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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를 아십니까
연구자 생활정보지 <바람의 연구자>를 아십니까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4.03.24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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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하게’ 내민 대학원 동료의 편지…“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밤샘을 하고, 아침을 거르고, 세미나 발제를 하고, 과외 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빨래를 하고, 싸움을 하고, 술을 마시고 울고불고 하는 것도 모두 연구자의 생활이다. 거기에는 기쁨, 슬픔, 뿌듯함, 외로움과 같은 감정들이 나뉠 수 없이 아롱진다. 그렇다면 우리, 그 ‘연구’만이 아니라 연구자의 생활과 삶을 공유하자.”

요즘 인문학 신진세대들에게 조용히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연구자 생활정보지’가 있다. 매월 초, 월간으로 나오는 <바람의 연구자>. A4 크기 네 개 면의 이 조그마한 공간에는 대학원 석ㆍ박사과정에 있는 연구자의 일상이 담겨 있다. 거창한 담론보다는 연구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사소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실린다.

지난해 9월1일 창간한 <바람의 연구자> 표지.
<바람의 연구자>는 지난해 8월 1일 창간 준비호에 이어 9월 1일 창간호가 나왔다. 최근 3월5일자 6호까지 발행이 됐다. 1면에는 매월 특집 주제를 큼지막하게 알려준다. 그동안 연구자의 현장ㆍ건강법ㆍ수집가ㆍ공강시간ㆍ연애ㆍ신년계획을 특집으로 다뤘고, 최근호에선 연구자의 봄을 전했다. 특집 주제와 어울리는 간단한 설문조사 코너 ‘응답하라’도 함께 실린다. 연구자의 건강법을 다룰 때 ‘응답하라, 매식하는 연구자’ 설문에선 하루에 밥은 몇 끼 먹는가? 언제 먹나? 특별한 날엔 뭘 먹는가?를 묻고, 3~4명이 간단히 답변을 한다. ‘연구자의 수집가’ 특집에선 한 달에 몇 권을 사고 몇 권을 읽는가? 사놓고 읽지 않은 책 중 가장 비싼 것은? 짜증나는 인간에게 주고 싶은 책은? 이렇게 묻고 답변을 받는 식이다.

1면 메인 자리에는 편집위원들의 짧은 ‘대화’를 통해 이번호의 특징과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다. 채팅 대화창을 보는 것 같다. 2~3면에는 특집 주제에 맞는 3~4개의 외부 기고글이 실린다. ‘자랑해도 괜찮아’라는 작은 꼭지도 있다. 자랑하기 코너다. 마감을 앞둔 연구자의 하소연을 담은 ‘마감징징:하소연합시다’도 재밌다. 서평 코너도 있는데 신간과 구간을 다루는 ‘바람의 리뷰를 들어라’가 있다. 정색하고 진지하거나 주례사 비평은 없다. 철저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편하게 리뷰를 한다.

<바람의 연구자>를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이다. 사진 왼쪽부터 신현아, 장수희, 고지혜 씨다.
<바람의 연구자>는 세 명의 여성 편집위원이 만든다. 현대문학을 전공한 신진세대들이다. 동아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장수희 씨(34세), 같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 신현아 씨(26세), 그리고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고지혜 씨(32세)다. 이들은 <바람의 연구자>에서 별칭 같은 필명을 쓴다. 화살맞은 아킬레우스, 불꽃남자 정대만, 딴짓쟁이 Go. <바람의 연구자>에 실리는 모든 글은 별칭을 써서 익명성을 보장한다. “솔직하고 편하게 자기 얘기를 하자”는 이유다.

그런데 왜 ‘바람의’ 연구자일까. “매체 이름을 정할 때 생각나는 대로 막 던져봤거든요. ‘연구, 정말 좋아하세요?’ ‘백만 번을 투고해 온 논문이다’ ‘슬램연구’. 그냥 막 던지는데 전부 별로래요. 제가 어릴 적에『바람의 검심』이라는 일본 사무라이 만화를 좋아했는데, 그 생각이 나서 ‘바람의 연구자’ 어떠냐고 하니까 오~ 그거 멋지다하고 바로 합의를 봤죠(웃음).”(신현아)

<바람의 연구자> 편집 목표는 ‘다정함’이다. 철저히 ‘지면’으로만 배부한다. 지난해 8월 창간 준비호가 나간 이후 주변에 있는 지인들이 물었다. SNS시대에 왜 종이로 돌리나요? “이렇게 후딱후딱 퍼지는 시대에 아날로그야말로 급진인걸요.” “대충 막 퍼지는 게 싫어서요”라고 답했다. 지도교수 욕도 하고 그러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건 아니고, 저희는 다정함이 목표입니다.”

항상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었다. “자조나 자학은 <바람의 연구자>말고도 매일매일 경험할 수 있다고요. 그러니 여기는 다정한 공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정함을 경계하시거나 비웃는 시니컬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린 세상이 얼매나 퍽퍽한지 알잖아유. 양팔을 벌리고 껴안아주기로 해요.”(창간호에서)

이들은 <바람의 연구자>에서 어떤 내용을 담으려고 할까. “처음엔 정말 생활정보, 학교 앞의 좋은 카페, 인쇄소, 이런 것들을 추천해야 하나 생각도 했는데, 연구자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나를 생각하게 됐어요. 마감 전의 연구자들은 어떨까, 연애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어쩐지 나 혼자만이 이렇게 힘들게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들이 연구자의 생활과 삶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렇다. “연구자라고 하면, 거창하거나 이론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잖아요. 일상에서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그래야 할 것 같고(웃음). 그런데 우리는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연구자의 정치성 말고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많잖아요?”

독자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연구자들의 신세와 형편에 대해 과장하지도 말고, 무턱대고 방관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의 일과 삶에 대해 서로 관심을 보여주는 많은 눈길과 손길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기로 해요. 그 다정함을 붙잡으세요.”

<바람의 연구자>는 인문학 신진세대들의 자생 모임, 편집위원 지인들의 입소문으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편집위원이 있는 서울과 부산에서 주로 배부된다. 지금은 300부 정도 인쇄한다. 서울에는 푸른역사아카데미, 아트앤스터디, 민족문학사연구소, 인문학협동조합, 고려대 등에서 볼 수 있고, 부산에선 동아대 곳곳과 지인들에게 우편 발송도 한다. 독자들은 대부분 대학원 석ㆍ박사과정에 있거나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바람의 연구자>는 매월 초, 월간으로 발행한다. 지난 3월5일자 6호에서는 '연구자의 봄'을 특집으로 다뤘다.
<바람의 연구자> 제작과정이 궁금하다. 기획회의는 카카오톡으로 한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로 의견을 교환한다. “이번 호 주제는 뭐 할까요?” “아, 지금 마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죽을 것 같습니다. 마감으로 주제를 정해보면 어떨까요?” “으음 너무 포괄적이에요” “그럼 좀 더 좁혀서 연구자의 마감습관으로 할까요?” “좋아요!” 이런 식이다. 그리고 편집위원 각 자가 청탁하고 싶은 사람을 한 명 정도 정해서 청탁한다. 그리고 원고가 다 모이면 월말에 다시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에 모여 편집에 들어간다. 한글 워드에서 편집해 PDF로 전환한 뒤 편집위원 세 명이 PDF 파일을 인쇄해 배포한다. “일단 지면으로 전해진다는 것만 전제되면 그냥 곳곳에서 알아서 배포한다.”

<바람의 연구자>는 구독료가 없다. 편집위원 세 명의 사비로 만든다. 편집위원 각자 매월 3~4만원씩 사비를 들인다고 한다. “정말 가내수공업처럼 최소 비용으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으로 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지면’으로 직접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웹상에 게재되는 것들은 백스페이스 한 번 누르면 그냥 시야에 없는 글이 돼버리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우리가 이렇게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잡지니까 되도록 많은 사람이 소중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반드시 지면으로 냈어요. 언제나 한 편에 놓여 있는 물질성이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바람의 연구자> 편집위원들은 지난 2월 신년호를 내면서 앞으로 다뤘으면 하는 특집 의견을 독자들에게 물어 봤다. ‘연구자와 지도교수’에 대해 다뤄달라는 요청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이외에 연구자의 여행, 연구자의 경제생활, 연구자의 취미생활ㆍ꿈ㆍ술자리ㆍ휴일ㆍ트라우마 등의 의견이 나왔다.

앞으로 제작 계획을 물었다. “기본적으로 내용은 언제나 사소한 이야기들, 내 주위 연구자들의 울고 웃는 이야기들이면 좋겠어요.” 지난해 8월 창간 준비호 첫 머리글이 떠올랐다.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너에게…오늘도 편지를 띄울게. 어딘가에서 훌쩍훌쩍하고 있을 바람의 연구자들을 위해서.”

오는 4월 초에 나오는 <바람의 연구자> 7호 특집 주제는 연구자의 습관이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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