식, 그리고 소통방식 등에 많은 불신과 회의를 느끼던 터에 안중근 의사가 내게 다가왔다. 그건 하나의 빛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안 의사를 너무 몰랐다. 안다는 것은 깨달음인데,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1995년 노산 이은상이 정리한 안 의사의 공판기록 번역본을 대하면서 안 의사를 알게 됐다. 공판기록 속에서 안 의사의 엄청난 외침을 듣고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나의 고통은 고통도 아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자’고 했다. ‘영혼도서관’에 대한 구상도 그 무렵이다. 안 의사를 깨달으면서 우리나라에 허전한 게 너무 많고 지저분한 인간의 꼬락서니들을 보면서 인간의 영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것이다.” 이기웅 대표는 안중근 정신을 ‘愼獨’이란 말로 표현한다. 『大學』과 『中庸』에서 말하는,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간다는 뜻이 담긴 말로, 안 의사의 생애를 『 관통하는 일관된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안 의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2000년 안 의사의 공판기록을 텍스트로 해 안 의사의 투쟁기록을 담은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를 펴내기도 했다. 이후 안중근은 이기웅의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 역할을 했다. 1999년에는 출판도시 문화정보센터에 안 의사 동상도 모셨다. “출판도시 하면서 정말 어떤 위대한 힘에 의존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없었다. 안 의사에 의존하면서 큰 의지가 됐다. 나는 그 걸 그때 확실하게 느꼈고 뭔가 보였다. ‘영혼도서관’을 추진하면서도 물론 그랬다. 뭔가를 결정할 때 나 혼자만의 생각을 배제하려 했다. 안 의사에게 묻곤 했다. 물론 나 혼자의 자문자답이었지만 훈련이 되니까 버릇이 되더라.”


아직 완공은 되지는 않았지만 ‘영혼도서관’에는 현재 몇 권의 책이 모셔져 있다. 안 의사의 공판기록을 번역한 『안중근전쟁 끝나지 않았다』와 故민영완 목사(1918~2009)의 회고록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 『김익권 장군(1922~2006) 자서전』, 『헤이리 예술마을 이야기』, 그리고 故이청준 작가(1939~2008)의 복간된 작품집인 『별을 보여드립니다』 등이 있다. 또 현재 열화당에서 작업 중인 『백범일지』 원본 복간본도 안치될 예정이다. 이기웅 대표는 좋은 책 만들기로 자신의 인생을 구원받기를 원한다. “천직처럼 살아 온 책장이로서 한 권의 진정한 책을 엮음으로써 나락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내 인생을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는 게 그의 책과 인생에 대한 솔직한 심정이다. 우리 시대 진정한 ‘책의 匠人’인 그의 생각이 이럴진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 중인 ‘영혼도서관’이 어떠한 것인지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그래서 그의 ‘영혼도서관’에 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글·사진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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