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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행복
교수의 행복
  • 교수신문
  • 승인 2014.04.1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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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돈 버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수학, 그중에서도 금융공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의례히 받게 되는 질문이다. 아마도 수학교수였다가 월가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며 20여 년간 연평균 30%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2007년 한 해에만 3조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던 제임스 사이먼스와 같은 사람을 연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만일 어떤 대학교에 카지노학과가 있다면 그 학과에서는 카지노에서 돈을 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카지노를 운영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이다. 금융공학도 마찬가지다. 돈을 버는 방법 보다는 금융산업의 메커니즘, 금융상품의 개발, 가치평가, 운용, 위험관리 등이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사람들은 투자를 할 때 누구나 수익률을 첫 번째로 고려한다. 수익률이 높다고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수익률 다음에는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바로 위험이다. 그러나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위험을 어떻게 파악하고 측정해야 할지 몰라서 무시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의 몇 년 후 삶의 모습을 추적해보면 대부분 로또에 당첨되기 전보다 더 불행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일확천금을 했다고 장기적으로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로또가 당첨돼 생기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위험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주변에서의 사기성 접근, 새로운 사업구상에서 생기는 위험, 식구들 간의 갈등, 낭비벽, 우월감 등등 이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위험이다.

이른바 잘나가는 그룹에 비해 연봉이 상대적으로 적은 교수들도 상대적 빈곤감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에 투자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게 되고, 위험을 간과하고 투자하여 손실을 보기도 한다.상대적 빈곤감이 있으면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에 투자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게 된다. 금융공학을 전공하는 필자의 경우만 하더라도, 석사를 마친 20대 후반의 제자들이 취업을 한 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필자보다도 많은 월급을 받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한다. 모임에서 술 한 잔 하고 나와서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거나 택시를 찾을 때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잘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은 회의감도 느끼게 된다.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위험이라는 것을 잘 파악해보면 그리 우울해질 일도 아니다.

금융기관에서 자산을 운용하는 트레이더의 경우 높은 수익을 올렸다고 무조건 높은 평가를 받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위험한 곳에 투자했는지도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된다. 가격의 변동이 심한 곳에 투자한 경우는 한번 수익이 높았다 하더라도 다음번에는 손실이 클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위험이 큰 곳에 투자를 한 경우는 성과가 실제보다 평가절하 된다. 즉, 투자대상의 수익이 정기예금과 같은 무위험이자율을 얼마나 초과하는지 구하고, 위험의 양을 측정한 후, 그 초과된 값을 위험으로 나눠 평가한다.

위험의 크기가 분모에 들어가기 때문에 만일 교수의 위험이 대기업 임원 위험의 1/4 보다 적다면 2천만원의 월급을 받는 대기업 임원보다 월급이 500만원인 교수가 더 부자라고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위험의 원인이 되는 직장의 안정성, 지속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상황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금융공학을 전공하며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후 필자는 부자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예전과 달리 대학환경이 변해 이제는 교수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은 시대가 도래 했다. 특히 진리탐구와 학생들에게의 지식전달을 천직으로 삼았던 순수학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논문의 양, 연구비 수혜액, 학생 취업률,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학생들의 수 등 학과를 평가하는 어떤 항목을 보더라도 순수학문 분야에 불리하게 돼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학생들의 학업만족도는 이러한 정량지표와 정반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다이어트는 몸에 붙은 지방을 골고루 제거해 균형 잡힌 몸을 만드는 것이 핵심인데 자칫 발목이하를 잘라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 학창시절부터 꿈꿔왔던 상아탑의 모습이 지나치게 변질돼버리는 것은 아닌지 교수들은 우울하고 불안하다.

꽃샘추위로 다시 쌀쌀해진 캠퍼스를 거닐면서 삶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돌이켜본다. 그리고 그 목표가 행복하게 사는 거였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나는 지금 행복한 교수일까.
며칠 전, 지난 학기에 석사를 마친 제자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학부를 마칠 때 쯤,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어 대학원을 진학하기에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며 상담을 해왔던 제자다. 필자가 ‘그럴수록 전문성을 더 키워야지’ 하면서 대학원을 적극 권해 석사과정을 마치게 된 학생이었다. 사실 학생에게 단호히 말은 했어도 졸업하고 정말 사회로 잘 진출할 수 있을지 늘 걱정스러웠다. “저 최종면접에서 합격했어요.”
굳이 취업률이라는 잣대로 상아탑을 줄 세우지 않아도, 교수로서의 보람은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반가운, 병아리에서 자라나 드디어 이 험난한 사회에 안착했다는 제자의 소식이다. 구조조정을 한다고 대학이 술렁거리고 교수라는 직업의 위험도 많이 높아졌지만, 이러한 제자들의 소식이 있어 그래도 아직은 교수는 해볼 만한 직업이다. 아직까지는 행복하다.

□ 다음호 필자는 홍은주 여성경제학회 회장(한양사이버대 교수)입니다.

 

전인태 가톨릭대 수학과
필자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한수학회 부회장, 글로벌금융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계간지 <문학시대>를 통해 시부문 신인상를 받고 등단한 바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금융공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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