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0:00 (금)
토크(TALK) 공부론을 제시하며
토크(TALK) 공부론을 제시하며
  • 김병희 서원대·광고홍보학과
  • 승인 2013.12.09 16: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천 릴레이 에세이

 

교수란 평생토록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이다. 즉, 직업이 공부하는 것이라는 말인데, 하지만 교수도 학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세상에 노는 것보다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떤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다보면 제법 쏠쏠한 재미가 붙어 여느 놀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울 때도 많지만, 승진이나 재임용을 위해 연구 논문을 ‘써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생들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오죽했으면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반어법이 나왔겠는가. 억지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면 먼저 공부에 임하는 자세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체험에서 우러난 ‘토크(TALK) 공부론’을 제시해본다.


공부를 잘 하려면 먼저 책상(Table)에 앉는 순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테이블이란 단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할 수 있다’(able)는 뜻이 숨어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할 때와 그냥 공부할 때는 엄청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대학 시절 문학을 공부했던 나는 대학원에서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통계학 때문에 막막해질 때가 많았다. 어렵게 보이던 논리실증주의(통계학)를 피해 돌아갈까도 많이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을 걸고 정면으로 승부한 결과 이제는 고급 통계까지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보고서나 논문 같은 글(Article)을 써서 결과물을 발표해야 한다. 논문의 체계에 맞게 기계적으로 쓰다보면 마른 나뭇등걸처럼 건조한 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게도 아티클에는 예술(art)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문장을 다듬을 때 조금만 색다르게 표현해도 글 전체가 달라진다. 어떤 논문에서는 변인(變因) 간의 상관관계나 인과관계만 기술하거나, 가설의 기각-채택 여부만을 제시하고 결론을 맺는 경우가 많다. 살은 없고 뼈대만 남은 앙상한 글이다. 연구 결과의 의미를 인문학적으로 조금만 색다르게 표현해도 글 전체가 확 달라진다.


공부하는 과정에서는 때때로 배우고 익히는 학습(Learning)이 중요하다. 공부하는 도중에 어떤 난관에 부닥치면 왜 이 짓을 하나 싶어 이런저런 회의감이 몰려올 때가 많다. 예컨대, 직장에 다니면서 뒤늦게 대학원에 다니는 만학도의 경우 “무슨 영화를 보겠다며 이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을 터이다. 학습이라는 영어 단어를 대강 훑어봐도 이익(earning)으로 꽉 차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공부를 마치고 나면 반드시 또 다른 기회나 이익이 돌아오지 않겠는가? 어느 단계의 공부를 마친 사람에게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자기만의 지식(Knowledge)을 창출해야 한다. 어떤 분야에 대해 탐구한 다음 결과를 발표할 때는 남의 학설만 지루하게 인용하지 말고, 결론에 이르러 자기가 발견한 사실이나 새로운 생각을 나타내야 마땅하다. 지식이라는 단어 끝에는 뾰족함(edge)이 뱀이 똬리 틀 듯 웅크리고 숨어있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자기만의 날카로운 생각의 엣지를 가져야 한다. 새롭게 발표하는 학술 논문이란 대체로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후속 연구의 성격을 띠지만, 새로운 지식이나 뾰족함이 없다면 복제품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공자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강조했다. 모름지기 자신의 인격 수양과 자아실현을 목적으로 해야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오학론(五學論: 성리지학, 훈고지학, 문장지학, 과거지학, 술수지학)을 제시하며, 공부를 할 때는 이론과 실제의 통합적 관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들어서는 김영민 교수가 활을 당기되 쏘지 않고 숨을 고르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인이불발(引而不發)의 개념을 제시하며, 사람을 가르치되 그 방법만 가르치고 스스로 핵심을 터득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에서 제시한 세 가지 공부론을 비롯해, 지금까지 많은 공부론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장난 같은 ‘토크 공부론’을 굳이 제시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평생토록 공부하고 연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만의 공부론 하나쯤은 가지고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지학’은 물론 ‘오학론’이나 ‘인이불발’ 같은 공부론은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완성된 공부론의 전범이라 할 수 있지만, 우리 시대의 트렌드에 견주어 너무 어렵게 느껴져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몰라 중도에 포기하는 대학원생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뜻밖에도 많았기에 그분들에게 공부를 해야 발견의 기회나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제시한 ‘토크 공부론’이 가벼운 말장난 같지만, 어쩌면 지금 당장에 공부에 흥미를 잃어가는 분들에게 현실적으로 유용한 지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토크 공부론으로 밑절미(바탕)를 다진 다음 보다 더 열공하시기를 기대해본다. 그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공부에 솔솔 재미를 느낄 때가 올 것이다.

□ 다음호 추천 릴레이 에세이 필자는 조삼섭 숙명여대 교수입니다.

 


김병희 서원대·광고홍보학과
한국PR학회 회장이며, 지은 책에는 『창의성을 키우는 통섭 광고학』 등 다수가 있다.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 한국갤럽학술상 대상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