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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지식의 한계 뛰어넘는 연구 성과들 눈길 끌어
전통적 지식의 한계 뛰어넘는 연구 성과들 눈길 끌어
  • 박영선 고등과학원 선임연구원·미디어아트
  • 승인 2013.09.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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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고등과학원 초학제 연구단 통합학술대회 ‘앎’ 참관기

지난달 22일부터 이틀간 열린 통합학술대회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는데, 크게 세 가지 맥락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실과 가치를 통합하는 앎의 필요성과 앎의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고려의 중요성을 제안하고, 둘째, 최근 이론과학 연구에서 제기되는 ‘알 수 있음’과 ‘알 수 없음’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려와, 과학적 앎의 확장가능성을 제시하며, 셋째, 앎의 주체와 객체의 분리에 기초한 인간중심적 앎의 협소함을 넘어서는‘비인간주의적-우주적 앎’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1. 사실과 가치를 통합하는 앎·사회문화적 맥락의 중요성: 김광수 전 한신대 교수(철학)는 상식적 앎의 유의미성을 근본적으로 회의해온 서양의 인식론적, 과학적 탐구의‘분리지향적’태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삶의 다양한 현상에 관한 통합적 앎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과 가치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는 ‘마음의 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제안했다.

이승환 고려대 교수(중국철학)는 중국전통에서 추구해온 앎의 특성은 ‘자연의 참됨’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는 서양 근대적 의미의 과학을 가능케 한 분석적, 개념적 사유 활동의 중지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가치를 배제한 사실만을 추구하려는 근대과학적 지식을 생산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특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계사와 시제 구분, 복수와 단수 구분이 없는  ‘한문’의 언어적 특성이라고 보았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사)는 기후변화 같은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앎은 사실과 가치를 결합해서 생각하는 것이고, 실제 세상에서 사실과 가치가 분리된 적은 없지만, 서양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계속해서 이런 분리를 강조해왔을 뿐이라는 부르노 라투르의 문제제기를 환기시켰다. 특히 홍 교수는 앎의 역사적 스타일에 대한 검토를 통해 앎의 개인성을 넘어서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2.과학적 앎의 확장,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 이기명 고등과학원 교수(이론과학)는 인간의 앎과 두뇌의 상호관련성에 대한 검토를 통해 새로운 앎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수용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했다. 이경민 서울대 교수(신경과학)는 단기기억 및 장기기억과 관련된 침팬지와 인간의 지능 실험과 연구결과들을 소개하면서, 인류는 단기기억에 강한 침팬지와 달리 사회문화적 앎을 생산하는 장기기억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지능의 진화가 이뤄어졌으며, 이러한 인류의 진화가 타 생물체에 대한 인류의 우월성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양자정보)는 고전역학과 달리 양자역학에서 어떤 물리량을 알아내기 위한 양자측정의 결과는 확률적으로만 주어지는 점, 디지털정보와 달리 복제불가능한 양자정보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양자역학과 정보이론의 통합에 의한 새로운 앎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필진 고등과학원 교수(초끈이론)는 지난 한 세기 동안 진전된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과학적 앎의 과정을 검토하면서, 우주상수에 의해 주어진다고 간주되는 암흑에너지와 관련된 난제 해결을 위한 초끈이론의 시도를 설명했다. 우주상수를 비롯한 우주의 몇 가지 성질들은 과학적으로 설명 불가능한 것일 수 있다는 이론과학자들 사이에서의 최근의 문제제기와 관련해 이제 과학자는‘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보다‘무엇을 알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3. 앎, 인간을 벗어나 사물에로까지: 한성일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연구원(분석철학)은 흄의 인식론적 회의의 과정을 논리적으로 분석, 고찰하면서 주체와 객체의 분리에 근거한 인간의 앎이 지닌 한계를 검토하고 양자이론에서 제시되는 확률적 앎과의 접목가능성을 타진했다. 김재인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연구원(현대유럽철학)은 앎이 굳이 인간만의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으며, 모든 생물체는 둘레세계에 대한‘원초적 앎’을 추구한다고 보았다. 서양근대 철학에서 원초적 앎을 탐구한 두 명의 철학자 흄과 스피노자의‘앎에 선행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들을 검토하며, 앎은  ‘정련된 상상’이며, 모든 생물체는 상상으로서의 앎을 가진다는 논점을 제시했다.

김광식 서울대 교수(인지철학)는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마뚜라나가 행한 몇 가지 생물 실험을 소개하면서, 앎은 생물체가 외부세계의 변화를 반영해서 생산되는 게 아니라, 생물체 내의 닫힌 생체구조(일종의 기계)에 따라 생산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앎을 생산하는 방식이 곧 ‘몸에 밴 앎’이라 할 수 있다. 아메바와 사람의 앎에 따른 행동인 ‘먹이를 먹는 행위’는 먹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먹이라는 기계와 아메바 또는 사람이라는 기계의 ‘구조접속’에 의한 자기되돌이(되먹임), 즉 자기생산의 과정일 뿐이라고 본다.

다양한 발표를 세 가지 맥락에서 정리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모든 학자의 발표와 관련 토론에서 여러 쟁점과 맥락이 중첩, 공유됐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밝혀 둔다. 개인적으로, 앎 학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아마도 세 번째 맥락과 관련해 제기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앎의 주체와 객체, 그리고 과학과 인문학의 분리에 기초해 생산된 전통적 앎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당히 ‘충격적인’연구 성과들이 과학적 실험과 인문학적 해석을 접목시킨 신생 연구 분야들에서 제시됐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합토론에서 김두철 전 고등과학원장(통계물리학)이 던진 질문이다. “만약 앎의 경계가 인간을 넘어 생물체 나아가 사물로까지 확장된다면,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고 바람에 찢어지는 과정도 앎의 과정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이 질문은 과학적 앎과 시적 앎의 사이에서 이행하고 확장될 초학제적 앎에 대한 어떤 전언을 담은 듯하다.


박영선 고등과학원 선임연구원·미디어아트
숭실대에서 박사를 했다. 초학제 패러다임 독립연구단, 한국사진학회, 기초조형학회에서 활동중이며, 주요 논문으로「디지털 사진과 개인적 기억」, 저서로『한국사진이론의 지형』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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