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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지원금과 평가 명목으로 OA 강요 마라”
“학회 지원금과 평가 명목으로 OA 강요 마라”
  • 이경표 한국전자출판협회 학술저널위원장
  • 승인 2013.11.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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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진단_ ❶ 관 주도 학술논문 OA 정책의 문제점

지난달 18일 국정감사에서 배재정 의원(민주당)은 한국연구재단(이하 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회장 박상대, 이하 과총)이 시행하고 있는 관 주도 학술논문 공개접근(Open Access, 이하 OA)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연구재단의 OA정책에 반대 의사를 밝힌 민간 논문서비스업체(한국전자출판협회)는 이 문제를 학술토론회를 통해 공론화하기도 했다(<교수신문> 701호 기사 참조). 현재 전 세계적으로 공개된 논문 수가 113만 편인데 반해, 관 주도 OA 정책이 계속될 경우 올 연말까지 180만 편(현재 공개 논문 수: 인문 26만 편, 과학기술 120만 편)이 공개된다. 학회 동의서나 저작권 양도 확인서를 받아 논문을 공개 서비스 하는 것은 개인 저작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분쟁 소지가 있다는 점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이에 3회에 걸쳐 관 주도 OA 정책에 대한 진단을 싣는다.

올해 한국 학술산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은 단연 OA 문제다. 이 문제는 지난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국정감사에서 배재정 의원(민주당)이 이슈로 삼았고,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서는 장병완 의원(민주당)과 이상민 의원(민주당)이 나란히 관 주도 OA 추진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했다. 감사원에서는 OA 정책을 주도해온 연구재단을 대상으로 이 정책의 정당성을 전면 재점검하고 있다. 왜 OA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가.

OA는 본래 2002년 2월 독점적 학술논문 서비스업체의 횡포에 반발해 나온 ‘부다페스트 OA 선언’이후 구미의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운동이 그 시발점이다. 미국보건원(NIH)은 공공연구비로 생산한 논문은 무상 공개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OA운동에 참여했다.

과학기술, 특히 의료 분야의 경우 선행 연구나 실험성과를 바탕으로 해야 진전된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 의료 분야의 경우 연구 내용 관련 정보의 공유가 적지 않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과 직결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적 권위지의 주요 연구 논문은 거의 절대 다수가 엘스비어나 스프링거 등 독점적 글로벌 학술논문 서비스 업체가 저작권을 장악하고 서비스하고 있다. 이런 연구 논문을 열람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패키지를 구독해야 한다. 한두 편의 연구 성과가 필요한 연구원들, 특히 영세한 연구기관이나 개발도상국의 연구자들은 선행 연구 성과의 접근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온 것이다.

OA는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주로 의학 분야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이들은 헌신적으로 자기 비용을 들여 엘스비어나 스프링거에 묶여 있는 자신의 저작물을 공개접근 가능한 논문으로 전환해왔고, 이런 운동은 현재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흔히 OA와 카피 레프트(copy left)를 혼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카피 레프트가 지적재산권을 부정하고 지식의 공유를 주장하는 데 비해, OA는 저작권의 철저한 인정과 보장을 바탕으로, 그 지식에 누구나 ‘공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이다.

한국에서는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의 주도로, 2001년 국내 의료논문 초록 누리집‘코리아메드(KoreaMed)’의 오픈, 2007년 논문 전문 제공 데이터베이스 누리집‘코리아메드 시냅스(KoreaMed Synapse)’의 구축 등 민간 OA 운동이 괄목할 성과를 내왔다.

그러나 연구재단과 과총 등 공공기관이 200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OA 정책은 OA 본래의 긍정적인 취지와는 무관하게, 학술단체에 대한 지원금과 평가의 명목으로 OA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 학술논문의 국제화와 선진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런 정책은 △개인 연구자의 저작권 침해 소지가 높고 △OA운동이 벌어지게 된 원인을 제공한 글로벌 독점 학술논문 서비스 업체의 한국 내 지위를 되레 강화해주고 있으며 △국내 학술논문 서비스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이미 민간에서 효율적으로 운영 중인 국내 학술논문 누리집 서비스 구축비용에 국민 혈세를 중복 투자해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한국처럼 관이 주도해 학회 지원비를 명목으로OA를 강요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연구재단이 올해 국감에서 선진국의 OA 사례로 거론한 미국보건원(NIH)과 영국의 웰컴 트러스트 재단에 확인한 결과, 영국 웰컴 트러스트 재단은 개인 연구자가 OA에 동의한 경우 OA 출간비용을 지원한다고 누리집에서 밝히고 있고, 미국보건원은 논문 심사 과정에서부터 OA를 전제로 연구비를 지원하며, 이렇게 산출한 논문에 한해서만 OA를 하고 있다는 답변을 이메일로 보내왔다. 연구재단과 과총은 “OA가 전 세계적인 추세”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작권 침해 소지를 안은 채 관이 학회에 OA를 강요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와 전혀 무관하다.

연구재단과 과총의 무리한 관 주도 OA 정책은 이제 궤도 수정이 불가피한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한국 학술논문의 수준을 진정으로 국제화하고 선진화하려면, 국내 민간 학술논문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켜 건전한 학술 생태계를 가꿔갈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이경표 한국전자출판협회 학술저널위원장
논문 열람 서비스업체 (주)누리미디어 마케팅사업부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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