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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가루 묻은 월급봉투·빛바랜 사진 … 역사가 된 흔적들
탄가루 묻은 월급봉투·빛바랜 사진 … 역사가 된 흔적들
  • 홍금수 고려대·지리교육과
  • 승인 2014.04.29 15: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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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_ 『탄광의 기억과 풍경』 홍금수 지음|푸른길|352쪽|25,000원

 

▲ 성주리 탄광 ‘광업원부’와 ‘조광권원부’(왼쪽). 저자는 성주광업소 임직원의 제보를 통해 성주리 탄광마을의 역사지리를 복원해냈다.

메타 내러티브의 해체를 주장하며 등장한 소위 후기담론(post-ism)은 그 방법론에 대한 회의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배열을 수평으로 돌려놓는 발상의 전환으로 모든 존재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지성사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탄광의 기억과 풍경』는 그 연장선에서 산업화의 당당한 주역이었음에도 술, 도박, 매춘의 꼬리표가 붙여진 채 매도당하다가 석탄산업 합리화 이후에 주변으로 내몰려 빠르게 잊혀져가고 있는 어느 한적한 산골마을의 사연을 소개하고 그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다. 거친 이미지로 표상된 타자의 공간에 관한 이야기이며, 배경은 충청남도 보령에 자리한 성주리로서 그간 연구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아 온 삼척탄전 밖 의외의 지역이다.

 

배제의 공간을 벗어나 이제는 소중한 산업유산으로 조명을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재발견에 나선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거창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성주리는 과거에 어떤 곳이었고, 산업화는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채탄으로 시작하는 마을의 일상과 노동의 공간은 어떠했는지 상상해보고 현장에서 확인해본 것뿐이다.


필자가 이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해 전의 일로서 정기답사에 학생들을 인솔해 보령석탄박물관을 방문했을 때부터다. 짐짓 고상한 척 화살표가 지시하는 정해진 경로를 따라 별다른 감동 없이 전시품을 돌아보고 다음 행선지로 향해 달리던 중 차창 밖으로 정연하게 늘어선 사택의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터라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주민들과도 짧게나마 인사를 나눴다. 성주리와의 인연은 이처럼 우연하게 시작됐으며 마을에 대한 당시의 강한 인상은 본격적인 연구로 이어진다.

지리학자의 가까운 과거 먼 시간
늘 보아온 것이 어느 순간 눈앞에서 사라지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도 일상적이었기에 그 소중한 가치를 되새길 새 없이 망각에 붙여야 한다는 각박한 현실이다. 탄광촌은 땅 아래 묻힌 시커먼 탄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났다가 바닥이 드러나는 순간 홀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다. 유동성이 크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없고 마을 안에서의 생활은 고단하기 그지없어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은 물론 뒤를 돌아볼 겨를조차 없다. 고작 채굴된 석탄 생산량이 역사로 기록될 뿐이다. 연탄의 따뜻한 온기 속에 어린 시절을 ‘낭만적으로’ 보낸 필자에게 1970∼80년대의 노스탤지어는 낯선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의 그것보다 강렬하고 그렇기에 이런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필자가 성주리에 관한 책을 구상하게 된 사연이다.


『탄광의 기억과 풍경』는 소지역 단위의 가까운 과거에 관한 연구다. 범위가 좁기 때문에 문화를 비추는 거울로 비유되는 ‘풍경’이 실타래를 푸는 관건이 되며,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아 ‘기억’에 기댈 여지가 많다. 탄광마을 성주리의 문화와 역사를 재구성하겠다는 일념으로 도서관을 드나들며 먼지가 쌓인 문헌을 뒤졌고 그간 광업 연구자들에게 소개되지 않은 광업원부와 조광권원부도 운 좋게 발굴했다. 현장에서는 탄가루 묻은 월급봉투, 식당의 수금장부, 빛바랜 사진 같은 귀중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모으고 과거의 흔적이 서린 소박한 풍경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발로 뛰며 얻어낸 값진 전리품이지만 자료 자체가 지난 시절을 온전히 전하지는 못한다. 자료 속 주인공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그들과의 만남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거칠었다. 전문용어로 아직 래포(rapport)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만남이 거듭될수록 낯선 이를 향한 촌로의 경계의 눈빛은 어느덧 다정한 인사로 바뀌었고 대화도 점점 깊이를 더해갔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하다. 노다지를 꿈꾸며 수중에 있는 모든 것을 판돈으로 건 경영자를 포함해 현장 기술자, 가정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 선탄장의 아낙, 골라낸 석탄을 철도역까지 실어 나른 운전기사, 갱도 인근에서 끼니를 해결해주던 식당 아주머니 등 이제는 그리운 얼굴들이다.


그들이 털어 놓는 푸념과 한탄과 무용담은 어느 한 소절도 연구를 위한 소중한 밑천이 아닌 것이 없었다. 물론 기억의 조각을 맞춰가는 데는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경험이 한결같지 않고 기억력도 사람마다 그리고 더해지는 연륜에 따라 다르며, 기울인 술 한 잔 때문에 쉽사리 과장과 왜곡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기억에 담기는 과거는 선택적이라는 본연의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는 채록한 대화 내용에 사족을 달거나 비판을 가하는 대신, 들은 그대로 전언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판단을 현명한 독자에게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폐광 후 대다수의 광업인구가 정처 없이 그것도 일시에 빠져나가 중심인물의 소재는 물론 생사조차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친인척, 이웃, 지인에게 묻고 또 물었다. 특히 연구 막바지까지 필자를 괴롭힌 것은 성주탄광 초기 개척자의 행방이었다. 서울 불광동에 거주한다는 소문에 기뻐한 것도 잠시, 몇 해 전에 타계했다는 말에 낙담하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장남의 거처가 확인되자 기차에 올라 단박에 부산으로 내달았고 영정으로나마 그의 모습을 처음으로 접했을 때의 감격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90세가 넘는 고령에도 해박한 지식과 또렷한 기억력으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들려준 할아버지를 비롯해 귀중한 자료를 희사하고 가슴에 묻어둔 사연을 꺼내준 많은 분들이 연구에 힘을 보탰다. 물론 모든 만남이 달콤했던 것은 아니다. 회사의 운영에 관여한 주요 인사의 자택을 방문해 기다리고 설득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지만 만남은 결국 성사되지 못했고, 진폐병동을 찾았을 때에는 환자들의 따갑고 원망 섞인 시선과 고함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픈 상처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표시로 받아들였다.

상품화에 몰두한 결과가 남긴 것들
우여곡절을 거치며 탈고한 『탄광의 기억과 풍경』을 통해 적지 않은 것을 느끼고 얻었다. 탄광마을 성주리의 옛 모습을 스케치하겠다는 출발 당시의 목적은 만족스럽게 달성했다. 기왕에 접해보지 못한 자료를 발굴하는 성과도 올렸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됐다. 자연을 가꾸고 보살피는 대신 상품화에만 몰두한 결과가 어떤지 눈으로 확인한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는데, 산자수명했던 고장에 수 백 개의 구멍이 뚫리고 잿빛 하늘 아래 주민들이 진폐증으로 신음하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지리학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을 지역, 공간이라는 말 대신 장소 또는 그냥 땅이라 부른다. 『탄광의 기억과 풍경』은 장소에 관한 글이다. 술에 취해 욕설을 방자하고 난봉을 피우는 시끌벅적한 땅, 남성이 곧 하늘인 땅, 그렇지만 구수한 팔도 사투리가 들리고 가난할지언정 따뜻한 정이 넘치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땅, 성주리의 이야기다. 흔히 장소는 탯줄로 이어진 아이가 머무는 아늑한 어머니 뱃속에 비유된다. 그렇게 편안했던 장소가 폐석더미의 쑥대밭으로 변한 마당에 그곳을 터전삼아 살아가는 주민들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상처가 깊다. 조국 근대화의 일선에서 희생한 대가는 고작 병들고 나약해진 몸뚱이와 무관심과 냉대뿐이다.


산업화를 견인했지만 찬 곳으로 내몰려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성주리의 재기를 희망하면서 연구를 시작했고 풍경과 기억에 의지해 과거를 재현했다. 상처를 입으면 되돌릴 수 없는 지역의 소중함을 성찰하고 인생의 막장으로 내몰린 남겨진 사람들을 어루만져야 하는 과제를 확인하는 것으로 우리의 여정은 끝난다. 가야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필자의 동행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유능한 동학들이 『탄광의 기억과 풍경』을 길잡이로 석탄뿐 아니라 지하에 매장된 또 다른 노다지를 캐고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엮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홍금수 고려대·지리교육과
필자는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 지리·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2년부터 고려대 지리교육과에서 문화지리학과 역사지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편집이사와 총무이사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역사지리』(공저), Geography, History and the American Political Economy(공저), 『인간과 자연』(번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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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2014-11-01 18:56:10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홍금수 교수님은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지리인류학과 박사학위를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리학 교수님이신데, 노어노문 저술은 맞지 않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