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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도 '팔자'가 있다?
유전자에도 '팔자'가 있다?
  •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 승인 2014.06.2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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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_ 우리는 생각한다]

인간의 행동은 뇌 활동의 결과다. 정확하게는 뇌의 선천적인 부분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 산물이다. 각 개인의 특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DNA이며 이는 일란성 쌍둥이가 아닌 한 개인마다 고유하다. 인간 뇌의 고유한 특성을 형성하는 또 다른 요인은 축적된 개인의 경험이다. 환경으로부터의 감각 그 자체도 뇌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도 물리적인 면에서는 동일할지라도 행동에 있어서는 동일하지 않다. 유전 및 경험에 의한 차이는 결국 뇌의 물리적 변화로 표현되며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모든 범주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1907~1944년 사이에 우생학 프로그램의 시행으로 30개 주에서 약 4만 명 이상의 정신지체 및 정신질환자 또는 규범적 범위를 벗어나는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불임수술을 시행했다. 우생학에 대한 추종은 독일의 ‘나치’가 그들의 대량학살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자취를 감췄다. 인간의 행동은 수많은 유전자 및 비유전적 요인들과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 지능 또는 게으름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식의 단순한 결정론적 모델은 일반적인 행동의 표현형을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행동의 기원에 대한 유전학적 집착은 숙명적 결정론에 입각해 사회정책을 추진하도록 조장할 것이며, 특정 소수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강화시킬 것이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정신에 관련된 질환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로 인한 질환임을 밝히고자 정신질환에 대한 연구에 유전학적 접근이 시도됐다. 실제 많은 정신질환이 유전적인 소인에 의해 영향 받는다. 그러나 정신질환과 연관돼 있을 것으로 보고했던 많은 유전자들에 대한 후속 연구 결과 연관성을 재현하는데 실패해 정신질환을 단지 유전적 소인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정신분열증이 발병할 위험성은 유전적 소인으로 의심되는 유전자를 보유한 정도에 따라 증가한다. 만일 일란성 쌍둥이 중 한명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면 다른 한명이 정신분열증에 이환될 확률은 50%이다. 일란성 쌍둥이는 동일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데 왜 한쪽 쌍둥이는 정신분열병 환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에서 이 질환에 걸리지 않을 확률은 50%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환경에 있다. 노화에 대한 연구 방편으로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특정 DNA의 메틸화 양상 조사에서 제한효소 지도상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 3살 때는 여섯 개의 밴드에서만 차이가 발견됐지만 50세에서는 78개의 밴드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들을 볼 때 인간의 행동은 유전적 소인과 더불어 환경이라는 문화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할 때 고의적으로 왜곡하지 않는 경우조차도 통계자료를 모으는데 수많은 오류가 있다. 일부 사람들은 정량화할 수 없는 것을 정량화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오류는 지적 호기심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정확하고 정량화 할 수 없는 요인들이 녹아있는 통계자료들이 정책을 수립하는데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병리에 대한 부정확한 진단은 그 자체로는 악의가 없을지라도 사회-개조론자들의 시각과 연결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에만도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와 같은 여러 유형의 사회-개조론자들의 행위와 그 결과를 지켜봐왔다. 좋은 의도를 가진 사회-개조론들조차도 사회의 안녕을 위협할 수 있다. 지식 추구와 사회여론 조성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그들의 작업이 초래하는 위험에 대해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라든가,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다”는 국무총리 내정자의 발언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와 이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상호작용 결과물이다. 언어는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의사소통을 위한 탁월한 행동 패턴이다. 지구상에는 약 1만 종의 언어와 방언이 존재하나 세세한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발언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의사소통이 가능한 언어라 할 수 없으며 종교적 언어와 사회적 언어가 따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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