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0:00 (금)
독이 든 성배를 제공한 哲人들
독이 든 성배를 제공한 哲人들
  • 교수신문
  • 승인 2014.06.03 1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텍스트로 읽는 신간

▲ 『히틀러의 철학자들』 이본 셰라트 지음 | 김민수 옮김 | 여름언덕 | 440쪽 | 22,000원
“완전히 새로워지고 점점 더 커지는 경외감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며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더 자주 더 줄기차게 그 두 가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다. 그 두 가지란 별이 빛나는 하늘과 그 아래에 있는 도덕률이다.”

유감스럽게도 칸트는 이토록 고귀한 감정을 유대인들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히틀러에게 칸트는 선물이었다. 왜냐하면 히틀러는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시민생활을 하기에 부적합한 유대인들이 없어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품위 있는 계몽주의 철학자의 이론을 통해 자신의 대의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것보다 히틀러에게 더 큰 기쁨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히틀러가 칸트에게서 유대인 혐오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예외적인 사건이었을까? 그것은 그저 철학자 한 명의 괴팍한 편견에 불과했을까? 안타깝게도 상황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피히테는 게르만어의 뿌리가 라틴어가 아니라 튜턴어라는 점에서 독일인은 유일무이하고 이러한 독일인의 순수성은 보존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주장들이 단순히 민족주의의 표현이었을지는 몰라도 다음 주장을 보면 피히테는 노골적으로 사악한 무리의 편에 선 것이었다. “나는 유대인들에게 시민의 권리를 부여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본다. 만약 그들의 머리를 잘라낸 다음 유대인적 사고가 단 하나도 들어 있지 않은 새로운 머리를 갖다 붙인다면 그들에게도 시민의 권리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은 자신의 새롭고 웅대한 역사관을 통해 새로운 새벽의 도래를 예측하면서 유대인은 배제했다. 헤겔은 유대인을 유럽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모자라 그들을 인류 문명 바깥에 있는 열등한 존재로 분류했다.
“유대인은 그들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생존해 있다.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유대인 역사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본질은 사라지고 단지 송장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또 헤겔은 의심할 여지없이 고결한 의도를 가지고 그랬겠지만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사상을 제시했다. 강력한 국가를 옹호하면서 역사적 진보는 국가 간의 물리적 충돌을 통해 이뤄진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물리적 충돌은 긍정적인 동력이 될 수 있었고, 어느 평자가 지적했듯이 “전쟁은 도덕적이고 (법철학에서 말하듯이) 윤리적으로 영적 세례의 기능을 한다는 헤겔의 생각은 특히 비참한 결과를 불러왔다.”(G. Litter)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반유대주의 사상은 계몽주의에서 낭만주의까지, 민족주의에서 과학까지 독일 사상의 모든 분야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논리적인 사람과 열정적인 사람, 관념론자와 사회진화론자, 교양이 넘치는 자와 천박한 자를 가릴 것 없이 모두 히틀러가 자신의 꿈을 강화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사상을 제공했다. 강력한 국가, 전쟁, 초인, 반유대주의, 생물학적 인종주의에 대한 이론들이 독일의 교과서 속에 차고 넘쳤다. 독일의 숭고한 유산 밑에는 이처럼 어두운 면이 감춰져 있었다. 숭고함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으며 평범한 관심사를 초월했던 독일 철학자들은 유럽 문명에 독이 든 성배를 제공했다. 머지 않아 히틀러는 독이 든 그 성배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이용한다.

□ 저자는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 선임연구원이었으며 최근까지 옥스퍼드 뉴칼리지에서 강단에 섰다. 『아도르노의 긍정 변증법』 등의 저서가 있다. 철학자들은 히틀러와 나치에 어떻게 동조했으며, 또 나치는 그들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짚어낸 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