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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문화재,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테마] 문화재,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02.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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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3 01:34:31
미 대사관 아파트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덕수궁 옛터와 서울 정동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땅덩이는 지금 문화재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발굴 당시부터 졸속 논란이 끊이지 않던 풍납토성에는 재정 문제가 겹쳤고 경주에서는 ‘가짜 석굴암’ 공사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군부대 안 문화재 지표조사는 문제의 본질을 감추려는 사탕발림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몇 년 새에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부쩍 커졌지만, 전문가들은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에 관리와 보존이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재원 마련, 행정체계 정비 필요

늦어도 한참 늦은 감이 있지만, 문화재 관련 정책 세미나와 문화재청의 법안 마련이 잇따르고 있다. 물꼬를 튼 곳은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행정연구원으로, 지난 달 28일 ‘21세기 문화재정책 전망과 실천방안’이라는 주제로 정책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의 요지는 비교적 간단명료하다. 형식적인 차원에 머물러온 문화재 보존방안을 구체적으로 키우고 다듬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담당부처에게 힘과 돈을 실어줘야 한다는 이야기로 모아진다.

세미나에 참석한 하연섭 연세대 교수(행정학과)는 “정부가 해마다 5백억원씩 4년 동안 2천억원을 출연하고 문화재관람료와 문화유산복권(가칭) 등을 만들어 총 6천억원의 기금을 만들어 문화재 보존 관리를 위한 안정적인 재원을 조달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하 교수가 발표한 ‘문화재 보존관리기금 설치운영방안’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지정 문화재와 보수 건수, 출토 유물의 양에서 해마다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1980년 2천8백97건이던 문화재 지정 건수는 1990년에는 6천27건, 2000년에 7천7백39건으로 늘었고, 문화재 보수에 들어간 돈만 해도 1980년 90억원에서 1990년 3백70억원, 2000년에는 2천9백14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 교수는 “문화재 보존과 개발에 필요한 현실적 투입액은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정부예산은 투자 우선 순위가 지극히 낮고 그 절대액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예산의 정부예산대비 점유율이 2000년 이후 계속 증가추세인 것에 비해 문화재청 예산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것.

기조발제를 맡은 유홍준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은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고양시키고 외국인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일은 문화재정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이는 다분히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사실상 주무부서가 없다고 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 뒤 문화재의 보존부터 활용까지 일관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행정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직급을 상향조정하고 기구를 확대할 것, 문화재 증·개축 및 기념관 건립에 따른 환경·건축적 심의를 강화하는 것도 유 교수가 내놓은 발전안 가운데 하나다.

임승빈 순천대 교수(행정학) 또한 행정 체계의 강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각급 문화재 보존 행정 관리 체계를 맡은 모든 조직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네트워킹 조직을 통해 행정체계를 정비하고, 문화재청을 차관급 또는 독립된 조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문화재 해결책은 ‘돈’과 ‘힘’이라는 것인데, 행정연구소라는 연구기관이 갖는 성격상 지나치게 행정체계의 측면에서만 문화재에 접근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일관된 행정체계도 중요하지만, 관료문화 또한 분권화·다원화로 가는 시대에서 자칫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엿보인다. 문화재관람료를 걷는다든지, 복권을 만든다는 재원마련 방식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문화재 기본 계획, ‘기본’ 지킬 수 있나

이렇듯 문화재청의 ‘승격’과 역할 강화에 대한 학계의 진단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주무부서인 문화재청의 움직임 또한 바쁘다. 문화재청(청장 노태섭)은 지난 7일 ‘문화재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1961년 문화재관리국이 설치돼 중앙행정기관으로서 문화재 보존관리업무를 수행한 이래 처음으로 문화재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중장기계획을 마련했으니, 42년만의 일이다. 문화재청은 기본 계획을 만들게 된 이유로 “최근 보존관리 해야 할 문화재의 증가, 보존과 개발간의 갈등 심화, 그리고 주 5일 근무제 도입 등 국민의 여가시간 증가와 삶의 질 향상으로 국민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문화재 행정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문화재 보존관리 체제를 정착시켜 나가기 위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와 국민적 요구에 그만큼 다급했다는 뜻이다.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 해가 1999년이고, 지난 4월 ‘기본계획’(시안)을 마련했고, 올 9월에 비로소 관계부처 및 시·도 협의,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 각계의 다양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했다. 3년 동안 심층연구와 내부토론을 거친 셈이다.

이번 계획안은 중장기계획안으로, 2011년까지 10년 동안 추진할 정책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재 보존과 관리 및 활용에 관한 사업을 18가지 정책과제로 체계화하고, 각 과제에 대해 2011년까지 추진할 역점사업을 종합했다. 계획안의 기본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원형보존을 통한 문화정체성 확립’, ‘개발과 보존의 조화’, ‘문화재 향유권 신장’이다. 개발보다는 보존을, 직접 보고 느끼는 국민의 향유권을 중시한 목표라고 스스로 평하고 있다.

총 소요예산은 5조8천3백40억원으로 잡고 있다. 이 가운데 72.8%인 4조2천4백56억원은 국비로 충당하고 26%인 1조5천1백66억원은 지방세, 나머지 7백18억원(1.2%)은 정보화촉진기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돈 많이 들어가는 사업에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감안, 최소한의 필요한 역점사업 중심으로 구성하고 사업의 연속성 및 중요성 등을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긴급한 보존조치는 물론 가치가 있으면서도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해 사실상 예산지원이 되지 않는 문화재도 보살피려면 정부예산과 별도로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금을 반드시 설립해야 한다”며 문화재보존관리기금을 신설을 주장했다.

부족한 예산을 갖추고 일관된 행정체계를 갖춰나가야 한다는 것은 일단 학계와 정부 모두 합의된 사안이다. 문제는 어떻게 갖추고, 어떻게 조달하느냐이다. 또한 보존·관리와 활용 사이의 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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