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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동향] 물리학의 난제, 그리고 두 거장을 둘러싼 해프닝
[과학계 동향] 물리학의 난제, 그리고 두 거장을 둘러싼 해프닝
  • 교수신문
  • 승인 2002.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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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5 10:44:37
최근 현존 물리학계 두 거장의 감정싸움이 언론에 보도돼 화제다. 공격을 시작했다고 보도된 이는 입자물리학계의 거장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명예교수. 1964년 그가 존재할 것이라 예언한 ‘힉스 입자’는 현재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물리학자들은 힉스 입자의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예언한 입자를 ‘힉스’라고 부르길 원치않을 만큼 겸손하다고 알려진 힉스 교수의 비판을 받은 이는 바로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였다.

"유명세 누리지 마라"·"개인적 비판은 사절"

지난달 15일,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영국 물리학자 폴 디랙(Paul Dirac)에 관한 연극 공연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힉스 교수가 호킹 교수를 비난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9월 2일 영국의 스코트먼(The Scotman)지에 보도됐다.

이 신문에 따르면 힉스 교수는 “그(스티븐 호킹)를 토론에 참여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발표만 하고 떠나버린다. 그는 명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얻기 힘든 신뢰를 받고 있다”라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호킹 교수는 “힉스 교수의 말에 깊은 감정이 있는 것 같아 놀랐다. 개인적인 비평이 아니라 과학적 논제에 대한 토론을 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당시 힉스 교수의 발언과 호킹 교수의 대응은 다음날 인디펜던트, 가디언 등 영국 유력 일간지에 재인용됨으로써 물리학계 두 거장의 감정싸움은 널리 알려졌다. 특히 인디펜턴트 지는 호킹 교수에게 부정적인 몇몇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아울러 전했다.

스코트먼 지의 분석에 따르면 힉스와 호킹, 두 거장의 미묘한 감정싸움은 바로 호킹이 미국 미시건대의 고든 케인 교수와의 내기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쪽에 1백 달러를 걸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실험에서 많은 물리학자들의 기대와 달리 힉스 입자는 발견되지 않았고, 호킹은 내기에서 이겼다. 호킹은 “힉스 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돈을 건 게 아니다. 대형전자-양전자 가속기(LEP)에서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며 힉스 입자는 보이지 않거나 검출불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1967년 제창된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에서는 각각 6가지의 쿼크 입자와 경입자가 물질의 기본 구성요소이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4종류의 매개입자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물질의 기본적 특징 중 하나인 질량 형성의 문제는 ‘힉스 입자’의 도입으로 해결하고 있다. 즉 힉스 입자를 통해 모든 입자들은 질량을 부여받게 된다는 것이 표준 모형의 중요한 예측 중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자 레온 레더만 교수 등은 힉스 입자를 ‘신의 입자’로까지 부를 정도이다.

하지만 만약 힉스 입자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은 최종적인 검증과정에서 좌절할 수도 있다. 수 조원의 자금을 투입한 거대 입자가속기에서 많은 물리학자들이 힉스 입자의 발견을 고대하는 것도 지난 수 십년간 성과를 축적해온 유력한 이론이 한 발 더 전진해 나가길 바라기 때문이다.

입자를 ‘예측’하고 이를 ‘발견’하는 것은 물리학의 역사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서 예측된 입자를 둘러싼 논쟁 또한 많았다. 상대성이론과 함께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양자역학을 건설한 거장들인 물리학자 보어와 파울리도 1930년대 초 한 입자의 존재 유무를 두고 크게 싸웠다. 결국 파울리가 ‘관측하기 매우 어려운 입자’라고 예측한 ‘중성미자’(neutrino)의 존재는 그후 30여 년이 지난 1965년 입증됐다.

이번 호킹과 힉스의 미묘한 대립 또한 단순한 감정 싸움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힉스 교수는 지난 5일 스코트먼 지에 투고한 반론글에서 “호킹이 음성합성장치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통상 있는 난상토론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한 말을 언론에서 맥락에 맞지 않게 보도했으며, 호킹의 명성을 비난한 것도 아니었다”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번 사건은 다분히 호킹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을 또 한번 보여준 해프닝으로 보인다.

남아있는 흥미진진한 문제들

그러나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힉스 교수가 언뜻 내비친 ‘특수한 지위를 가진 과학자’로서의 호킹과 이에 대한 과학자 사회 내부의 평가 문제이다. 인디펜던트 지는 여러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더했는데, 특히 “호킹 교수를 비난하는 것은 다이애너 비를 비난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그럴 수가 없다”는 한 과학자의 표현은 인상적이다.

호킹이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노벨상 권위의 문제로 비약시킬 정도인 호의적인 언론의 태도와 과학계 내부의 호킹에 대한 평가가 앞으로 어떻게 갈릴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화제는 호킹을 둘러싸고 계속해 생길 것이라 예상된다.

이제 호킹과 힉스 간의 논쟁은 2006년 이후 완공될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가속기(LHC)에서 힉스 입자가 발견될 것인지에 따라, 또는 그 전에 미국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에서 발견될 것인지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다. 물리학 이론의 향방을 둘러싼 미묘한 감정싸움이 아닌 본격적인 논쟁이 앞으로 기대된다.
안성우 객원 기자 swahn@kyosu.net
□ 교수신문의 과학면은 과학객원기자의 참여로 이뤄집니다. 안성우 객원기자는 학부에서는 분자생물학을, 대학원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위촉연구원으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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