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4:05 (일)
퇴계의 ‘인문학교 건설’이 주는 지혜
퇴계의 ‘인문학교 건설’이 주는 지혜
  • 교수신문
  • 승인 2014.05.28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가 말하는 전통 지식인의 ‘출사와 은둔’

지난 10일(토) 진행된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제16회차 강연 주인공은 배병삼 영산대 교수였다. 정치사상 특히 동양철학 그 가운데서도 맹자를 통해 삶의 지혜를 도출하고자 애써왔던 그는 이날 강연 주제로 ‘출사와 은둔 : 절망의 시대, 선비가 걸어가는 길’을 제출했다.

남명 조식의 “선비의 큰 절개(大節)는 정치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출처진퇴에 있을 따름이다” 라는 경구를 내건 그의 발표는 ‘동아시아 전통 사회의 정치와 지식인들에게 중요한 주제’이자,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그 무게를 이어가는 문제를 정면에서 건드렸다. 일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식인 학자의 문제를 사회과학적 시각에서 분석한 것과 일정 부분 닿아 있는 진단이라고 볼 수 있다.


배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孔孟을 거쳐 남명 조식,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등 전통 유학자들의 진퇴를 분석한 뒤 “물론 출사은둔의 주제는 공직 외에는 생존의 길이 없던 전통 사회에서 빚어진 고색창연한 지식인의 행동 윤리이긴 하다. 그러나 오늘날도 지식인의 정치적 행동과 또 민주 시민의 윤리를 북돋는 지침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강연을 정리했다. 이 강연은 네이버문화재단, 네이버, 민음사, 월드컬처오픈 코리아 등이 후원했다. 그의 강연 일부를 발췌한다. 사진제공 카라커뮤니케이션

남명 조식은 사화의 시대에 부응해, 敬으로 몸을 다스리고 義의 가치를 높였다. 은둔의 길을 걸으면서도 나라를 걱정했다니 ‘백이’에 비견할 수 있겠다. 율곡 이이는 당대 정치에 참여해 시대를 광정하는 것을 선비의 임무로 삼았다. 불사무의라는 공자의 지침을 따른 것이다. 그는 마치 ‘흙담이 비에 무너지는 듯한’ 당시 국가의 공공성을 복원하기 위해 분주했고, 그 정치 개혁 방안을 다수의 상소문 속에 담았다. 후세의 개혁가들은 대부분 율곡의 문장을 본으로 삼았다. 퇴계 이황은 출사와 은둔의 사잇길을 걸었다. 그는 서원 건설 운동을 통해 조선의 정치적 구도를 새롭게 개편했다(조선 후기 山林政治 출현은 서원이라는 학교에서 잉태된 것이다).


퇴계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장(공동체)이 곧 정치의 공간이라고 보았다. 농민에게는 농촌의 삶이 정치요, 학생에게는 학교가 정치의 현장인 셈이다. 서울(조정)에서 군주와 장관들에 의해 기획돼 지방에 하달되는 권력적 행위만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자율적인 사회 활동도 정치에 포섭됐다. 공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찌 꼭 공직에 출사하는 것만이 정치이랴. ‘집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로움을 실천하는 것’ 또한 정치임에랴!”라는 말을 실천한 셈이다. 그는 조선의 정치 영역을 국가 전체로 확대했고, 구체적으로는 안동 땅에서 서원 건설 운동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영역을 열었다.


남명과 율곡, 그리고 퇴계의 길은 현상적으로는 달랐으나 각각의 처지에서 의식적으로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는 동질적 가치를 지닌다. 맹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세 사람이 걸었던 길은 달랐지만, 그 지향은 같았다. 그 지향이란 무엇이던가. 곧 仁일 따름이다.”


출사은둔의 주제는 국가와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존엄성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모순된 요구에 기초한 정치적 행동이다. 출사해 사회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것이 유교 지식인의 마땅한 길이지만, 권력의 마성에 무릎 꿇지 않으면서 또한 개인의 존엄을 유지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이기도 하다.


물론 출사은둔의 주제는 공직 외에는 생존의 길이 없던 전통 사회에서 빚어진 고색창연한 지식인의 행동 윤리이긴 하다. 그러나 오늘날도 지식인의 정치적 행동과 또 민주 시민의 윤리를 북돋는 지침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막상 ‘기업 국가’가 운위되고, 공공 영역이 효율성과 경제성의 포로가 돼 그 공공성이 심각하게 훼손되는 오늘날, 출사운둔 속에 든 정치적 행동의 엄격한 처신과 추상같은 자기 성찰은 더욱 소중한 가치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정치가의 질문이라면서 하필이면 이익을 논하시오?(何必曰利)”라던 일갈이 낯설지 않은 오늘날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퇴계 이황이 선택한 퇴로 개척의 길, 새로운 인간을 길러 낼 인문 학교의 건설이 절박한 요청으로 와 닿는다.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민주 의식을 함양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적 공공성을 북돋는 학교의 건설이 오늘날 시민(지식인)의 책무로 여겨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