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리야르는 축제를 둘러본 후 곧바로 28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가해 ‘미디어의 공격성’을 주제로 발표회를 가졌다. 로렌스 릭켈 교수(산타 바바라 미대), 존 웰츠맨 교수(캘리포니아대 미대)가 함께 발제했으며, 김정탁 중앙대 교수(신문방송학)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광범위하게 확장되는 디지털 문화가 우리의 삶과 예술에 끼칠 궁극적 영향, 그것의 묵시론적 성격, 저항적 대안 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보드리야르는 발제문에서 포스트모던 사회의 여러 폭력 유형을 점검했다. 그는 그 중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제3의 폭력 유형으로 정보, 미디어, 이미지, 스펙터클의 폭력을 위험하다고 지목했다. “고전적 폭력은 항상 실재가 드러난 반면 우리 시대의 폭력은 실재를 사라지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그는 더 나아가 “폭력이 그것의 원천인 권력의 흔적을 없앰으로써, 통제력의 내면화를 더욱 가속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사물들이 더 이상 상징가치나 사용가치로 존재하지 않고, 오직 복제된 이미지들의 상호작용이 현실의 의미망을 형성한다고 말해온 보드리야르는, 이번 발제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조차 그 스스로를 파괴하는 형국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합성사진 등 이미지 조작 행위가 범람하면서, 그나마 이미지 속에 남아 있던 대상(실재)의 흔적조차 멀어지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보드리야르는 “이미지를 현실에 가깝게 하기 위해 이미지를 변조하는 ‘이미지 파괴’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환기시키며,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반미디어적 매체로 ‘사진’을 강력하게 거론했다. “사진은 침묵으로 소음에 저항하고, 부동자세로 가속에 저항하고, 비밀을 통해 정보의 분출에 저항하며, 무엇보다 이미지의 끊임없는 연속에 저항하기 때문”에 인간의 시선을 “기술적인 금욕상태”와 만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한편 26일부터 두달간 열리는 ‘미디어_시티 서울 2002’는 세계 최대의 순수 미디어 아트 축제로서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다. 해외작가 42명, 국내작가 37명, 웹전시작가 50명 등 총 1백30여명의 국내외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