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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이론 결합한 6년, 臨床으로 신음에 응답하다
예술과 이론 결합한 6년, 臨床으로 신음에 응답하다
  • 정락길 강원대 HK교수·영화미학
  • 승인 2013.08.20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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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 인문치료연구단, 예술·인문학 융합 어디까지 왔나

인문치료도 이제 6년이 돼간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탁상시계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어떤 숙제를 짊어진 자에게 있어서 시간은 소중하지만 동시에 잔인하다. 인문학이라는 미로에 갇혀버린 사람들에게 시간의 잔인함과 오묘함은 아마도 십분 이해될 것이다.

위기의 인문학이라는 화두가 매체를 통해 화려하게 장식되고 있다. 어쩌면 위기라는 말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현대 사회의 세태의 탓도 있겠지만 표피적 정보의 범람으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분명 인문학은 변모해야 한다는 당위의 강박 속에 시달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표피적 정보가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그리고 속도와 경쟁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현실이 던지는 상처와 고통에, 때로는 이미지의 과잉 속에 존재하는 소통의 부재, 허무, 우울 속에 신음하고 있다.

변모해야 한다는 당위의 강박

신음은 요청이다. 그런데 특히 현대 사회에서 이 신음의 소리들은 마음으로부터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인문치료는 인문학이 자신의 아집 때문에 상실하거나 놓쳐버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인문학의 신음이 인문학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인문학적 가치의 중요성을 신음하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인문치료는 이러한 두 신음의 만남을 기획하면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 길은 어떤 결과와 성과가 여전히 진행 중인 더딘 길인 듯하다. 오직 인문학의 가치만을 가지고 출발했고 이론적 현실과 임상적 현실의 많은 과제들이 여전히 강원대 인문치료 연구단에게 숙제로 남아있음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 성찰의 실천과 임상을 통한 실천이 다른 길임을 어렴풋이 예감했으면서도 연구팀 모두 사람인지라 막상 부딪힌 그 간극 사이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두 길이 완전히 다른 길이 아님을 우리가 이제 서서히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성과일 수도 있다고 자화자찬 해본다.

강원대 인문치료연구단은 교도소, 찾아가는 새터민 학교, 재활센터, 다문화가정 등에서 6년 째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강원대 인문치료연구단)

서두에서 말한 시간의 잔인함에도『예술과 인문치료』(강원대출판부, 2013)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조그만 성과들을 모은 글들이다. 잔인한 시간이 건네준 소중한 선물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몫이지 아직 독자의 몫은 아니다. 다만 마음의 문제와 치료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아니면 인문치료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 조그만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예술은 인문치료의 중요한 이론적 실천의 대상이자 임상적 실천의 도구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일상적 언어 바깥에서 일상적 언어의 감추어진 이면을 드러내어 충격을 주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쇠뇌에 힘입어 분명히 육체로부터 기인하는 연장 없는 실체인 마음의 존재를 알고 있는 동시대인으로서 마음처럼 요상하고 어려운 것이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예술은 마음을 일차적으로 접대해 상찬을 내놓는 정서의 집합체이다. 별거 아닌 연속극을 보고 눈물을 펑펑 울리는 사람들, 노래방에서 흔들고 노래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과 같이 많은 대중문화들이 건네주는 위로의 힘은 위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병자의 아픔을 호소하는 소리가 치료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증상의 시그널이기 때문이다.

신음은 물론 병자의 아픔을 해소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더욱이 병인 자체가 복합적인 마음의 병은 증상의 방식도 다양하고 치료의 방법도 의학적인 방식과는 다르다. 슬픔을 고백하는 것, 울음을 터뜨리는 것 등의 이러한 자연적 행위 자체는 분명 치료의 첫걸음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성인은 슬퍼도 슬퍼하지 못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여러 심리적 기제의 지배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예술 치료는 분명 내담자와의 이러한 공감적 상황을 창출하는데 인문치료의 중요한 성찰적 대상이다.

마음 다루는 정서적 집합체

이 책의 필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왜 예술은 이러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까? 예술의 이러한 카타르시스 효과만으로 치료는 완성되는 것일까? 예술은 카타르시스를 넘어 마음치료에 어떤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일까? 왜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적 형식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일까? 인문치료는 왜 예술치료의 성찰들을 깊이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예술과 함께하면서도 변별되는 인문치료의 독자성은 무엇일까? 이곳에 실린 글들은 이러한 질문들과 연관돼서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답변을 전개하고 있다. 인문치료단에서 인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시도한 결과물인 이 책이 마음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정락길 강원대 HK교수·영화미학
필자는 파리1대에서 박사를 했다. 예술심리치료전문가이며, 군생할상담, 사회적응상담, 학습상담, 약물중독상담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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