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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글래드스턴의 日記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日記
  •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 승인 2013.12.0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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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의 정도가 도를 넘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여야 정치인들을 향한 불만과 비난의 소리도 적지 않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냉소와 무시의 분위기가 더 짙어졌다. 정치는 원래 시끄러운 법이라고 자위를 하면서도 가뜩이나 소통 부재의 현 정권 때문에 한층 더 우울한 겨울을 보낼 것 같다.


정치에 환멸을 느낄 때 나는 가끔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글래드스턴을 생각한다. 네 차례나 영국 수상을 역임한 글래드스턴은 영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현실 정치의 장에서 보수적인 영국 사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한 이상주의자였다. 19세기 후반 자유당은 그의 개혁노선에 힘입어 노동자계급에까지 지지기반을 넓혔다.


글래드스턴은 1850년대 파머스턴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행정개혁을 이끌었다. 정부조직과 부처에 만연한 비효율적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조치를 도입했다. 방만한 재정 지출을 줄이고 효율성의 원리에 입각해 예산을 배분하며 연줄보다 경쟁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임용하는 등 그의 개혁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수상이 된 후에도 자유주의적 개혁에 더욱 더 박차를 가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하자 그 책임을 지고 정계 일선에서 물러나 향리에 머물기도 했다. 사실 그의 정계 복귀는 자신의 정치적 술수에 힘입은 것이 아니었다. 총선에서 보수당에 열세를 보인 자유당 전국위원회가 여러 차례에 걸쳐 정계 복귀를 요청한 끝에 마지못해 정치무대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정계에 복귀하자마자 자유당의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특별열차를 달고 전국의 중소도시를 순회하면서 새로운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열차를 이용한 선거유세는 당시 영국의 정치 관행에 비추어보면 참으로 새로운 모험이기도 했다. 이것이 저 유명한 미드로디언 유세다.
그는 이상주의 때문에 현실정치에서 패배를 겪기도 했다. 아일랜드 자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도덕적 정당성을 내세워 자치법안을 제출했다가 오히려 자유당의 내분을 가져온 장본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다른 한편, 그는 현실 정치인이자 지식인이었다. 당시 영국의 지식인잡지들을 뒤적이다보면 여러 지면에서 글래드스턴의 논설을 발견한다. 그는 정치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민주주의 정치와 기독교신앙 등 다양한 주제들에 관해 논설을 썼고 견해가 다른 문필가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글래드스턴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그의 정치 활동과 지적 능력보다는 그 자신의 내면 신앙과 도덕적인 삶 때문이다. 그는 청년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썼다. 그의 일기는 오랫동안 역사가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전집으로 출판된 것은 1970년대 초의 일이다. 그의 유족들이 간행을 반대해서 늦어졌다고 한다.


후손들은 왜 출판을 꺼렸을까. 간단한 메모와 단편적인 기술로만 이어진 일기 곳곳에는 ‘엑스(x)’라고 표기된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혀 있다. 놀랍게도 그 ‘엑스’는 모두 사창가의 여인들이었다. 글래드스턴의 후손들은 위대한 인물이 오명을 뒤집어쓸까 두려워 감히 출판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기를 들쳐본 사람은 오히려 그 내용에 놀란다. 수상을 지내면서도 글래드스턴은 저녁 무렵에 평복 차림을 하고서 사창가를 배회했다. 그는 신분을 숨긴 채 버림받고 자학에 빠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거리의 여인들과 만나, 자신의 도덕적 열정으로 그들을 교화하고 설득하려고 했다. 여인이 새로운 삶을 찾기로 약속한 날의 일기에는 신에 대한 감사와 인간에의 신뢰를 언급한다. 없는 날의 기록은 회한만 가득할 뿐이다.


글래드스턴은 부유한 가문 출신의 엘리트였지만,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버리지 않았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그들이 고귀한 인격을 가지고 삶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원했다. 그의 이상주의는 때로는 현실정치와 맞지 않았고, 그 때문에 여러 번 정치적 좌절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좌절 때문에 자신의 원칙을 굽힌 적이 없었다.


우리사회에서 부패와 부정에 연루돼 조사를 받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 치고 처음부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다가 구속당하는 사례가 주위에 너무 흔하다. 흠결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다가 막상 증거가 드러나면 죄송하다는 말로 얼버무리는 사람은 고위공직자의 자격이 없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직자 후보를 연례행사처럼 지켜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이런 일이 현 정권 말까지 그대로 이어질까 두렵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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