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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정신 실종 부른 융합 위한 융합 …“예술은 손끝에서 맺혀야”
인문정신 실종 부른 융합 위한 융합 …“예술은 손끝에서 맺혀야”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3.07.01 1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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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 연구로 창조의 공동체 모색한 ‘Hubcon 컨퍼런스’

이번 학술대회는 두 개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인문사회융합 세션과 문화예술융합 세션에서 각각 세 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장(철학)의 사회로 진행된 인문사회융합 세션에서 정지훈 명지병원 IT 융합연구소장은「인간과 기계 인터페이스의 확대가 인문사회학에 미치는 영향」발표를 통해 HMI(Human-Machine-Interface)와 기존의 HCI(Human-Computer-Inerface)의 차이점을 컴퓨터의 발달사를 통해 살폈다.

메디컬 사이보그 vs 슈퍼휴먼 사이보그

정 소장은 “컴퓨터가 계산을 빨리 하도록 고안된 기계인데 반해 인간의 뇌는 수십억 개의 셀이 동시에 작동하는 네트워크인 점이 HMI가 HCI와 다른 점”이라고 말하며 끌로드 섀넌의 정보이론과 싸이버네틱스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강화인간이나 싸이보그 역시 인간이 유전자를 통하지 않고 기계와 일체화돼 인공적으로 진화를 이룩한다. 인간 밖의 존재인 로봇과는 다르다”라며 “의학적 문제를 해결하는 메디컬 사이보그는 인정하지만, 인간의 능력을 덧붙이는 슈퍼휴먼 사이보그는 논란이 있는데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100만원 이하로 출시될 구글 글래스의 경우 사회적 파급력이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NT, IT, BT의 총화가 CT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경민 서울대 교수(인지과학)는 발표문「모바일 컴퓨팅 시대의 뇌와 인지과학: 인문사회적 접근의 필요성」에서 “테크놀로지가 무작위적으로 융합된다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것이 ‘human centered convergence’이다”라며 네 가지 영역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발견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과 침팬지의 지능실험을 통해 “인간의 지능 특성은 첫째, 언어적 지능의 발달, 둘째, 인터 서브젝티비티(교육, 소셜 인터랙션), 셋째, 셀프 제너레이션과 리플렉션을 갖는다”라고 말하며 “‘뇌가 행동을 만든다’와 ‘행동이 뇌를 만든다’라는 명제는 항상 상호작용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뇌와 마음의 관계를 따지면, 마음의 정의가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라며 “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가지로 해석해왔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변혁하는 것이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해 새로운 창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종희 한국연구재단 문화융복합단장의 사회로 이어진 문화예술융합 세션에서는 이인화 이화여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의「인문과 공학의 융합을 통한 스토리텔링 저작도구 연구」가 눈길을 끌었다. 소설『영원한 제국』의 작가이기도 한 이 교수는 공학교수와 융합연구를 통해 스토리를 쓸 때 아이디어를 만드는 도구와 라이팅 도구를 개발했다. ‘스토리 헬퍼’라고 부르는 이 웹프로그램은 지난 3월에 개발됐고, 오는 7월 서비스될 예정이다. 서사학인 인문학적 방법론과 공학의 방법론을 접목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객관식으로 기입해 넣으면, 비슷한 이야기가 시나리오 유사도 시스템으로 측정된다. ‘스토리 헬퍼’는 1천 개가 넘는 영화와 75만개 장면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해 스토리 창작을 도와주는 도구이다. 과거의 케이스로 지금의 문제를 개선하는 공학의‘사례기반 추론’방식이 사용됐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이번 컨퍼런스의 당위적 의제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미 융합을 모색해왔던 연구자들의 비판이 거셌다. 토론자로 나선 이덕환 탄소문화원장(서강대)은 “오늘 발표에서 과연 인문학이 어디 있는가 묻고 싶다. 우리가 스티브 잡스를 얘기하며 아이폰, 아이패드가 융합기술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잡스의 정체성은 모호하다. 그는 기술자, 엔지니어, 과학자도 아닌 훌륭한 마케팅 전문가일 뿐이다. 아이폰에는 인문학이 없고 기술밖에 없다”라고 일갈했다. 이 원장은 이어 “우리가 갑자기 융합을 위해 살게 된 것 같다. 융합이 최고의 목표가 된 것 같은데 여기 모인 발표자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는“과학도 기술도 결국 인간과 삶의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도 융합을 이야기하며‘기술 쪽에서는 인간을 위해서’라고 항변하는 상황이 과연 정상적인가?”라고 근본적인 반론을 제기했다.

“철학전 비전 공감… 알맹이 없다”

문화예술세션 토론자로 나선 김종덕 홍익대 영상대학원장 역시 “직접적으로 가진 경험의 구체성, 물질적으로 접촉했던 것들이 감동을 만든다. 다빈치는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과학자였다. 테크네와 창작을 연결시키는 ‘네오다빈치’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좋은 말은 많지만, 허공에 떠도는 지식 같단 생각이 든다. 예술은 손끝에서 맺혀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플로어에서 이인화 교수에게 질문을 던진 신대철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학원장 역시 “기술에 예술과 인문이 보조자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편의성에 기초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이익을 창출하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속에서 인문정신과 예술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처음 글을 쓸 때가 가장 고민하는 순간인데, 미래의 젊은이들에게 그런 고뇌의 순간을 앗아가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를 표했다.

급변하는 국제환경과 복합적 사회변화로 지금까지한국경제를 이끈 기술주도형 R&D로는 한계가 있으니, 인간과 사회변화의 근원을 이해하는 인문·예술적 상상력의 신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008년부터 학제간 연구를 지원하고 있고, 대학과 연구기관들은 앞 다투어 융합연구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컨퍼런스의 6개 발표 면면을 살펴보면 달걀의 껍데기만을 조심스럽게 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대관일정상 지나치게 짧게 주어진 발표 시간(15분+3분)과 생략된 토론시간, 맥으로는 구동되지 않는 동영상 문제로 제한된 시간을 pc로 교체하느라 흘려보낸 시간까지, 이번 컨퍼런스가‘융합을 위한 융합’을 외치는 자리가 아니었는지 아쉬움을 남겼다.

중문학을 공부하고 전남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는 김지수 교수 “융합에 관심이 많아 일부러 시간을 내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이종관 교수의 기조발표에서 나온 철학적 비전에는 공감했지만 나머지 발표들에는 알맹이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법을 사회적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의 관점에서 예방 법학이라는 융합학 연구를 연구재단에 신청한 적이 있는데, 심사평을 보고 융합학적인 사고를 가진 분이 심사했는지 한심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컨퍼런스를 보니 융합학을 지원하는 연구재단의 인식이 바뀐 것 같지 않다”라고 꼬집었다. 박영선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단 선임연구원 역시 “융합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협력인데, 지금 다들 융합을 외치다보니 어떻게든 선점하려고 경쟁하는 모습이 보여 씁쓸하다”라고 이번 컨퍼런스를 아쉬워했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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