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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건축과 영화는 서로 닮았다
「건축학개론」, 건축과 영화는 서로 닮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02.1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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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용기 안산대 교수의 인문적 시각에서 건축읽기


『건축, 인문의 집을 짓다』(한국문학사 刊)은 재미난 책이다. 건축을 통해 풍부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다들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떤 상상력을 발휘해야하는지는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양용기는 아주 쉽게 흰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듯 상상을 물질화했다. 미술사, 과학, 철학, 영화 등을 종횡무진하면서 그는 ‘인간을 위한 건축’을 역설한다. 그의 건축관을 잘 읽을 수 있는 이번 책에는 이런 구절이 눈에 띈다. “과거에 지어진 건물과 도시를 연구함으로써 현재의 건축을 설계하고 건축의 미래를 준비하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이는 건축이 공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다른 학문, 특히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인문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작용한다.” 이런 생각에서 저자는 건축과 인접학문을 조망하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그의 흥미로운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 「건축과 ‘영화’는 서로 닮았다: 「건축학개론」」을 소개한다.


‘아르누보’의 중심지인 독일 다름슈타드대학과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일을 하면서 독일에서 20대와 30대 초반을 보낸 양 교수는 독일, 미국, 요르단 등 세계 80여 곳에 그의 건축물을 세웠다. 대표적인 설계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쥬베일 국제학교’(1994), 리야드의 ‘셰단 센터’(1994), 안산대 ‘민들레 영토’(2005) 등을 들 수 있다. 지은 책으로는 『건축형태분석』, 『건축물에는 건축이 없다』 등이 있다.

추억의 매개체로서의 건축
모든 전공 학문에는 개론이라는 과목이 있다. 철학개론, 심리학개론 등등, 이는 말 그대로 한 학문의 개괄적인 이론을 배우는 과목이다. 깊이 있지도 않지만 얕지도 않고, 그 전공 학문에서 알아야 할 내용들을 일단 맛보기처럼 배우는 과목이다. 영화 「건축학개론」(2012, 감독 이용주)의 제목은 건축학도들에게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지만 다른 관객들에는 어떨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이 왜 ‘건축학개론’일까?

▲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한 주인공 서연의 제주도 집. ‘픽처 윈도’가 집과 자연(바다)의 시선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 한옥과 아파트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건축에 관한 학문에는 건축공학과 건축학이 있다. 자세히 설명하기는 조금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5년제라면 건축학 전공이다. 영화는 제주도 서연의 옛집을, 두 주인공 승민과 서연이 함께 다시 지어가는 동안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면서 현재의 감정들을 쌓아가는 과정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진행된다.


제주도 서연의 옛집인 벽돌집 같은 구조를 통틀어 組積式 건물이라 한다. 조적식 건물은 말 그대로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모던하지만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가 힘든 철근콘크리드 건물과 달리, 벽돌은 표현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를 반영할 수 있다. 이는 독일 표현주의 건축에서 벽돌이 많이 사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건축에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벽돌 질감의 표현 자체가 관객에게 전달되는 형태언어인 것이다.


건축설계는 초기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 수집된 정보들을 모아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건축설계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정리되지 않은 집이 등장하고, 15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치 조각을 맞추듯이, 건축 전문가는 전문가 입장에서, 의뢰인은 의뢰인 입장에서, 영화감독도 자신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정리되지 않은 집 안, 포장되지 않은 마당, 어릴 적 지내던 방 등이 건축설계를 하기 전 정리되지 않은 작업 요소를 의미하는 듯하다. 특히 두 주인공이 함께 시간을 보냈던 서촌의 한 빈집은 6·25전쟁 이후 우리의 도시 가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전원 속의 집들은 울이라는 테두리를 지나 마당을 거쳐 집 안으로 들어가지만, 사실상 시각적으로 개방된 상태를 보인다.

반면 도시의 집들은 대문을 사이에 두고 시각적·물리적으로 내부와 외부가 완벽하게 분리된 영역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中庭式’(도시형 전통한옥들은 대부분 마당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방과 대문들로 배치돼 있는데, 이렇게 건물 중앙 부분이 정원·공지 등으로 비워져 있는 구조를 말한다)과 같은 울을 갖고 작은 마당을 두어 공동의 영역으로 사용되던 과거의 주거 형태임을 잘 보여줬다.


영화 속 빈집은 제주도와 서울을 잇는 매개체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할도 수행한다. 이 한옥 빈집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되는데, 뒤이어 개포동의 어느 콘크리트 건물이 등장하면서 묘한 대비를 보인다. 저 멀리 많은 아파트가 보이는 장면까지 비치면서 앞으로 이 도시에서의 삶이 만만치 않음을 암시한다. 한옥의 이미지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보이는 반면, 콘크리트와 수많은 아파트는 다소 혼란스러움을 보여준다. 다만 그림에서 보듯 당신 건물에 옥상정원을 꾸릴만한 기술이 없었다는 게 옥에 티라고 할까?

영화와 함께 다시 태어난 건축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개조된 서연의 제주도 집을 보고, 특히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창문에서 사람들은 시원함을 느꼈을 것이다. 감독의 영화의 흐름에 따라 그 건물의 개조를 건축가 구승회와 함께 진행했다고 한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건물에 무엇으로 포인트를 줘야 할까 고민했다고 하는데, 커다란 창문은 단연 압권이었다.


우리 환경 속에서 창은 일반적으로 조각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는 밖의 시야도 늘 분해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 등장하는 창은 통으로 돼 있어 저 너머 바다를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영화 속 창문과 같이 바깥의 경치를 보기 위해 만든 큰 붙박이창을 전문용어로 ‘픽처 윈도(picture window)’라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처럼 수평으로 길게 서치하는 것은 사실 구조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에 지지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픽처 윈도는 내부와 외부의 차단, 방음, 단열효과 외에 바깥의 경치를 볼 수 있다는 창문의 또 다른 기능을 잘 수행한다.


또한 개조된 서연의 집 내부를 보면 창의 위치가 현관과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아주 좋은 배치다. 현관 옆에 큰 창문을 낸 것은 내부로 빛을 받아들여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황을 만드는 좋은 결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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