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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혹은 『아파트 공화국』
「아파트」 혹은 『아파트 공화국』
  • 이창남(서평위원/한양대, 비교문학)
  • 승인 2014.04.21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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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 이창남 서평위원
윤수일의 「아파트」는 1989년 나와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다. 한 대학 응원주제가로도 채택돼 많은 대학생들이 열렬하게 노래하기도 했다. 비판적인 시각을 가졌던 당시 대학생들도 아파트를 서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묘사하는 그 노랫말의 한 대목처럼 ‘갈대숲을 지나’는 한강변의 아파트들 이면에 자리 잡은 체계의 그늘을 간파하지 못했다.  한 외국인 도시계획가는 5천 분의 1로 축소된 강변 지도를 보고 “한강변의 군사기지는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축소판 지도에 나타난 아파트들은 일종의 병영기지처럼 보였던 것이다.

1960년대 마포 아파트가 완공될 당시 대통령이 방문해서 ‘현대화’를 내세워 입주를 권유했을 정도로 아파트는 도시계획의 한 야심찬 부분이었다면, 오늘날 아파트는 축적된 가계부채의 뇌관과 같이,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은 이러한 한국 아파트의 역사와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은 2004년에 출간됐고, 보완을 거쳐서 2007년에 재출간 된 이후 9쇄를 찍은 성공적인 역작에 속한다. 무엇보다 이른바 ‘멀리서 보기’를 수행하는 외국인 저자가 우리의 가까운 일상을 일깨워주는 각성의 효과가 큰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파트는 지난 50여년간 부지불식간에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경제를 좌우하는 요인이 돼 왔지만, 왜 이렇게 많은 아파트들이 존재해야하는지 그리고 특정지역의 아파트들에 목매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많이 고민했지만, 한국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간주되면서 방치돼 왔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수많은 아파트들이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를 달고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점유해갔다.

저자에 따르면 ‘땅이 좁고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막연히 아파트를 용인했던 데서 빚어진 현상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지대들의 인구밀도보다 달동네와 구주택지구의 인구밀도가 오히려 더 높다는 연구결과는 아파트의 정당성에 대한 우리의 상식에 찬물을 끼얹는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상식과 관념에 기초해서 ‘반드시 아파트여야 한다’는 명령에 막연히 동의해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동의의 배후에서 기업과 권력은 수많은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이윤을 확장하고 동시에 사회 계층화를 수행했다. 이른바 한국 중산층은 돈을 지불하면서 아파트 가치상승에 따른 부대 이익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정책에 공모했던 셈이다.

저자의 분석은 경제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고 중산층 아파트 주민들의 미학적 관념과 서구적 근대에 대한 막연한 오해에 기초해 세워진 아파트의 일상까지 파고들어간다. 그에 따르면 아파트 난방방식은 온돌의 완성이지 서구적인 것이 아니고, 그 안의 생활방식도 지극히 한국적이다. 가령 베란다를 장독 등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한옥의 저장방식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따뜻하고 현대적인 반면 주택은 춥고 낡았다는 편견이 작동하고 있다. 이것은 도시공간과 주거지역이 미시적 일상 속에서 사회계층화의 틀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비교도시론의 관점에서 한국과 프랑스 아파트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은 그런 점을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낙후지역인 프랑스의 아파트가 2005년 사회적 무관심에 항의하는 일련의 테러의 무대가 된 점은 중상층의 생활환경을 위해 아파트로 몰리는 한국과 지극히 대조적이다. 한국의 아파트 사랑은 주택과 아파트의 차이 자체보다는 차이의 관념의 영향이 더 크다. 아파트에 대한 상투적 이해와 관념들은 편향된 주거정책에 제동을 걸지 못했으며, 그 결과 정책적 실패의 결과까지 국민이 채무로 고스란히 떠맡아야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가계부채의 뇌관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온갖 정책을 쏟아내지만 큰 효과가 없다. 게다가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니, 아파트에 대한 국민적 스트레스는 급증하고 있다고 하겠다. 여고괴담과 같은 아파트 괴담이 나올지도 모른다. 와우아파트는 논외로 치더라도 1970년대 ‘주택 건설 180일 작전’이라는 군대식 구호 하에 실제로 잠실에 아파트 단지가 180일 만에 조성되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충격적’인 이 모든 이야기는 지나간 것 같지만, 지금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질주해온, 과속 개발시대의 기념비라 할 아파트에 살고 있다. 대표적 주거공간으로서의 아파트의 위상을 재고하는 일은 과연 늦은 것일까.

 

이창남 서평위원/한양대·비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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