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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50대 한국남성 어디에 서 있는가
[기획특집] 50대 한국남성 어디에 서 있는가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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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50대가 선 자리, 가는 길
2002년 한국사회의 중추인 50대 남성들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안으로는 중년 이후 갑작스레 밀려오는 정체성의 혼란이, 밖으로는 명예퇴직과 고용불안이 넥타이를 죈다. 세상은 눈이 핑핑 돌게 빨리 돌아가고, 그들이 변화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두운 현대사와 천박한 자본주의 사이를 헤쳐온 50대 남성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그들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본다.

포효하라, 상처입은 근대의 아들이여

50대 남성에 대해 떠오르는 몇몇 생각들. 정치적으로는 보수, 경제적으로는 안락함, 도덕적으로는 이중성, 사회문제에는 무관심, 자녀교육에서는 완고함. 덧붙여 性的으로는 무기력과 보신음식 사이를 헤매는 음습한 욕망이 함께 떠오른다.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이 앞서고, 사회정의보다는 ‘일신의 영달’이 가까워보인다. 부의 재분배보다는 탈세와 투기가 익숙하게 느껴지고, 젊음의 패기와 열정은 사그라든 것처럼 보인다.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50대의 모습은 대개 이렇다.

50대는 혼란스럽다·스트레스에 짓눌린다

그러나 50대는 억울하다. 그들은 새마을 운동과 함께 ‘조국 근대화’를 이뤘고, 지상과제였던 배고픔에서 자식들을 벗어나게 했다. 사회적으로 50대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이고 한국사회의 이끌어가는 이른 바 ‘지도층’ 세대이다. 2002년 현재 국회의원 2백72명 가운데 50대는 95명으로 35%, 전체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 주간지에서 뽑은 한국의 ‘1백대 부호’에는 50대가 36명이나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대는 지금 혼란스럽다. 그들의 부모세대인 7, 80대는 여전히 전통 가치를 지키고 있고 그들의 자녀인 2, 30대는 ‘N세대’라는 이름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양식과 소비행태를 보인다. 50대는 기존의 전통 가치를 중시하라는 교육을 받은 동시에, 아파트와 경양식과 백화점 쇼핑이 익숙한 중간 세대이다. 50대가 몸으로 부딪는 세대간 마찰과 단절은 상상하기 힘들 지경이다.

박정수 연세대 외래교수(신경정신과)는 50대의 삶을 ‘스트레스’라는 한 마디로 표현한다. “50대는 전통적인 사회규범에 따라 가족의 생계와 자녀 교육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사회생활에서는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치받는 샌드위치 신세이고, 컴퓨터로 상징되는 정보화 사회는 이들을 더욱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즉 이들은 돈, 고용불안, 가족생계, 자녀교육, 부모문제 등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하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50대를 짓누르는 것은 바깥 상황뿐만 아니다. 그들을 짓누르는 내면의 소리는 바로 책임감이다. 윤가현 전남대 교수(심리학)는 “50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가장 강한 때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한다.

50대는 보수적이다·안정지향적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론만으로도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들이, 50대 때는 강한 책임감 때문에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행동이 느리고, 그래서 우유부단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70, 80 노인들은 통일에 대해서 ‘한민족인데 그냥 하면 되지 뭐’라고 간단하게 생각한다. 젊은이들도 그렇다. 하지만 50대는 통일 과정의 어려움, 통일 이후에 드는 사회적 비용, 파장 등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에게는 신중함인데, 다른 세대는 보수적이라고 욕한다. 억울하다.

재테크와 소비생활에서도 50대는 지극히 안전지향적이다. 이들은 50년대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최악의 빈곤과 90년대의 넘치는 풍요를 동시에 경험한 전환세대이다. 김미조 제일기획 전략마케팅연구소 대리가 발표한 ‘중장년층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광고정보, 2000년 4월호)에 따르면 중년기라는 상황은 “질병, 실직, 은퇴, 노인기로의 진입 등 인생의 전환기적 징후를 맞으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도 현재의 삶의 질을 최대한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시기”이다. 50대는 노년을 대비하고 자녀의 독립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급격한 변화를 싫어하고, 위험한 투자나 레저 활동에도 그다지 호감을 나타내지 않고, 특히 금융 관련에서는 안정적 투자 성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시절이 각인된 50대에게 소비는 절제해야 마땅한 미덕이고, 믿을 것은 저축뿐이다. 노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스포츠에서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50대는 상처받기 쉽다·쉬 아물지 않는다

IMF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특히 50대에게 내리친 구제금융 한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50대는 명예퇴직 1순위였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노후를 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퇴직 이후 50대에게 찾아오는 첫 마음은 허탈감이었다가 그 허탈감은 직장과 사회로 향한 분노로 바뀐다. 그러나 분노를 풀 수 있는 곳이 없고, 또 풀 줄을 모른다. 혼자 설 것, 혼자 견딜 것, 울지 말 것, 약한 모습 보이지 말 것, 어깨 늘어뜨리지 말 것 등을 평생 강요당해 온 50대 남성들은 총체적인 국가 위기 앞에서도 결국 화살을 자신에게 돌릴 수밖에 없다. 실직이 결코 자신의 잘못이 아닌 부정한 기업체 또는 판단 착오를 내린 정부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심한 경우 우울증까지 겪는다.

50대 실직에 대한 시각은 50대의 정서적 심리적인 충격에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적 자원 낭비’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시각으로 강조된다. 한 경제 신문의 사설처럼 “조기 은퇴와 퇴직이 많아지면서 고급 인력이 낭비되고 있고, 고급 인력의 상당 부분이 평생 실직자로 남게 되기 때문에 국가 전체에서 볼 때 엄청난 인적자원이 낭비되고 있다”는 냉혹한 진단은 상처 입은 50대에게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IMF 이후 서점가를 휩쓴 ‘아버지 기살리기 시리즈’ 역시 근본적인 치유는 되지 못한다.

내면으로 눈 돌리기·적극적으로 바깥 바라보기

50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 숨가쁜 질주를 잠시 멈추고 내면으로 잠시 침잠하는 시간이다. 열린 사고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완고한 자기 틀을 깨야 한다, 가부장적 사고를 털어라, 자녀와 가슴을 열고 대화하라 등등 세상이 50대에게 요구하는 것은 온통 어려운 것들뿐이다.

자기반성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은퇴 이후 삶이 두렵다면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몇 가지를 귀담아 들어도 좋을 듯 하다. 새로운 자격증에 도전해 볼 것, 즐겁게 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가질 것, 소일거리와 직업이 될 수 있는 기술을 익힐 것, 사회참여의 한 방법으로 자원봉사에 눈을 돌릴 것 등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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