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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 교양교육에 ‘블렌디드 러닝’ 첫 도입
세종대, 교양교육에 ‘블렌디드 러닝’ 첫 도입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4.03.31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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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ㆍ오프 결합…강의실에선 ‘토론ㆍ발표’만

세종대 1학년인 김 군은 대학에서 새로운 수업을 만났다. 1학년 필수 기초교양 과목인 ‘서양철학 : 쟁점과 토론’. 철학 수업이라 어렵고 딱딱한 개념, 플라톤ㆍ칸트 같은 유명 철학자 이름만 나올 줄 알았다.

3월초 첫 개강 수업 때 설명을 들어 보니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대학다운 수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반에 30명의 학생이 들어 왔다. 3명씩 조를 짰다. 모두 모르는 친구들이다. 담당 교수가 임의대로 조 편성을 했다. 10개 조가 나왔고, 한 학기 동안 조별 토론과 발표 중심으로 수업을 한단다.

3월말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1학기 16주 동안 총 5개 주제를 놓고 서양철학을 배운다. 행복한 삶은 윤리적인가, 진리란 해석의 문제인가, 인간은 존엄한 존재인가, 사회정의: 자유인가 평등인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무엇인가.

각 주제별로 2주에 걸쳐 ‘4단계 수업’으로 진행된다. 강의실(오프라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20~25분짜리 온라인 강의를 듣고 참가해야 한다. 온라인 강의는 PC는 물론이고 스마트폰, 태블릿PC로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강의를 듣고 ‘강의 소감문’을 제출해야 한다. 정해진 양식에 따라 쓰면 된다. 한 학기 동안 5개 주제를 다루니까 강의 소감문은 다섯 번을 써야 한다. 75분 동안 진행하는 강의실 수업에선 강의 소감문을 바탕으로 주제와 관련한 쟁점을 찾는다. 이 수업의 교재로 쓰이는 워크북에 있는 ‘학습노트’에 쟁점을 정리한다.

2주째 온라인 강의에선 쟁점에 대한 철학이론을 듣는다. 좀 어려워서 두 번 반복해서 봤다. 더 골치가 아픈 건 두 번째 온라인 강의를 보고 조별 ‘토론 전략서’를 쓰는 일이다. 자기 입장을 논증적으로 구성하고 예상 반론에 대한 답변과 상대방에 대한 질문도 만들어야 한다. 강의실에서 한 주제를 놓고 두 개 조가 단상에서 찬ㆍ반 토론을 벌인다. 조별로 한 학기에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토론을 마치면 ‘성찰 저널’을 쓴다. 조별 토론에 적극 참여했는지 등 자기 점검표와 조별 토론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조별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등을 기록해야 한다. 교수에게 제출하고 평가를 받기 때문에 정성껏 쓴다.
한 주제와 관련한 수업은 모두 마쳤다. 그런데 워크북(교재)에 ‘고전 읽기’ 코너가 있다. 주제와 관련한 핵심 요약 고전 텍스트를 읽고 주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중요한 개념을 파악하고 해당 철학자의 중요 입장도 파악할 수 있다. 더 읽을거리도 알려 준다. 이렇게 한 주제에 대한 학습이 마무리 됐다. 앞으로 네 개 주제가 더 남았다.

세종대 교양학부가 교양기초과정에 ‘온라인 강의+오프라인 토론’을 결합한 ‘블렌디드 러닝’(혼합 학습)을 올해 1학기부터 전면적으로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교양과정에 블렌디드 러닝을 전면 도입해 시행하는 것은 세종대가 처음이다. 1학년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필수교양 과목인 ‘서양철학 : 쟁점과 토론’, ‘문제해결을 위한 글쓰기와 발표’, ‘교양영어’를 블렌디드 러닝으로 진행한다. ‘서양철학’이 일상의 문제와 직결되는 쟁점중심의 토론수업을 지향한다면, ‘문제해결을 위한 글쓰기와 발표’는 글쓰기와 발표에 문제중심학습법(PBL)을 새롭게 접목시킨 교과목이다.

가장 공을 들인 수업은 ‘서양철학’. 교육방식 뿐 아니라 교육내용, 교재까지 모두 새롭게 준비했다. 블렌디드 러닝을 위해 철학 전공 초빙교수 5명도 새로 뽑았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이태하 세종대 교양학부장(56세, 서양철학ㆍ사진)은 물론, 교양학부 정연재 교수 등 6명의 교수들이 머리를 맞댔다.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토론을 결합한 '블렌디드 러닝' 도입을 이끈 이태하 세종대 교양학부장(사진). 세종대의 블렌디드 러닝은 최근 새로운 고등교육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온라인 대중공개강의'(MOOC)에 대항하는 하나의 대책이기도 하다. 이 학부장은 "토론, 발표, 협업 중심의 수업을 강화하는 것이 오프라인 대학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블릿 피시에 그의 온라인 강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김봉억 기자

온라인 강의는 이태하 교양학부장이 맡았다. 47개 분반으로 나눠 이뤄지는 오프라인 토론ㆍ발표 수업은 교수자들의 ‘팀워크’가 관건이었다. 이태하 교양학부장은 토론ㆍ발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들에게 강의실에선 절대 철학자 이름을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교수가 철학 개념과 지식을 위주로 얘기하면 학생들은 입을 닫는다는 이유였다. 교수는 조별 토론의 리더이자 협업자라고 강조했다. 16주 동안 진행되는 온라인ㆍ오프라인 수업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기 위해 매주 수업마다의 시간계획을 만들고 토론ㆍ발표 활성화 방법과 강조할 내용까지 담은 ‘수업 지침서’를 따로 만들었다.

이태하 교양학부장은 “1학년 교양수업에서 철학은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게 목표”라며 “생각하는 힘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서양철학’ 수업은 토론이 핵심이다. 조별 토론과 발표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람들과 협업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세종대의 블렌디드 러닝은 최근 새로운 고등교육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온라인 대중공개강의’(MOOC)에 대항하는 하나의 대책이기도 하다. 이태하 교양학부장은 “MOOC를 보면, 모든 대학이 사이버대학으로 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프라인 대학만의 정체성과 가치를 적극 찾아야 한다”면서 “토론ㆍ발표ㆍ협업 중심의 수업을 강화하는 것이 오프라인 대학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대의 블렌디드 러닝은 지난 6년간의 교양교육 실험과 시행착오의 결과이기도 하다. 지난 2008년부터 4년 동안 ‘사회와 가치’라는 이름으로 철학 수업을 해 왔는데, 주제별 이슈를 중심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해 왔다. 2012년부터 2년 동안은 ‘온라인 강의’만으로 진행도 해봤다. 온라인 강의는 학내 강의공간 문제 해소, 스마트 교육의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100% 온라인 강의는 평가를 제대로 하기 어렵고, 철학 수업에 걸맞은 ‘토론’이 부재했으며, 학생들에게 학습동기를 부여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종대 교양학부가 블렌디드 러닝을 전면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구 세종대 총장의 지원과 의지가 큰 힘이 됐다. 지난 2012년 7월 취임한 신구 세종대 총장은 학생들의 취업문제 해결을 1순위 공약으로 내세웠다. 신구 총장은 “취업 경쟁력의 핵심은 지식보다 인성과 지혜”라고 강조했다. 올바른 인성은 팀워크에서 나오고 배려와 협동은 취업경쟁력의 핵심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었다. 인문학과 과학의 결합,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세종대는 교양과정의 개편을 통해 ‘취업률’ 향상을 위한 답을 찾아 낸 셈이다.

세종대 교양학부의 ‘블렌디드 러닝’은 이렇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교육방식의 변화도 새롭지만, ‘철학’이 교육혁신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더 시사적이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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