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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60% “논문보다 전문연구서에 가중치 둬야”
인문학자 60% “논문보다 전문연구서에 가중치 둬야”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04.22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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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서·번역서 연구성과 인정 주장도 90%에 달해

국내 인문학자 5명 가운데 3명은 연구업적 평가에서 논문보다 전문연구서에 더 가중치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수한 교양서적이나 번역서를 연구성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10명 중 9명에 달했다. 또 10명 명 중 7명은 논문의 질 위주로 평가하는 정성평가를 도입할 때 학계가 자발적으로 조직한 평가위원회에 정성평가를 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위행복 한양대 교수팀이 국내 인문학자 19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번 설문조사는 최근 발행된 정책연구보고서 『인문학 분야 학술성과 평가의 표준모델에 관한 연구』(한국연구재단, 2014.1)에 실렸다. 교수 연구업적 평가가 학술지 게재 논문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인문학자들도 장기적 기획과 노력이 필요한 저술 출간이나 거대 연구 등을 기피하고 논문 편수에 매달린다는 지적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연구팀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한다. 연구업적 평가가 논문과 저서를 중심으로 진행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인문학 분야에서는 대중교양서나 번역서 등 다양한 연구 성과물을 충분히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학술논문 위주로 진행되는 현재의 연구업적 평가제도에 대해 응답자의 77%가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연구업적 평가제도가 한국 인문학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다고 봤다. 또 응답자의 79%는 논문 위주의 현행 평가제도가 인문학의 발전과 사회와의 소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88%가 현재의 업적평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로 보인다. 80%가 논문의 질 위주로 평가하는 정성평가로 전환해야 한다고 답한 것 또한 자연스러운 결과다. 정성평가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적 기반과 구체적 시행방안이 마련돼야 하겠지만 정성평가로 평가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인문학 분야의 평가에서는 어떤 점들이 반영돼야 할까. 98%라는 절대 다수가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중장기 저술 활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답했다. ‘매우 그렇다’는 응답이 무려 77%에 달했다. 또 85%에 달하는 응답자는 인문학 분야의 업적평가에서 전문연구서에 충분한 평가비중이 주어지기를 바랐다.

업적평가에서 어떤 형태의 연구성과물을 가장 중시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전문연구서라고 답한 인문학자가 60%였다. 학술논문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7%였다. 국내 인문학자들이 전문학술서 저술을 기획하고 집필할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결과들이다. 업적평가에서 번역서와 교양서를 전문연구서나 학술논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문학자도 각각 6%와 7%나 됐다.

번역 성과물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준비와 제도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번역 성과물이 온전한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91%나 됐다. 우수한 교양서적을 연구성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도 92%에 달했다. 연구팀은 “인문학자들은 대부분 서적을 통해 대중과 만나기 때문에 번역서나 수준 높은 교양서에도 충분히 평가 점수를 부여하는 것은 인문학의 사회적 기여도를 제고시키는 중요한 장치”라고 말했다.

논문의 질을 평가하거나 다양한 저술을 연구성과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정성평가 도입이 필수적이다. 누가 평가 주체가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72%가 ‘학계가 자발적으로 조직한 평가위원회’라고 답했다. ‘각 대학별 평가조직’이나 ‘정부기관이 주도해서 조직한 평가위원회’는 각각 9%에 불과했다. 학계가 주도하는 정성평가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세계적 인문학자들은 장기간에 걸쳐 연구하고 집필한 전문 학술서를 통해 세상과 접촉했고 한국의 인문학자들도 학술지 게재 논문보다 전문연구서가 중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중장기적 연구 수행을 보장해주고, 그 성과에 충분한 가중치를 부여하는 업적평가 기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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