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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두와 세계사 다시 읽기
중국의 대두와 세계사 다시 읽기
  •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 승인 2013.11.0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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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한 세대 전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오늘날 중국의 눈부신 발전을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떠올랐고 미국에 뒤이은 경제대국이 됐다. 그동안 서구의 전문가들은 정치개혁을 수반하지 않는 한 중국이 곧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그들의 진단이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중국의 거대한 변화는 역사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대화론 자체가 유럽중심주의 시각을 반영한다는 비판을 넘어, 이제는 유럽의 산업화가 유럽 내적 요인의 상호작용을 통한 계기적 과정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우연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는 견해가 주목을 끌고 있다.


케네스 포머란츠의 『대분기』나 조반니 아리기의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 등은 중국의 대두에 학문적 자극을 받은 저술이 분명하다. 이들은 근대세계의 형성을 유럽이 아닌 세계사적 시각에서 성찰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유럽이 세계에서 가장 일찍 근대화과정에 진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유럽과 다른 지역 간의 관계에 영향을 받으면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근대세계의 형성에 관한 근래의 해석은 몇 가지 전제를 필요로 한다. 우선 16세기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된 새로운 국제무역에서 유럽만이 아니라 중국, 인도,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도 경제 성장이 이뤄졌고 그 역동성이나 규모 또한 유럽에 못지않았다. 적어도 18세기말까지 유럽과 이들 지역 사이에 경제적 격차는 거의 없었다.


다음으로, 포머란츠를 비롯한 일부 역사가들은 유럽의 특이성을 내부요인보다는 외부요인, 즉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전유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16세기 이래 이 대륙이 유럽인들에게 사실상 ‘횡재’로 작용했다는 인식은 ‘콜럼버스의 교환’이라는 말에 함축돼 있다.
18세기 급속한 인구 증가에 따라 유럽, 인도, 중국, 일본 등 여러 지역경제권은 생태적 한계에 직면했다.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인구에 대한 토지부족의 위기를 노동집약적 방식을 통해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이 노력이 있었음에도 동아시아는 토질 악화와 노동의 한계생산성 저하라는 악순환구조에 빠지고 말았다.


이에 비해, 유럽은 신대륙을 배타적으로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기계와 같은 토지절약적 기술에 의존하는 전략을 시행할 수 있었다. 그 선두에 선 나라는 영국이었다. 산업혁명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토지절약적 방식을 필요로 했던 시기에 영국은 값싼 석탄을 쉽게 이용할 수 있었고 증기동력과 연결된 기계에 의존해 생태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18세기 말 영국의 산업화 이후 아시아는 오랫동안 정체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권으로 변모했다. 일본의 산업화는 물론, 특히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중국, 인도,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한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경제 성장과 발전은 세계경제를 이끄는 추진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을 두고 십여 년 전에는 유교라는 문화적 전통과 연결 지으려는 경향도 있었다. 오늘날 일본의 일부 경제사가들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대두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 발전은 18세기 생태위기에 대처한 노동집약적 방식, 이른바 ‘근면혁명’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의 확산 이후, 새로운 토지와 새로운 자원을 서구인만이 전유하던 시대가 지나면서, 이들 지역은 서구의 토지절약적 방식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의 전통인 노동집약적 전략을 혼합해 성공을 거뒀다.


동아시아 경제의 역동성은 에너지와 자원에 의존하는 서구의 전략과 노동집약적인 아시아의 방식을 절충함으로써 얻어낸 성과다. 이런 주장을 펴는 학자들은 근면혁명에 바탕을 둔 아시아의 전략이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생산증가분을 생산 참여자에 대한 분배로 쉽게 연결하는 이점을 지녔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전략에서 현대세계의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시아 학자에게 유럽중심주의 비판과 그 인식틀로부터 탈피는 절실한 소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일본, 아니 특히 중국의 경제발전을 자원과 에너지 절약적인 전략에 바탕을 뒀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중국의 대두가 한 세기 전 서구의 성장전략과 다른 그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가? 때마침 중국 북부지역이 일찍 찾아온 스모그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영석 서평위원/광주대·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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