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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여교수 할당제’놓고 고민하는 스웨덴 대학가
[초점] ‘여교수 할당제’놓고 고민하는 스웨덴 대학가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2.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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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5 09:51:43
최근 스웨덴 대학가는 한 대학 인사위원회 위원장의 이메일로 떠들썩하다. 그 내용이란, 능력이 떨어지는 여교수를 채용하기 위해 학문적으로 뛰어난 두 명의 남자 역사학자들의 기회를 잃게 만들었던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이메일은 언론에 누출됐고, 스웨덴 신문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이 사건은 더 많은 여교수들을 충원하려는 스웨덴 정부와 학계의 노력에 명분을 잃게 만들었으며, 스웨덴 대학들이 직면하고 있는 ‘좀더 많은 여성을 채용하되, 남성을 차별하지 말라’는 두 개의 상호 모순적인 과업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과업이란 이메일 누출로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으며, 여성교수 할당제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룬드대 총장 보엘 플로그렌은 결국 1순위로 인정받던 남성 역사학자 거너씨를 채용했다. 그러나 이메일의 필자이자 비판받고 있는 핵심인물인 학장 로프크로나씨는 완고하다. 그녀는 “남녀평등을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지난 60년 동안 남녀평등에 관한 정책들을 일궈 왔다. 그러나 남녀평등의 사회적 의제에 ‘지체현상’을 보이는 분야가 있다. 스웨덴 국립 고등교육원 지그프리트 프랑크 원장은 “대학과 산업 분야는 남성지배의 마지막 두 성역”이라고 말한다. 유럽 대학의 교수 자리는 남성지배의 경향이 강하다. 지난 1997년, 스웨덴의 여성 전임교수 비율은 정확히 유럽 평균인 11%였다. 핀란드가 18%로 가장 높고, 5%의 아일랜드가 가장 낮았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럽연합의 몇몇 국가들은 여교수의 수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스웨덴은 가장 급진적인 정책을 쓰고 있는데, 39개 공립대학과 3개 사립 기관에 신임 교수 가운데 여성의 비율에 관한 시기별 목표치를 정해놓고 있다.

스웨덴의 정책은 ‘공정경쟁’에 토대를 두고 있다. 고등교육원의 프랑크씨는 “이것은 정의의 문제”인 동시에 “고등교육 연구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밝힌다. 여교수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견해도 있다. 지난 25년 동안 대학원 학생 가운데 여성의 수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기다가 스웨덴 정부는 2008년까지 25%의 전임교원을 여성으로 채우려고 서두르고 있어 현재 스웨덴에서 여성을 고용하는 것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총장의 추진력으로 룬드대학은 정부의 목표치보다 높은 할당량을 정했다. 인문학부와 신학부에서 2001년부터 2005년 사이에 충원될 인원의 45%를 여성으로 뽑기로 했던 것이다. 지난 해, 신임교수 9명 가운데 5명이 여성 교수였다. 그러나 킴 쌀로몬 룬드대 역사학과장은 “목표달성을 위해 능력이 떨어지는 교수들을 채용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남성지배를 끝내려는 공동의 시도는 1990년대 중반, 스웨덴 교육과학부 장관 칼 탐으로부터 시작됐다. 협의가 필요함을 확신한 그는 31개 공립대학에 여교수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여자만을 위한’ 교수자리는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 2000년 룩셈부르크의 유럽법정은, 라이트 앤더슨이 남자라는 이유로 요테보리 대학의 교수직에서 불공정하게 거부당했다면서 소송한 사건에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 결정으로 여성 학자만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게 됐으며, 두 달 후 스웨덴 정부는 교수자리가 더 이상 여성들만을 위해 보장되지는 못하지만, 두 명의 지원자가 비슷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면, 대학 측은 ‘수가 적은 성’의 지원자를 고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학계가 남녀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맞닥뜨린 여러 복병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주목해볼 일이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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