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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까지 놀라게 만들던 폭음 멎은 땅 … 평화의 꽃 한송이 피어나길!
젖먹이까지 놀라게 만들던 폭음 멎은 땅 … 평화의 꽃 한송이 피어나길!
  • 교수신문
  • 승인 2013.09.3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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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30_ 매향리

근현대 한국을 만든 40곳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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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향리를 찾는 이들이라면 이런 전쟁기계가 만든 폐허의 풍경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이 자리에 평화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화약 냄새 진동하던 자리에 가을 매화꽃이 피었다. 지난 8월 31일 매향리에서 아픈 자리를 예술로 드러내어 세상과 호흡하고자 하는 평화예술제가 개최됐다. 메인 행사장에는 매향리를 미술가들의 눈으로 그려낸 미술작품이 전시되고, 대책위 사무실에는 포탄 잔해물을 이용한 생활용품이 매향리 이야기와 곁들어져 선을 보였다. 농섬은 고운포 선착장으로 들어가 총흔 자리를 매만지고 돌아왔다.

떠날 수 없는 땅과 갯벌 불발탄 줍는 자손들
매향리는 봄이면 매화향기 가득한 바닷가라 해서 이름이 붙여진 경기도 화성시의 작은 갯벌 마을이다. 이웃하는 농섬은 조상 묘자리로 생각할 정도로 녹음이 짙은 아름다운 섬이다. 이곳이 미군의 육지 사격장과 해상 표적물로 둔갑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기인 1951년 매향리 앞바다에 미 공군의 해상사격장이 들어서고, 1967년 한미 SOFA(Status of Forces Agreement)는 미군들이 아무 곳에나 천막 치고 자리 잡아 쓰던 땅을 소급 적용해 인정했으며, SOFA 체결 1년 후인 1968년에는 육상사격장도 들어섰다. 매향리는 지리적으로 높은 산이 없는 구릉지대로 안개 끼는 날이 거의 없어 해상과 지상 폭격이 가능해 최적의 공군사격장으로 꼽혔으며, 게다가 주민들이 살고 있는 터이라 담력까지 키울 수 있는 실전 같은 훈련장이었기에 미군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장소였다.


실제로 사격장 안에는 300여 가구가 일구는 농토가 포함되는 등 마을주민의 입장에서는 생활터전이 사격연습장으로 변하고 말았으며, 미군의 오폭이나 불발탄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죽는 사람이 나오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폭격 소음이었다. “자다가도 폭격소리가 나면 놀라서 깬다. 우리 집이 폭격에 맞는 것은 아닌가 하고….”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계속되는 일상적 스트레스의 누적은 다른 농어촌지역에 비해 높은 자살율과 잦은 싸움과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각성은 1988년을 기해 주민운동으로 발전하며, 2005년 사격장은 폐쇄됐다.


사격장이 폐쇄되기 전까지 젖 먹던 아기들은 폭음에 자지러지게 울었다. 30년 전 ‘내’가 그러했듯이 자식들도 운다. 고통의 대물림이다. 고통의 연쇄는 아래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이유 없이 목을 매고, 이웃들도 그렇게 죽었다. ‘나’도 내 가슴을 식칼로 찔렀다. 증오심, 원한, 보복심과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터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아버지, 자식, 나, 이웃의 고통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다시 의지하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의 발견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주민운동과 시민연대의 힘이었다. 나아가 매향리는 2005년 사격장이 폐쇄되는 결과를 이뤘음에도, 연대는 지속됐고 그 연대의 힘을 사회에 되돌려 주고 있다. 군기지로 인한 피해가 무엇인지 아는 대추리-매향리-오키나와-강정마을의 2011년도 연대가 그것이다. 대선 직전 겨우 여론에 언급되기 시작하던 화제의 강정마을 이전에 그들은 이미 연대를 맺고 고통을 나누고 있었다.


1988년 주민들의 불만이 외적으로 표출되기까지 근 40여년의 긴 세월이 있었는데, 이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둘러싸인 1950~1980년대의 사회 분위기, 즉 사격장에 대한 불만의 정당성은 공동체 외부는 물론이고 내부로부터도 ‘빨갱이’ 론으로 인정받을 수가 없었다. 이와 함께 한미 SOFA로 불리는 주한미군지위협정은 미군의 안하무인적 행위들을 용인하게 했다. 국제화, 평화주의, 탈냉전을 시대적 특징으로 하면서 주둔군의 주권과 관할권을 무시한 파견국 우위의 불평등한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주권적 상징성을 갖는, 미군 범죄자에 대한 형사재판 관할권이 대표적인 것으로, 이외에도 환경을 비롯한 노동, 통관 등의 민사소송절차에서도 불평등 관계는 여실히 나타난다.


2005년 기지 반환으로 폭격 개시를 명령하던 붉은 깃발은 갈갈이 찢기고, 매향리에 매화향기가 다시 돌아왔다고 모두가 만세삼창을 하며 기뻐했다. 마을에는 평온함이 찾아오고, 잠도 잘 잘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미군은 철수했으나 땅에 새겨진 상흔은 그대로 남기고 철수한 것이다. 반환된 갯벌에는 조개, 바지락, 낙지와 함께 불발탄, 탄피도 섞여있었다. 미군과 정부의 말대로 아무리 갯벌이 자정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애벌레같이 생긴 수많은 탄피와 중금속을 거둬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풍랑이 일면 다시 갯벌 밑의 것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을주민은 삶의 터전이자 생계터인 갯벌을 정화하기 위해 그들의 배상금을 모아 직접 폭탄수거에 나섰다.

생태평화공원 속 초혼 공간을 기대하며
2012년 마을주민과 시민들의 연대에 힘입어 화성시가 국방부로부터 반환기지를 매입했다. 파주 반환기지 터가 상업화로 몸살을 겪을 때, 매향리는 기지 터를 6대 4로 공원과 레저시설로 계획하던 것을 100% 공원화함으로써 정부로부터 기존의 400억원 보상에 300억원을 늘려 700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생태평화공원 건립을 위해 화성시 부시장과 주민대책위원장이 회장을 맡는 협의회도 마련됐다. 매향리 역사 전시를 비롯해 환경, 평화,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고 나아가 전쟁 피해자에게는 안식처로, 도시민에게는 쉼터로 꾸며질 것이다.


공원 한 편에는 매향리에서 이유 없는 죽음을 당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도 마련될 예정인데, 탱크에 짓밟힌 효순이와 미선이들도 초대받을지, 또 어떤 형식으로 이들을 불러내고 그들의 마음을 이어나갈지가 궁금하다.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산 자들의 살아있는 공간으로 양자를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지길 기대한다.

박수경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일본어학
필자는 일본 다쿠쇼쿠(拓殖)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주요 논문으로 「나가사키 하시마(군함섬)를 둘러싼 로컬 기억의 생산과 정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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