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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인문학의 숙명 … 학계 조용하면 현실에서 싸움 인다”
“싸움은 인문학의 숙명 … 학계 조용하면 현실에서 싸움 인다”
  • 교수신문
  • 승인 2013.08.26 16:2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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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를 생각한다

 
대학 다닐 때 사회철학을 전공하시던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학자는 서로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학자가 학계 안에서 싸우지 않으면 학계 밖 현실 세계에서 싸움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학자는 싸움에 져도 다시 싸울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현실의 사람들에게 패배란 곧 죽음일 뿐이다.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으려면 이론가들이 서로의 혀로 서로를 베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학원 시절 화염병을 든 친구들을 볼 때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심장이 쪼그라들 때마다, 언제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언젠가는 나의 학문이 그들의 싸움을 대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진리 탐구를 위한 이론적 투쟁은 이 폭력적이고 기만적인 현실을 인간의 얼굴을 가진 현실로, 인간의 얼굴을 잃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인문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누구나 가졌을 법한 생각이었다.

십년 가까운 외국생활 후 귀국해보니 IMF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학자들의 세계는 참으로 평화로웠다.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의 학자들, 특히 대부분의 인문학자들은 그저 줄어들 밥그릇 걱정으로 나날을 보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외부의 위기 때문인지 그들은 예전보다 더욱 더 화목해 보였다. 너는 너대로 이해하고 나는 나대로 이해해서 모두가 행복하자! 그것이 학문공동체의 모토(Motto)인 듯이 보였다. 영혼 없는 논문이 쏟아졌고 주례사 논평은 일상이었다.

오늘 학술대회에서 논문 발표가 있었다. 논평자는 발표자의 오랜 친구였는데, 그는 발표 논문을 “논증의 타당성과 건전성이 빈약하다”라며 혹평했다. 자신의 학문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결코 감행할 수 없는 평가였다. 학문적 자존심을 정면으로 공격당한 발표자는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논평자의 주장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맞섰고 두 사람 사이에 거친 입씨름이 오갔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학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진정한 심포지엄(symposium)이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일어났다. 객석에 있던 노교수가 발표자를 향해 이러저러한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른 그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노교수의 불만은 발표자의 논문이나 토론 내용이 아닌, 그의 말투와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발표자는 졸지에 無賴漢이 되고 말았다.

“하나의 철학을 세상에 내어놓는다는 것은 ‘나의 철학 이전엔 철학이란 존재하지조차 않았다’라고 세상을 향해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백년 전 서양 철학자 칸트의 말이다. 학문적 논의의 場에서 상대방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진리 자체보다 우선시된다면 그곳은 더 이상 학자들의 공간이 아니다. 학술대회의 논의는 합의를 위한 토의(discussion)가 아니라 상대를 논박하기 위한 토론(debate)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문학의 올바른 탐구방법이다.

싸움이 없는 학문공동체, 논쟁이 없는 학문공동체는 더 이상 학문공동체가 아니다. 점잖은 말투와 온화한 미소, 주고받는 명함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세계는 학자들의 세계가 아니다. 말의 내용에 주목하는 대신 말하는 사람의 입에 주목하는 것은 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그런 학자와 그런 학문공동체는 이웃들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제공받을 자격이 없다. 이웃들이 땀 흘려 일할 때 책상 앞에 편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붉은 피를 흘리지 않도록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놓을 준비가 돼있을 때뿐이다.

몇 년 전 인문학의 위기가 유행처럼 입에 오르내릴 때 몇몇 인문학자들이 사회를 향해 내놓은 말은 정부 차원의 지원, 즉 돈을 더 달라는 것이었다. 어느 비정규직 교수가 공자의 말(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을 빌려 그들을 꾸짖었다. 인문학자들은 서로 싸우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감지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동료학자뿐인데, 그가 나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면 내가 어떻게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목숨 건 싸움은 인문학자의 숙명이다. 인문학의 죽음이 공공연하게 운위되는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충진 한성대·철학
필자는 독일 필립스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 「칸트의 正義論」, 「헤겔의 絶對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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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2013-08-30 13:30:06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재호 2013-08-28 14:03:06
사회철학이라는 학문이 이론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많은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게으른 사색가 2013-08-27 16:38:29
확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