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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엔진과 망각의 권리
구글 검색엔진과 망각의 권리
  • 이창남 서평위원/한양대·비교문학
  • 승인 2014.05.1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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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omus 우리는 생각한다

▲ 이창남 서평위원
최근 유럽 최고 법정에서 구글 검색에 나오는 정보를 당사자가 요구할 경우 삭제하도록 하는 판결을 내려 주목을 끌고 있다. 구글의 정보도 단순 링크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일정한 가공이 이뤄지므로 정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판결은 사람들에게 망각의 권리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가령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짐에서 자유롭게 새로 시작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구적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불명예나 과오의 기록을 남겨두고 싶어하지 않는 역설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요즘 초대용량의 슈퍼 메모리 머신들은 ‘남김없이 기억하고 항구적으로 보존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자서전도, 전기도, 사전도, 도감도, 지도책도 이제는 점점 필요가 없어지는 것 같다. 구글과 같은 검색 머신이 마치 거대한 백과사전처럼 모든 기록을 연결시키고 항상적으로 찾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출판의 젖줄이 어느 순간 검색엔진으로 이동하면서 출판계에서 볼멘소리들이 나오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듯하다. 어쨌거나 전통적인 책의 기능과 역할은 인터넷으로 이동하고 있고, 특히 슈퍼 메모리를 갖춘 검색엔진은 마치 ‘세계는 책’이라는 중세의 이념을 구현하고 있는 듯한 생각마저 든다.

그 책에서 망각의 권리는 없다. 한 번 기록되는 순간 불명예와 과오를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하는 어떤 신의 장부와 같은 이 메모리 머신의 권능에 유럽법정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일견 환영할만한 일인 듯해 보인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위키피디아를 창안한 지미 웨일스는 “누구에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키피디아 기사의 진실성을 검열할 것을 유럽법정이 언제 요구하게 될까 ?”하고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실 특정 정보와 이해관계가 걸린 당사자는 힘없는 개인에서부터 막강한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책을 불사르거나, 정보 유통을 검열하고, 차단해온 역사적 경험을 고려하면 유럽 법정의 판결이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순전히 객관적인 사실에 머무르는 정보가 없듯이, 문자로 정착된 정보는 관련된 사람에게 영원한 명예일 수도 있고, 영원한 주홍글씨일 수도 있다. 그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모든 정보 정제를 무작위적인 슈퍼 메모리 검색 머신에게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한편 그러한 이유로 정보 유통을 제지하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정보의 검열과 삭제를 수행해온 권력의 책략을 지지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정보 유통의 자유만을 강조하기도 어렵고, 책임만을 논하기도 난감하다.

더욱이 이러한 기억과 망각의 문제는 개인뿐만 아니라 집합적인 역사적 경험과 관련해서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고, 이는 종종 국가 간의 관계의 문제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유럽 법정의 결정은 물론 ‘개인의 권익보호’와 주로 관련된 것으로 그 판결 자체를 확대 해석하는 일은 보다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는 영원히 망각되지 않는 어떤 항구적 기억의 시대를 살고 있고, 어디까지 망각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자기 스스로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거리에서, 그리고 주거지에서 늘 캡쳐되고, 저장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책에서 멀어진 것 같지만, 사실 책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항상성을 가진 책의 권능과 횡포를 동시에 물려받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창남 서평위원/ 한양대·비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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